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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삭줍기
    수필/신작 2017. 9. 28. 05:18

     

     

                                                 이삭줍기

     

     

     

                                                                                                                 윤근택(수필가)

     

     

     

     가을이 깊어간다. 우리 쪽 말로, ‘천상[天生]’ 올해부터는 다시 마늘을 심으려한다. 요 몇 해 동안은 여름날, 아내가 날을 잡아 자기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마늘밭에서, 주인들이 수확하고 남은 마늘 이삭을 주워오곤 했다. 사실 그 양은 우리 가족의 일년치 양념으로 쓰고도 남을 만치 되곤 하였다. 그런데 올 봄 아내는, 집의 나이로 예순 넷임에도 새삼스레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따서 취업했기에, 마늘 이삭줍기는커녕 이른 봄부터 나의 만돌이농원일손도 도와줄 형편이 못 되었다. 하여간, 아내는 더 이상이삭 줍는 여인이 못 된다.

     

     이삭줍기, 막상 내가 마늘 씨 넣기를 하려다가 가외(加外)로 주운 글감이 될 줄이야! 참말로, 이는 이삭줍기다.

     

     이삭줍기를 이야기하자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내 양친이다. 특히 나의 선친(先親)이다. 살아생전 당신은 근검절약(勤儉節約)의 표본 같았다. 소죽솥이 걸린 당신의 사랑방 아궁이에는 아예 뒤웅박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당신은 땔감으로 져 온 마른 고춧대에서 붉은 색을 띠고 쭈글쭈글 마른 고추조차 보이는 족족 따서 그 뒤웅박에다 담았다. 당신은 작두 앞에서 짚여물을 썰 때에도 짚에 붙어 있는 벼 이삭을 훑어 뒤웅박에 담곤 하였다. 그리하여 닭 모이로 쓰곤 하였다. 콩깍지에서 떨어지는 콩 낟알도 그렇게 뒤웅박에 담곤 하였다. 내 어머니도 이삭줍기에 관해서는 당신의 남편 못지않았다. 사실 그 시절 이웃 어른들도 다들 그처럼 낟알 하나도 소중히 여겼다. 하나같이 이삭줍기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한편, 이삭줍기는 시골 학교에 다녔던 우리한테 꽤나 어울리지 않는 학교시책(?)이었다. 학교에서는 봄 한 철, 가을 한 철 이른바 가정실습기간을 주어, 부형들 일손돕기를 하도록 했는데... . 마치 생색이라도 내듯, 학교 당국은 그 가정실습기간을 주고서, 특별한 과제물을 내곤 했다는 거 아닌가. 그게 바로 이삭줍기였다. 그렇게 모은 보리나 벼를 팔아서 도서관에 필요한 책을 사겠다고 했다.

     

     ‘, 자기 집 뒤주에서는 퍼 오지 말 것. 들에 나가서 일일이 이삭줍기를 하여 가져올 것.’

     

      그 안일한 탁상행정을 요즘에야 하지 않겠지? 누군들 그렇게 하나하나 이삭줍기로 보리나 벼를 모을 방법을 왜 모를까만... . 그건 어디까지나 읍내 공무원 자제들한테나 어울리는 일. 농삿집 아이들이었던 우리한테는 그 가정실습기간이 오히려 강제노역의(?) 기간이었다는 것을. 물론 교육적 차원에서 그런 행사를 행했겠지만, 농삿집 아이들한테만은 그 숙제를 면해주었어야 옳았다는 것을 지금 말하는 것이다. 그때 선생님들은 저 프랑스 출신의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이삭줍는 여인들(Des glaneuses)>을 어디서 듣긴 들었기에, 그런 행사를 연례적으로 행했을 터.

     

      나의 이삭줍기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에까지 닿고 말았다. 내가 셈을 해본즉, 밀레는 36세 무렵인 1849년에 파리 근교 퐁테느블로숲속에 자리한 바리비종이란 시골로 들어간 걸로 되어 있다. 이미 많은 화가들이 그곳 오지(奧地)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바리비종을 무대로 한 자연파 화가들을 뭉뚱그려 바리비종파(-)’라고 한다는 걸, 이 글을 쓰기에 조금 앞서 알게 되었다. 본디 밀레는 노르망디 지방의 가난한 농부 내외의 맏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마치 이 수필작가처럼. 그처럼 농민화가 아니, 귀농화가가 된 그는 두터운 신앙심과 경건한 분위기가 배어나오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 그림들 가운에서 <이삭줍는 여인들><저녁 종> 은 명작으로 꼽힌다. <이삭줍는 여인들>에 관해 ‘Daum백과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전원생활을 주요소재로 삼았던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인 밀레의 작품으로 원경의 평화로운 배경을 뒤로 하며 추수를 끝내고 남은 이삭을 줍는 세 아낙네의 고된 노동이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안정감 있는 구도, 가라앉은 색조가 차분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소장되어 있다.’

     

     하여간, 밀레는 농민들의 애환을 화폭에다 제대로 담은 듯하다. 나는 그 그림에서, 수그리고 이삭을 줍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보다는, 허리를 편 나머지 한 여인의 모습이 더 짠하다. 사실 농토가 크게 많지는 않으나, 나도 농부로 돌아와 지낸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순간이 얼마나 많던가. 나는 그때마다 농막으로 들어가 약사발 즉 대폿잔을 이마에다 붙이곤 한다. 그런데 비해, 소작농일 성싶은 밀레의 그림 속 그 여인들은, 새참도 없이, 해가 저물어 가는 그 들녘에서 더 어둡기 전에 한 이삭이라도 더 주우려는 듯싶으니... .

     

     위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인간이었다. 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삭줍기에 능한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멧새들이라는 거. 언뜻 보기에는 그처럼 불편한 입을 지닌 동물이 없는 듯한데... . 그 부리로, 마치 우리네가 콩자반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듯 하지 않던가. 참말로, 멧새들이야말로 이삭줍기의 달인들이다. 농부들이 다 거두어간 논밭에서, 지치지도 않고 이삭줍기를 하는 멧새들. 허허롭기만 한 들녘에서, 주려서 배를 한 껏 채우고 저마다 둥지로 날아가는 멧새들이 아닌가. 그들이 여느 동물과 달리, 입이 아닌 부리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

     

     이제 내 이야기를 정리해 보아야겠다.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대한민국에서 최다작(最多作) 수필작가이길 바라는 나는, 모이가 늘 부족한 멧새들 형국이다. 늘 주린다. 해서, 두 눈을 반짝이며 이삭 즉 글감을 주우려고 애쓴다. 참말로, 이삭 곧 낙수(落穗)를 찾곤 한다. 일을 치르고 나서 나도는 뒷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한 낙수. 나는 한 편의 글을 적고 나서, 그 글을 거듭거듭 읽으면서, 그 글 가운데에 내가 낟곡인양 떨어드린(?) 어휘 하나조차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그것들 떨어진 이삭마저 다시 다음 글감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니 진정한 이삭줍기의 대가(大家)’는 나일 것이다. 아니, 나여야만 한다. 한 편의 글을 마감하고 보면, 다시 헛헛해지기에 꼭히 그러해야만 한다.

     

      정녕 이삭줍기의 대가이고 싶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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