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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에수필/신작 2017. 10. 1. 10:19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에
윤근택(수필가)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마태오 5,1-1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예수님의 산상수훈.
오늘따라 그 가르침이 가슴에 이리도 진하게 다가올 줄이야!
어느새 나는, 내가 여태도록 빚어낸 수필작품의 수효조차, 제목들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들을 모아 종이책으로 묶자면, 20권이 될는지 30권이 될는지조차도 모르겠다. 요즘 같으면 하루걸러 한 편씩 수필작품을 적어댄다.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곰곰 생각해보니, 나야말로 예수님 말마따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았겠나 싶다. 내 생활은 나이브(naive)하고, 심플(simple)하며, 볼셤(boresome)하다. 그 이유를 낱낱이 소개해야겠다.
첫째, 사반세기 동안 어느 짱짱하게 나가던 통신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종사하고 은퇴했으면 이젠 그만 쉴 만도 하건만, 재취업하여 24시간 격일제 근무로, 전공과 동떨어진 아파트 전기주임으로 지낸다. 자연, 야간에는 전기실에서 (시설)감시직으로(?) 혼자서 근무하게 된다. 본디 잠이 없는데다가 업무가 업무인지라 무료할밖에. 그래서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통해 셔핑을 하게 되고, 클래식 및 뉴 에이지 뮤직을 듣게 되고... 그래도 허기진 탓에 또 다시 글을 적을 수밖에. ‘돈 벌고 글 쓰고 음악 듣고... .’이니, 고스톱판에서 말하는 ‘일타 삼피’이상은 된다.
둘째, 이튿날 아침, 맞교대자가 출근하면 이내 내 ‘만돌이농장’으로 승용차를 몰아 가서, 거기서 홀로 농작물을 돌보고 막걸리 마시고 하필이면‘심플 클래식(Simple -classic)’ 담배를 태우고...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든다. 그 사념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몸체가(?) 되면, 그것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그 이튿날 끼니거리 즉 글감으로 삼는다.
셋째, 각종 모임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거의 가지 않는다. 또, 직장일과 농사가 썩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 심지어 친지들의 길흉사에도 얼굴을 내밀 형편이 못 되는 일도 잦다.
끝으로, 우리네 삶의 기본이 ‘의식주(衣食住)’라고 하는데, 나는 의복에 그다지 신경을 아니 쓰는 편이다. 직장에서 주는, 로고가 새겨진 점퍼나 조끼를 입고 지낸다. 근무시간은 물론이고 출퇴근 때에도 명찰이 달린 채로 입고 승용차를 몬다. 사실 남들이 내 의복을 누여겨 볼 겨를도 그리 많지 않다. 또, 먹는 문제도 단조롭다. 된장찌개 하나면 족하다. 내 둘레의 미식가(美食家)들은 이곳저곳 이름난 음식점으로 잘도 가더라만... . 그리고 쉬는 공간 즉 ‘住’도 그렇다. 어른들 말마따나 ‘만장(滿場) 같고 대궐 같은’ 시내 아파트를 두고서도 정작 농장에 자리한 농막에서 지낸다. 그러니 아기자기 꾸미고 지낼 리 만무하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숲속 농막이니 공기 맑고 멧새소리 정겨운 집.
위와 같이 단조로운 나의 생활이, 남달리 많은 글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 무엇보다는,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과 남의 글이나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다는 것 등이 크나큰 자산이다. 크나큰 힘이다.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로, 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각종 지식이 얕고, 남의 글 등을 거의 읽지 않았던 게 바로 나의 힘이다. 사실 그 유명하다는 ‘까뮈’의 ‘시지푸스의 신화’라는 수필도 이 글을 적기 바로 직전에, 태어나서 딱 두 번째 읽었을 따름이다. 솔직히 나는 철학적인 사고(思考)도 빈약하여, 그 ‘시지푸스의 신화’도 꽤나 어려웠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종종 고백하였지만, 내가 끝까지 읽은 책은 달랑 한 권.‘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이고, 그것도 성인이 되어서야 읽었으니... . 이처럼 내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므로, 차츰 아는 게 많아져간다. 이 무슨 이야기냐고? 줄잡아 2000여 편의 수필작품을 빚었다. 그 2000여 편의 수필작품에, 다이제스트로 익힌 ‘조각 지식’이 편당 한 개씩만 쓰였다고 셈하더라도 ... . 내가 미리 알아서 쓴 글은 거의 없다. 글을 씀으로써 그 글과 관련된 지식 따위를 얻게 되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축적이 되어왔다는 거.
다시 이야기하건대, 나의 생활은 나이브(naive)하고, 심플(simple)하며, 볼셤(boresome)하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한 생활이 이 대한민국 수필작가들 가운데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지경으로 ‘다작(多作)의 수필작가’로 만든 원동력임을.
죽는 그날까지 오로지 수필장르의 글만 적으리. 내 생활이 곧 수필이요, 내 수필이 곧 나의 생활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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