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베스크(Arabeske)수필/신작 2017. 9. 29. 20:40
아라베스크(Arabeske)
윤근택(수필가)
음악애호가인 나는 승용차 시동을 걸어도, 곧바로 F.M.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흐르도록 설정해 두었다. 오늘은 슈만의 곡이 흐른다. 진행자는 그 곡명을 ‘아라베스크 작품번호 18번’이라고 소개하였다. 음악 장르에서도‘아라베스크’라니! 슈만의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두고... .
사실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아라베스크’에 관해서는 이방연속무늬, 사방연속무늬 등과 더불어 익힌 바 있다. 아라베스크란, 아라비아 문양(紋樣)’, ‘아라비아의 격(格)’, ‘당초(唐草) 무늬’ 등으로 두루 표현된다. 우상숭배를 꺼리는 아라비아의 이슬람 종교. 그들은 천정이나 벽 등에 사람이나 동물이 문양이 든 그림을 일체 못 그리도록 하였다. 대신, 당초나 기호나 그들의 문자 등으로 장식하였다. 참, 당초란, ‘잎 달린 덩굴식물’또는 ‘인동덩굴’을 일컫는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그 덩굴식물이 뻗어나가는 꼴의 문양, 즉 아라베스크를 자주 보곤 하리라. 하여간, 아라베스크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고안된, 독특한 무늬다.
자, 이제 잠시 미뤄뒀던 ‘슈만의 아라베스크 18번’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우선, 독일 낭만파 음악가 슈만(1810~1856)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는 게 좋겠다. 그는 당대 유명한 피아노 선생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한테서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비크의 9세 된 딸 ‘클라라(1819~1896)’를 알게 되었다. 그때가 슈만이 18세 되던 해다. 우리쪽 말로 ,‘머리에 소똥도 벗겨지지 않은 녀석’이... . 그는 클라라의 18번째 생일에 그녀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비크에게 둘의 결혼승낙을 졸랐다. 스승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상심한 슈만은 술과 방탕한 생활로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슈만이 28세가 되던 1839년, ‘아라베스크 18번’을 적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곡 ‘아라베스크’에 대해,‘섬세하며 숙녀를 위하여’라고 정의했으며, 매혹적인 우아함이 가득한 서정적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당시 그는 빈에서 음악잡지를 내려 했고, 빈의 부인들로부터 관심을 사기 위해 그러한 곡을 적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아라베스크 18번’은 당시 육군 대령 ‘프리드리히 폰 제레’의 부인한테 헌정했다고 한다. 이는, 어느 장르의 예술가든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 없이는 훌륭한 작품을 결코 빚어낼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후일 어느 음악평론가는 그가 음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쓴 작품명이기도 한 ‘아라베스크 18번’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감상적이며 감미로운 맛이 있으며, 생기있고 사치스런 면모를 지닌 곡이다. 중간부에 단조의 부분이 2개 나타나는 독립된 곡이다.’
또 어느 음악평론가는, 슈만이 음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용한 ‘아라베스크’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 시적(詩的) 은유에서 따왔으며, 아랍 문양을 연상하는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음이 사용된 음악을 의미한다. 단편들의 유기적 체계를 함께 의미한다.’
하여간, 슈만은 ‘아라베스크’를 작곡한 이후부터 생기를 되찾아 활발히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18세이면 부모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었기에, 클라라한테서 청혼이 받아들여져, 우여곡절 끝에 1840년 9월에 결혼을 하였다. 그때 슈만의 나이는 29세. 사실 클라라는 당시 잘 나가는 여류 피아니스트였다. 무명(無名)이었던 브람스는 슈만의 제자가 되었고, 그 댁에 기숙하고 있었고, 클라라는 브람스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함으로써 널리 홍보하여 브람스가 유명세를 타게 했고... 슈만은 정신병으로 자살을 기도했고 끝내는 죽었고... 브람스는 연상의 여인이자 스승의 아내인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클라라한테 헌정한 그 유명한 ‘브람스의 눈물’을 적었고... 브람스는 스승의 부인과 여덟 명의 슈만 자녀들을 돌보았고, 클라라가 죽은 이듬해에 숨을 거뒀다.
여기서 잠시 나의 또 다른 작품, ‘브람스의 눈물’을 보너스로 드리니, 함께 읽어보도록 하자.
아래를 클릭하면, 글이 열린다. 사실 나는 요 맛(인터넷의 위력을 알아)에 더 이상은 종이책을 만들지 않는다.
재차삼차 이야기하지만, 음악인으로서 ‘아라베스크’란 이름을 최초로 쓴 이는 슈만이다. 그 이후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1862~1918)가 다시 ‘아라베스크’란 곡명을 붙이게 된다. 그의 작품 ‘아라베스크 1번’은 시각적 이미지를 환기한다고들 평가한다. 사실 드뷔시는 당시 말라르메 등 상징파 문학인들과 교류가 많았으므로, 자연스러운 시각 예술작품에 대한 찬사를, 이 ‘아라베스크’에 여지없이 반영한 것으로 후세 음악인들은 평가하곤 한다. 이 ‘아레베스크 1번’이야말로 음악사적(音樂史的)으로도 인상주의 음악의 초기 형태였다는 거 아닌가. 사실 음악 문외한인 내가 느끼기에도 그의 작품 ‘달빛’은, 음악으로 보여주는 요요한 달빛이었으니까.
내 이야기는 다시 ‘아라베스크’로 돌아온다. 미술에서 아라베스크는 ‘아라비아 문양’ 혹은 ‘당초무늬’를 일컫는다.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무늬다. 그런가 하면, 슈만으로부터 시작된 음악에서 아라베스크는, ‘아라비아풍으로’ 혹은 ‘하나의 악상을 화려한 장식으로 전개하는 악곡’ 또는 ‘매혹적인 우아함이 가득한 서정적 내용의 음악’을 뜻한다. 이 아라베스크가 고전 발레에 가면, 또 다른 뜻을 지닌다. ‘한 발로 서서 한 손은 앞으로 뻗고, 다른 한 손과 다리는 뒤로 뻗는 자세’를 일컫는다. 잘은 모르긴 하여도 그 모습이 마치 덩굴식물 즉 당초의 뻗은 모습과 비슷하기에 그런 용어가 생긴 듯싶다. 이 아라베스크가 문학에도 쓰인다는 사실. ‘아라비아 격이라는 뜻으로, 다양성이 있는 문학 작품’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제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이 글을 적으면서, 슈만의 ‘아라베스크 18번’과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을 내내 번갈아 들었다. 역시 독특한 장르의 음악이었다. 엄연히 수필작가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예술작품이란, 독특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최초여야 한다는 것을. 요컨대, 참말로, 2등은 아무짝에도 쓸 수 없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속기'에 관해 (0) 2017.10.02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에 (0) 2017.10.01 이삭줍기 (0) 2017.09.28 '앤 블루(Anne blue)' (0) 2017.09.25 '무우' 이야기 (0) 2017.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