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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9)수필/음악 이야기 2017. 12. 14. 13:42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9)
-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강했던 작곡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앎’이란 행복이다. 하나씩 새롭게 알아간다는 거, 그것은 살맛을 더해준다. 어떤 사물을 속속들이 파고드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고. 아름다운 음악도, 그 탄생 배경이나 얽혀진 스토리를 알고 들으면, 더욱 감미롭다는 것을. 사실 나는 스스로 음악 애호가라고 하지만, 보다 높은 단계인 오페라에까지는 아직 닿지 못하였다.
살아생전 그가 말했다.
“만일 나의 배가 바다에 빠진다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 하나만은 건지고 싶다.”
그가 그 작품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얼마나 컸던지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한번은 프랑스의 한 출판업자가‘비제(1838~1875,프랑스 작곡가)’에게 그 오페라의 편곡을 의뢰한 바가 있다. 그러자 그 악보를 연구한 비제가 말했다.
“이 악보는 수정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수정이불필요한 작품입니다.”
그처럼 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였다. 본디 바그너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싫어하여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격한 이로도 유명하다는데, 그 오페라에 관해서만은 그처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작품’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보탰다고 한다.
“우리는 눈물 흘리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글 주인공은 34년 짧은 생을 살면서, 10편의 적은 양의 오페라를 남겼으나, 이 오페라는 그의 자존심을 지켜준 대작 중의 대작이라고들 한다.
그가 대체 누구이며 그 작품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내 글에서 한 눈 팔지 못하도록, 잠시 미루어 두겠다. 대신, 그가 그 오페라 가운데에서 ‘아리아’하나를 완성코자, 무려 아홉 번이나 고쳐 적었다는 사실. 그때마다 당대 최고 수준의 소프라노 가수를 바꾸어 가며, 그 아리아를 부르게 함으로써 악보를 수정해나갔다는 점도 흥미롭고 존경스럽다. 그가 완성한 그 오페라 가운데서 그 아리아는, 註1)‘벨 칸토(bel canto) 창법(唱法)’으로 인해 성공하였다는 게 음악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벨 칸토 창법’에 관해서는 따로 아래 ‘註1)’에서 소개하겠지만, 살짝 맛뵈기로 드리겠다. 그는 그 ‘벨 칸토’를 그 아리아에 도입함으로써,‘아름다운 성악 선율의 독자적인 매력과 우아함’을 더했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자, 어지간히 뜸을 들였으니, 그와 그의 작품을 소개해도 되겠다. 그가 바로 ‘벨리니(Vincenzo Bellini, 이탈리아, 1801~1835)’이고, 그 오페라는 < Norma(노르마)>이며, 그 유명한 아리아는 작중인물 ‘노르마’가 부르는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다. 그 아리아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미국,1923~ 1977)’가 불러야 제 맛이다.
그 아리아를 잠시 듣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저작권 등의 문제가 있겠으나, 당사자들한테 양해를 구한다.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
살펴본즉, 오페라 <노르마>는 이러한 작품이었다. 요즘 들어 내가 즐겨 쓰는 ‘꼴라주(collage) 형태 수필’로 이어감을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즉, 남의 글을 따다 붙이겠다는 뜻이다.
<조국마저 버린 여인, 노르마의 숭고한 사랑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는 ‘드루이드’사람들은 로마인들을 갈리아 땅에서 내몰려고 한다.
그러나 갈리아에 파견된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진 드루이드교의 여사제 ‘노르마’는 전쟁보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신의 뜻이라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녀는 폴리오네와 사이에서 두 아이까지 낳았지만, 폴리오네의 마음이 멀어졌음에 슬퍼한다. 한편 폴리오네의 새로운 사랑이 된 여사제 ‘아달지사’는 계율(戒律)을 어긴 것에 역시나 슬퍼한다.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찾아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노래하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 노르마는 그런 아달지사를 위로한다. 그런데 아달지사의 사랑이 폴리오네임을 알게 된 노르마는, 폴리오네를 비난하며 그의 앞날을 저주한다. 폴리오네의 배신에 자살을 결심하는 노르마의 눈에 자신의 두 아이가 아른거려 아달지사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긴다. 폴리오네와 함께 자신의 아이들을 키워달라는 부탁에 아달지사는 자신은 신전(神殿)에 남을 것이며, 폴리오네의 마음을 노르마에게로 돌릴 것이라고 말한다.
총독 폴리오네가 로마로 돌아갈 것임과 더 잔혹한 총독이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드루이드’ 교도 병사들은 노르마의 아버지 ‘오로베소’와 함께 때를 기다릴 것을 결심한다. 폴리오네에게 부탁하러 간 아달지사의 노력이 허사가 된 것을 알게 된 노르마는 격분하여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 중에 아달지사를 로마로 데려가기 위해 숨어든 폴리오네를 오로베소가 발견한다. 그를 죽이려는 오로베소를 막은 노르마. 그녀는 자신이 그를 죽이겠다며 말린다. 그리고 노르마는 폴리오네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결국 노르마는 사람들을 모아 처형을 준비한다. 처형 장소에서 노르마는 처형당할, 신성을 범한 자는 자신임을 밝힌다. 노르마는 자신의 아이들의 보호를 간청하며 불길이 치솟는 화형대에 몸을 던진다. 노르마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받은 폴리오네는 그녀를 뒤따라 불 속에 들어간다.
(이상 [Daum백과] 노르마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에서 따옴.>
여사제임에도 불구하고 적장(敵將)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고, 조국을 배신한 노르마. 그러나 그녀는 정결한 여신 즉, 조국 수호신한테, 들고 일어나는 민중들을 달래며 그 앞에서 간청한다.
“정결한 여신이여! 당신은 세상 만물을 고요히 비춰주는 달빛처럼 고요한 평화를 내려주소서.(이하 생략)”
사실 노르마는 타락하여 신성모독을(?)을 한 처지이지만, 스스로 불속에 뛰어들어 속죄(贖罪)와 조국애를 완성하게 된다. 내가 당시 이탈리아의 사정을,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으며, 위와 같은 외세(外勢)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침 그러한 시기에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이탈리아 시인 겸 오페라 대본작가,1788~1865)’가 쓴 대본에다 ‘벨리니’는 곡을 붙였으니... . 사실 오페라 <노르마>는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이탈리아답게 한 덩어리로 뭉친,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벨리니’는 음악사적으로만이 아닌, 조국 이탈리아에도 큰 업적을 남긴 셈이다. 음악사적으로는 ‘벨리니’의 <노르마>는 쇼팽과 리스트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다시 수필작가로 돌아와 정좌(正坐)한 나. 나는 이승에서 누린 나이가 불과 34세밖에 되지 않았던 젊은 ‘벨리니’의 그 애착과 자긍심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만일 나의 배가 바다에 빠진다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노르마〉 하나만은 건지고 싶다.”던 그 말.
그 오페라 가운데에서 ‘아리아’ 부분 하나를 두고서도, 무려 아홉 차례씩이나 마음에 들 때까지 개작(改作)에 개작을 거듭했다는 점도 결코 놓칠 수 없다. 그것도 당대 최고 소프라노를 차례차례 불러 시연(試演)케 했으니... .
수필작가인 나는 각오를 다져본다. 나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기를.
“만일 나의 배가 바다에 빠진다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수필원고 하나만은 건지고 싶다.”
註1)‘벨 칸토(bel canto) 창법(唱法)’
벨칸토(이탈리아어: Bel canto)는 18세기에 확립된 이탈리아의 가창기법이며, 19세기 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 쓰였던 기교적 창법이다. 이탈리아어로 벨칸토(bel canto)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이다.
20세기 들어 벨리니, 도니체티, 로시니의 거의 잊혀졌던 벨칸토 오페라 레퍼토리들을 역사 속에 부활시킨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도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정의했다. 칼라스가 16세에 처음 만난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는 그때까지 메조소프라노에 속했던 칼라스의 음역을 소프라노로 확장시켰다. 당연히 칼라스는 소프라노 및 메조소프라노 배역을 모두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회고담이다.
“나는 근육을 쓰는 걸 즐기며 발전해가는 체조선수나 춤 자체를 즐기며 실력이 늘어가는 무용과 학생 같았죠.”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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