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Today
Yesterday
Total
  • 식국의 말없는 부인[息國不言之婦]
    수필/신작 2019. 11. 25. 03:51


                              식국의 말없는 부인[息國不言之婦]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문왕(文王)이 작은 나라 식국(息國)을 멸망시키고 식후(息侯)의 부인 식규(息嬀)를 취했는데, 그녀는 두 남편을 섬긴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는 초나라 문왕과 사이에서 아들을 내리 둘씩이나 낳았다는데, 내가 본 어느 TV 역사 드라마에서는 그녀가 내내 벙어리로 지냈다. 그 역사 드라마에서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었다. 문왕이 몹시 애를 태웠고, 식부인은 말 대신 글로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담아 현재의 지아비인 문왕에게 건넨다.

      ‘제발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러자 문왕은 자객을 그녀의 침소(寢所)에 들여보낸다. 자객은 그녀를 해하는 대신, 보따리 하나를 던지고 나간다.

       식부인은 그 보자기를 펼치며 대성통곡하게 된다. 그 안에는 한 통의 피 묻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편지의 요지는 이러했다.

       ‘내 나라를 살리겠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적국(敵國)에 팔아먹은(?) 놈이 욕되게 더 이상 살아서 무엇하리요?’

     

        한편, ()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王維) (699(?) ~ 759)<息夫人>이란 시를 이렇게 적었다.

     

          莫以今時寵(막이금시총)하여

          能忘舊日恩(능망구일은)이라

          看花滿眼淚(간화만안루)하니

          不共楚王言(불공초왕언)이라

        (이같이 오늘날 사랑을 받는다 하여

          지난날의 은덕을 잊을 수는 없어라.

          꽃을 보고도 두 눈에 눈물 가득하니

         초왕과는 말 한 마디 아니하였다네.)

     

       시인이 京都(경도)에서 귀족사회의 환대를 받던 스무 살 때 식부인의 고사를 소재로 당()) 현종(玄宗)의 이복형 영왕(寧王)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함을 은근히 풍자한 작품이다. 하여간, 역사는 반복되며, 동서고금 유사한 사건사고도 많은지고.

       이 시에 대해 당나라 맹계(孟棨)<本事詩(본사시)>에 다음과 같이 창작 배경을 전한다. 영왕(寧王)이 일찍이 이웃집 부침개 장수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강제로 그녀를 빼앗아 왔다. 일 년이 지났을 무렵 영왕이 부침개 장수를 불러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더니, 그녀는 말없이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며 몹시도 슬퍼하였다. 당시 좌중에는 여러 문사(文士)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으며, 일년 여 만에 남의 아내를 본디 남자한테 되돌려준 그 광경을 생각하며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때 영왕이 짓궂게끔, 그 광경을 시로 한 수씩 지어보라고 하였더니, 왕유가 가장 먼저 이 시를 지어 올렸다고 한다.

     

        식부인(息夫人)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다. 그녀는 춘추시대의 작은 나라 진()나라 장공(莊公)의 딸이다. 원래 성은 규(), 식국(息國)으로 출가한 후 식규(息媯)라고 불렀다. 얼굴이 도화(桃花;복숭아꽃)와 닮았다고 하여 도화부인(桃花夫人)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4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춘추시대 4대 미녀는 제()의 문강문강(文姜), ()의 서시(西施), ()의 하희(夏姬), 그리고 이 주인공 식부인을 꼽는다.

       식부인은, 언니가 채()나라 군주 애후(哀侯) 헌무(獻舞)에게 시집 간 후, 그녀는 식나라로 시집갔다. 식나라로 가기 위해 그녀가 채나라를 지날 때 애후가 처제를 위해 융숭한 축하연을 마련했다. 그런데 호색가인 애후가 절세미인 식부인을 보고는 처제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녀를 희롱했다. 그녀는 식나라에 도착하여 남편 식후(息侯)에게 형부인 애후의 행패를 하소연했지만, 약소국 식나라는 손위동서 애후한테 보복할 방도가 없었다. 이에 식후는 나름의 꾀를 내어 강대국 초()나라를 찾아가 문왕(文王)에게 고했다.

       “대왕께서 채나라를 정벌할 기회가 왔습니다. 우선 대왕께서 저희 식나라를 치는 척하고 출동하소서. 그러면 제가 동서지간(同壻之間)인 나라, 채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터인즉, 채나라가 출동한 뒤에 채나라로 진격하시면 손쉽게 정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초나라 군대가 출동하자 식후는 거짓으로 채나라 애후에게 도움을 청했다. 애후는 망설이지 않고 전군(全軍)을 몰아 출동했고, 그 틈을 이용하여 초나라는 텅 빈 채나라를 공격했다. 황급히 되돌아 왔으나 애후는 초나라 군대에 사로잡혀 목숨만 부지한 채 초나라에서 9년간 억류되었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사마천(司馬遷)<史記> ‘管蔡世家(관채세가)’에 전하는 식부인 사건은 여기까지이지만, <左傳>이나 <管子> 등에 그 후의 전말(顚末)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초나라에 잡혀 있던 애후는 자신이 식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복을 꾀하여, () 문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식후의 부인입니다. 천상선녀가 따로 없지요. 대왕께서 보신다면 제 말이 이해되실 것입니다.”

       솔깃해진 초 문왕은 식부인이 보고 싶어 순시를 핑계로 식나라를 찾아갔다. 식후는 초 문왕을 예의로 영접했다. 그러나 초 문왕은 식부인을 보고 마음이 동하여 식후를 사로잡고 식부인을 빼앗아 두 명의 아들까지 낳았다. 하지만 식부인은 초나라에 온 이후 문왕과는 말 한마디 않았다. 하루는 문왕이 그 까닭을 묻자 식부인이 대답했다.

      “한 여인이 두 지아비를 섬기니 죽지 못할망정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출처] 왕유(王維)의 식부인(息夫人)|작성자 향림

     

       위에서 살펴본 대로, 식부인은 기구(崎嶇)한 운명의 여인임에 틀림없다. 그 미색으로 말미암아 언니의 시댁나라인 채나라와 자기의 시댁나라인 식나라를 차례로 멸망케 하였다. 나아가서, 채나라 임금과 식나라 임금을 차례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의 나라 초나라 문왕도 그처럼 비윤리적인 인간으로 타락케 하였다. 식부인이 충격으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말문이 막혀 벙어리가 되어 지냈으리라는 거. 그것은 TV 역사극에서 그저 드라마틱하게 그리고자 애썼던 것만은 아닐 성싶다. 여성을 한낱 놀이개 내지 전리품으로 여긴 풍조가 어디 지난날의 이야기에서만 그치랴! 아직도 인류는 세계도처에서 전쟁을 겪고 있으며, 전쟁고아와 전쟁미망인과 강간에 의한 사생아와 ... .

       식부인을 다시 떠올리자니, 문득 가슴 아픈 우리네 역사 속 두 부류의 여성들이 겹쳐진다.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 중국의 원나라·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바쳤던 공녀(貢女),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되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이른바 정신대(挺身隊) 여성들. 그들 가운데에서도 더러는 식부인처럼 말문을 닫고 벙어리로 살았으리라.

       자, 식부인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자니, 못내 아쉽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 가운데에서 남성 애독자들과 약속할 게 하나 남은 거 같다. 그게 대체 뭐냐고?

       “ (지킬) 힘이 없으면, 힘을 기르지 않으면,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하는 딸아이들마저도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빼앗길 수도 있어요. 역사 속 한심한 우리네 선조들처럼요.”

       참말로, 이상화(李相和, 1901 ~ 1943) 시인식으로 다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탄해서는 아니 된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지못미,‘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는 더 는 곤란하다.

       끝으로, 식부인의 넋을 기리며...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