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7)

윤근택 2017. 8. 30. 20:47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57)

- 공감각적(共感覺的)인 음악들-

 

윤근택(수필가)

 

사실 나의 수필작품 돌둑의 어느 단락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상략)감동어린 눈으로 돌둑을 다시 바라보았다. 누가 뭐래도 그건 걸작이었다. 농부들은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둑을 짓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돌둑에는 흙과 땀에 절은 무명저고리, 해진 바소쿠리,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건, 굳은살 박인 손바닥, 벗겨져 피가 흐르는 소의 엉덩이, 날이 무디어진 삽, 부러진 괭이자루 등이 순차적으로 얼비쳐났다. 내가 바라본 돌둑에서는 구성진 격양가(擊壤歌)휴우한숨이 들려왔다. 이따금씩 탄식도 들려왔다. 돌둑에서는 땀내음과 단내가 물큰 밀려왔다. 뙈기밭은 뙈기밭으로 뻐김없이 이어져 있고, 돌둑들은 돌둑으로 다툼없이 닿아 있었다.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한 이들끼리 살갗을 맞대며 오순도순 살았을 저들 주인들처럼. 돌둑들은 어지러이 계단을 이뤄, 그 작은 무질서가 커다란 조화로 통함을 보여주었다. 등이 휜 농부는 자신의 허리를 닮은 돌둑을 쌓는 데는 이골이 났던가 보다. 끊어질 듯 이어진, 목숨줄 같은 돌둑들. 세월에 문드러지면 문드러지는 대로, 돌둑의 형체로 남아 있었다.(하략)>

요컨대, 청각·시각·촉각·후각·미각 등 오감(五感) 즉 공감각을 통해 돌둑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음악 애호가인 나는, 특히 고전음악 애호가인 나는, 몇몇 작곡가의 작품들에서 공감각적인 음악도 종종 듣게 된다는 거 아닌가. 이제 그들과 그들 작품을 소개코자 한다. 무순(無順)임을 미리 밝혀둔다.

 

달빛(Clairde lune)

 

프랑스 출신 인상주의 음악가드뷔시가 23세였던 1890년에 적은 곡이다. 그 곡을 듣노라면, 요요한 달빛을 선연히 보는 듯하며, 몽환적임을 알 수 있다.

드뷔시에 관해 뒷조사를(?) 해보았다. 그는 여성편력이 심했다. 러시아의 대부호인 나데즈다 필라레토브나스피에 폰 메크라는 부인의 후원으로, 유럽 각지를 함께 여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생아도 있었다고 한다. 결혼을 했으나, 어느 건축가의 아름다운 부인이자 가수인 블랑슈 바스니에라는 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 일로 인해 상심한 아내가 권총으로 자살까지 기도한 바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수로부터 많은 초기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예술가한테 사랑이란 필요악인 셈이다. 어쨌든, 그는 젊은 날 탐닉적인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수필작가인 내가 특히 주목하는 점이 있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문예사조였던 인상주의에 충실했다는 거. 당대의 시인이었던 말라르메집에서는 화요일마다 모임이 있었다는데, 많은 문학인들과 화가들이 모이곤 했단다. 그 모임에, 작곡가로 참여한 이는 드뷔시가 유일했단다. 그러니 그도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자연으로부터 받은 순간적 느낌을 구현코자 애썼을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하거니와,‘달빛은 그러한 인상주의의 음악이다. 당시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을 연상케 하는 음악. 드뷔시는 전통적 화성(和聲)을 지키지 않고 작곡함으로써 파리음악원 재학시절 화성학을 F학점을 받은 바도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전통적 화성의 진행을 거부하고 모호한 화음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달빛귀로 듣는 회화로도 일컬어진다. 달빛의 확산을 묘사하는 것 같은 분산화음 등이 마냥 몽롱하게 한다. 음악 평론가들은 미끄러지듯한 글리산도 주법(奏法)’이라고 한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드뷔시의 귀로 듣는 회화달빛을 한번 들어보시길. 그러면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은파(銀波,Silvery Waves)

 

미국의 워싱턴에서 1832년에 태어난 와이만. 그에 관해서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33세때에 적은 은파는 그의 대표작이다. 와이만은 바이올린 교사로 지내다가, 1869년에 음악 학교를 설립하여 후배를 양성한 정도만 알려져 있고 그 밖에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40년 짧은 생애에 종달새(Skylark)’, ‘The First ride, Caprice’등 몇 곡만 더 작곡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다.

은파는 말 그대로 은빛 물결과 같은 선율로 되어 있고, 매우 서정적이다. 장식음을 많이 사용하여 더 한층 감미롭게 느껴지는,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의 곡이다. 이 곡은 가볍게 일렁이는 은빛 파도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한 피아노곡이다. 호수나 저수지에서 가볍게 일어나는 까치놀이라고나 할까?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피아노 소품. 참말로, 은은한 파도 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곡이다. 사실 반복되지만, 약간씩만 변하는 선율로 되어 있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저수지 붕어낚시 때나 여울 갈겨니 낚시 때에 마주쳤던 잔물결을 떠올리곤 한다. 석양을 받아 비늘지던 그 잔물결. 와이만의 은파도 시각적이며 청각적이라는 거. 그도 오감을 그렇듯 자극토록 하였다.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

라 캄파넬라는,‘작은 종소리를 일컫는다. 본디는 악마의 바이올니스트로 알려진 파가니니가 적은 곡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제 3악장이었다. 사실 그의 곡은 화려하고 속도가 빨라, 파가니니 자신 외에는 연주키 어려운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랬던 곡을, ‘리스트가 그 작품 의 제 3악장인 론도(rondo)악장을 편곡하게 된다. 론도란, 처음 제시된 일정한 선율 부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기악 형식을 일컫는다.

리스트는 파가니니 대연습곡으로 묶은 6개의 피아노곡을 적게 되는데, 라 캄파넬라는 그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연주곡이다. 사실 후세 사람들은 파가니니의 원곡보다 리스트의 이 편곡이 더 빼어나다고도 한다.

이 라 캄파넬라는, 제목 그대로 작은 종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곡이다. 피아노의 현()이 만들어내는 음향이면서도 종소리같기만 한 음향. 우리네 문학인들이 말하는 의성법(擬聲法)의 언어같기만 한... . 명징(明澄)한 작은 종소리와 예쁜 종의 모양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니, 이 또한 공감각적인 음악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다시금 엄연한 수필작가로 돌아온 나. 사실 위에서 소개한 본인의 수필, ‘돌둑도 공감각을 고려해서 빚기는 했으나, 극히 제한적임을 알겠다. 앞으로는, 위에서 소개한 음악들과 같은 수필도 빚어보아야겠다. 독자들로 하여금 오감을 즐겁게 하는 수필작품을 ... .

 

작가의 말)

나는 문학인이면서도 정작 장르가 다른 음악을 통해 문학적 에너지를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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