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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한 번째, 일백 스무 두 번째 이야기-수필/신작 2021. 1. 14. 00:00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스무 한 번째, 일백 스무 두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21.
이 할애비는 몇 종류의 소나무과(-科) 소나무속(-屬) 나뭇가지들을 잎이 달린 채로 꺾어 와서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녀석한테 건네주며 말한다.
“으뜸아, 언젠가 네게 알려준 적 있다마는, 이 나무들 식별점(識別點)을 말해보렴.”
그러자 녀석은 꼼꼼하게 살피며 말해온다.
“한아버지, 으뜸이가 금세 기억해냈다? 잎이 다섯 개인 이 나무는 잣나무류, 잎이 두 개인 이 나무는 소나무류, 잎이 세 개인 이 나무는 소나무류 가운데에서도 리기다 소나무(rigida). 리기다 소나무는 잎이 빳빳하다고(rigid) 붙여진 이름.”
하여간, 녀석은 천재다. 사실 이미 오래 전에 이 할애비가 딱 한 차례 일러주었던 사항인데, 그걸 다 기억해내다니!
“으뜸아, 이참에 소나무류에 관해서만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볼까? 소나무류는 잎이 세 개씩 달리는 종류와 잎이 두 개씩 달리는 종류로 크게 둘로 나뉜단다. 앞엣것[前者]은 이미 네가 말했던 대로 리기다소나무를 비롯하여 ‘테에다소나무’와 ‘왕솔나무’가 있어. 뒤엣것[後者]은 ‘소나무’·‘방크스소나무’·‘구주소나무’·‘풍겐스소나무’·‘곰솔’·‘중국곰솔 ’·‘만주곰솔’등이 있어.”
녀석은 ‘수목학’의 근간(根幹)이 식별(識別)임을 익히 알고 지내는 터. 해서, 이 할애비의 수목학 강의가 그다지 지겹지 않은 눈치다.
“으뜸아, 수목의 식별은 ‘같은 가족이지만 멀고 가까운 관계’를 따지는 우리네 ‘촌수(寸數)따지기’와 비슷하지 않니? 나는 네 외할애이고, 너는 이 할애비의 외손주이고, 네 엄마 ‘초롱’은 이 할애비의 딸이고, 네 이모 ‘아름’은 네 엄마의 하나뿐인 동생이고... .”
자연스레, 녀석한테 ‘촌수 따지기’ 이야기로 옮아간다. 이 할애비는 녀석한테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촌수 따지기’는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제도이며 12세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디‘촌(寸)’은 대나무의 ‘마디’를 ‘친등(親等)’즉, ‘친족 관계의 원근의 차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는데 이용한 듯. 촌수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1촌(한 마디;한 세대)’으로 계산하는 데에서 출발. 1촌,3촌,5촌,7촌,9촌 등 홀수는 ‘아버지’,‘아재비’,‘할아버지’,‘조카’,‘손자’. 2촌,4촌, 6촌, 8촌 등 짝수는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형제항렬(兄弟行列). 촌수호칭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친족호칭에는 조(祖)·숙(叔)·형(兄)·질(姪)·손(孫) 등으로 세대를 표시한다. 그리고 친소(親疏)의 정도에 따라 종(從)-·재종(再從)-·삼종(三從)- 등의 접두어를 붙여 사용한다. 가령, 종형제면 나랑 4촌 관계이고 재종형제이면 나랑 6촌 관계이며 재종형제면 나랑 8촌 관계이다. ’
여기까지 듣고 있던 녀석이 어쩌자고 ‘휴우!’ 한숨까지 내쉬는지?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으뜸이한테는 안타깝게도 2촌인 형제도, 4촌인 종형제도, 6촌인 재종형제도 없는 걸! 앞으로 으뜸이한테는 촌수따지기가 아니, 분류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애. 으뜸과(-科) 으뜸속(-屬)에는 속하는 나무는 오로지 으뜸나무뿐이니깐.”
녀석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이 할애비는 언뜻 알아차린다. 하나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음으로써 형제도, 종형제도, 재종형제도 차츰 사라져 가는 ... .
참말로, 온 나라 어른들이 근심하는 인구문제를, 출산문제를 내 귀엽고 사랑스런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그 작은 입술로 지금 안타까이 말하고 있다.
나무난롯불은 사위어 가고, 굴뚝새 무리는 ‘짹짹’ 이 덤불 저 덤불 건너 저네들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122.
조손(祖孫)은 또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이 할애비한테 질문을 한다.
“한아버지, 참, 나무 접(椄)에 관해 으뜸이한테 여러 차례(제 83화, 제 120화 등에서.) 알려주었다? 우리가 먹는 과일의 9할대가 접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에서 얻는다고도 알려줬다? ‘바탕나무[臺木]’와 ‘새꽤기[椄穗]’의 개념도 알려줬다? 근데(그런데) 으뜸이는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서로 접이 되는 나무들이 따로 있는 거야? 가령, 중나무[僧木]을 바탕나무 삼아 가중나무[假僧木]를 접붙일 수도 있어?”
아주 귀중한 질문이다.
“으뜸아, 너는 지금 ‘종(種)의 개념’과 ‘분류(分類)의 사닥다리[階梯;step]’를 묻고 있구나. 자, 이제 이 할애비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줄 게.”
녀석한테 다음과 같이 강의한다.
‘ 우선, ‘종의 개념‘이다. 종은 생물 분류의 기본이 되는 단위다. 개 · 고양이 · 벼 · 보리 등은 그 하나하나가 종의 이름이다. 종은 자연 상태에서 교배(상호간 나무의 접도 포함됨.)가 되어 2세를 얻을 수 있는 생물의 무리라고 보통 정하고 있다. 암호랑이와 수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를 라이거라고 한다. 두 동물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났으므로 사자와 호랑이는 같은 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두 동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로 교배가 되지 않으므로 같은 종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동물원에서 인공적으로 수정시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수당나귀와 암말 사이에서도 노새가 태어나는데, 이 경우도 인공 교배시켜야 되며, 또한 노새는 번식 능력이 없다. 개에는 진돗개 · 불독 · 셰퍼드 · 치와와 따위와 같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들을 품종이라고 한다. 농작물이나 가축에는 특히 여러 품종이 있는데, 이것은 분류의 기본 단위가 되지 못하며, 종만이 분류의 기본 단위가 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서로 종이 다른 나무끼리 접이 되지 않는다. 가령, 소나무를 바탕나무[臺木] 삼아 복숭아 새꽤기[椄穗]로 접을 하여도 활착(活着)이 되지 않는다. 서로 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약 100만 종의 동물과 40만 종의 식물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오직 한 종뿐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거미는 약 400종이나 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종수를 차지하는 것은 곤충류로 약 80만 종이나 된다.
다음은, ‘분류의 사닥다리’다. 이미 위에서 밝혔듯, 생물 분류의 최소단위는 종이다. ‘종(種)< 속(屬)< 과(科)< 목(目)<강(綱)<문(門)<계(界)’로 차츰 큰 단계를 두어, 서로의 유연관계를 알기 쉽게 정해놓고 있다. ‘사람’을 분류학적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동물계(식물이 아니라는 뜻임.)> 척색동물문(脊索動物門;척추를 가진 동물)>포유강((哺乳綱; Mammalia; 젖먹이동물)>영장목(靈長目;‘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무리’란 뜻임.)>사람과>사람속>인종(人種;사람). 여기서 하나 놓칠 수 없는 사실. 우리네가 우리 자신을‘人種’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분히 생물학적 분류에 기초한다는 거. 식물 분류의 창시자는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인 린네(Linné, C. von : 1707~1778). 그분은 그 유명한 학명(學名; 二命法)을 고안해 내었다. 그분에 의해 체계적인 자연 분류가 처음 시작되었다. ’
위와 같이 ‘종의 개념’과 ‘분류단계’를 들려주자, 영특한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금세 연상한다.
“대한민국> 대구직할시> 경산시> 남천면> 송백1리.”
녀석의 뛰어난 이해력에 흥이 난 이 할애비. 녀석한테 나름대로 종의 개념을 설명해보라고 한다. 그랬더니, 녀석이 이 할애비보다 명쾌히 풀이한다.
“한아버지, 잠자리를 함께해서 아가를 낳을 수 있으면 둘은 같은 종. 접을 해서 ‘새꽤기’로 삼은 나무로 자라면[活着되면] 둘은 같은 종.”
녀석은 참으로 총명하다.
“으뜸아, 그러나 언제고 예외는 있는 법이란다. 그 원근(遠近)으로 따져, 종(種)을 뛰어넘어 속(屬科)마저 달리하는 나무 사이에도 접이 되는 예도 있는 걸!”
‘지적(知的)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 기어이 그것마저도 알고 지내겠단다.
“ 우리가 먹는 귤에 관한 사항이야. 탱자나무에 접을 붙여. 탱자나무가 별개의 탱자나무속에 속하는지, 탱자나무속이 귤속에 병합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단다. ‘린네’는 탱자나무를 귤속 아래에 기재했으나, 현세의 미국 식물학자 ‘스윙글’은 귤을 탱자나무속으로 분류했단다.”
“한아버지, 으뜸이가 그것까지는 알 바 없어. 다만, ‘註1)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南橘北枳).’란 고사성어가 떠오를 뿐.”
녀석이 그 고사성어는 또 알게 되었을까?
또 다시 산골 외딴 농막에는 어둠이 찾아들고.
註1)
‘ 南橘北枳(남귤북지)’ 혹은 ‘橘化爲枳(귤화위지)’의 고사에 관해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에 안영(晏嬰, ? ~ 기원전 500년)이란 유명한 재상이 었었다. 그는 영공,장공, 경공의 3개의 관직을 걸쳐 재상을 지내며 50년여 동안 집정하면서 제나라를 중흥시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다. 사마천은 <史記> 에서 안영을 검소하고 신중하며 왕을 보필할 때도 소신을 가지고 임한 명재상이었다고 칭찬했다. 공자도 안영의 훌륭한 인품과 학덕, 탁월한 지혜를 인정하고 그를 현인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안영은 ‘귤화위지/남귤북지’ 와 관련된 고사로도 유명하다.
춘추시대 말기 어느 해 초나라 영왕이 그를 초청했다. 당시 안영이 명재상으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기 때문에 안영을 만나보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직접 대면한 안영의 모습은 왜소하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를 본 영왕은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그러자 안영이 대답했다.
“사람이야 많이 있지요.”
초왕은 다시 말했다.
“내 말은, 다시 사신으로 보낼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는 뜻이오.”
안영의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외모를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예, 저희 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에 오게 되었습니다.”
초나라가 작기 때문에 왜소한 자신이 왔다는 말이었으니, 영왕이 오히려 망신을 당한 것이었다.
첫 인사부터 호되게 당한 초왕은, 안영의 기를 꺾고자 수하 관리를 시켜 죄인을 결박해 끌고 가도록 연극을 꾸몄다. 이를 본 초왕이 짐짓 저 죄인은 무슨 죄가 있어서 끌려가느냐고 묻자, 관리가 대답했다.
“ 이 죄인은 제나라 사람이온데,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러자 초왕은 안영을 보며 다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
안영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초연한 태도로 말했다.
“강남에 있는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을 모르다가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미루어 보니,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안영의 기지와 태연함에 초왕도 감탄을 했다고 한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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