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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세 번째, 일백 스무 네 번째 이야기-
    수필/신작 2021. 1. 17. 17:52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스무 세 번째, 일백 스무 네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23.

    신선로(神仙爐) 모양의 무쇠나무난로다. 조손(祖孫)은 또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의 외손주인 ‘으뜸’이한테 이 할애비가 눈가에 촉촉 이슬이 맺힌 상태에서 자못 경건히 말한다.

    “으뜸아, 이 할애비랑 노변담화를 나눈 게 어느새 123회에 이르렀다? 이 할애비가 매번 네게 들려주는 나무에 관한 토막 지식을, 나무가 전하는 진실을, 네가 한 차례에 한 가지씩만 익혔더라도 123개. 정말, 나무가 전해주는 진실은 너랑 이 할애비를 날이 갈수록 겸손하게 만들지 않니?”

    임학도(林學徒) 겸 농부 수필가인 이 외할애비의 태도에 녀석이 감탄한다.

    “한아버지, 맞아. 그건 그려(그래). 너무 고맙고 행복해. 으뜸이는 나무난롯가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아버지로부터 들어왔다? 값진 재산인 걸! 으뜸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무척 도움이 되는... .”

    참말로, 갸륵하다.

    “으뜸아, 새삼 신비롭지 않니?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이 겨울에, 나무들은 얼어 죽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아 봄이면 또 다시 활기를 찾아, 잎과 꽃과 새가지를 맺고 내어놓으니 말이다.”

    생각이 깊은 나의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고개를 갸우뚱댄다.

    “으뜸아, 이 할애비가 언젠가 네게 알려준 것도 같은데, 나무들의 겨울나기 전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단다. ‘떨켜[離層] 만들기’와 ‘얼음세포 만들기’.”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려 든다.

    이에 이 할애비는 복습차원에서 다시 아래와 같이 들려준다.

    ‘우선, 떨켜다.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잎겨드랑이[葉腋]’의 잎자루[葉柄] 끝[基部]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미련 없이 떨어뜨린다. 이때 잎들도 홀연히 길을 떠난다. 이는 아가의 젖떼기를 연상케 한다. 사실 지난 번(제 119화)에 소태나무의 즙을 젖꼭지에 바름으로써 아가와 송아지 젖떼기를 하였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나무는 그렇듯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림으로써 잎으로 가는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차단한다. 대신, 고스란히 수분과 양분을 뿌리에 저장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처럼 나무가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리는 일을 ‘방하착(放下著)’이라고 이름한다. ‘내려놓음’을 뜻한다.

    다음은, ‘얼음세포’다. 나무들은 겨울이 오면, 가지에 이른바 얼음세포를 만든다. 이 얼음세포는 세포와 세포 사이의 간극[間隙; 세포막(?)]에 여타 세포보다 수십, 수백 배 큰 얼음주머니를 만들게 된다. 우리네 아이스박스에 든 ‘아이스팩’을 연상해도 좋다. 그러면 그 얼음세포의 격막(膈膜)의 도움으로, 여타 세포들이 단열, 보온되어 얼어 죽지 않게 된다. 얼음세포는 여타 세포들의 추위를 대신 끌어안는 셈. 그러다가 봄이 오면 얼음세포는 서서히 녹아 물이 되어 새 가지, 실뿌리, 새 잎에 수분을 공급한다.’

    이 할애비의 ‘떨켜’와 ‘얼음세포’에 관한 강의를(?) 듣던 수제자(首弟子)인 외손주녀석은 매우 감탄해한다.

    “한아버지, 나무들한테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참으로, 나무들은 신비하고 위대해.”

    ‘참으로 장한 녀석! 녀석은 뒷날 분명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목학자가 될 듯.’

    “으뜸아, 덤으로 ‘보온’에 관해 네게 알려 줄 게 있다? 이불 속에다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 바(ice- bar)’를 넣어두게 되면, 오래도록 녹지 않는다? 그게 보온이다? 이불이 외부의 온도를 차단하여 차가운 것은 차갑게 유지하고, 따뜻한 것은 따뜻하게 유지하는... .”

    역시, 녀석은 총명하다.

    “한아버지, 으뜸이는 그 원리는 이미 알고 지내는 걸!”

    그래도 녀석한테 마저 들려 줄 이야기는 있다.

    “으뜸아, 있지, ‘겨울’은 ‘겨우겨우’와 통하지 않니? ‘겨우겨우 목숨만 지키는(扶持하는)’... . 그래서인지, 우린 ‘겨우살이’·‘겨우내’·‘겨울살이’ 등의 말을 두루 쓰고 있잖니?”

    그러자 녀석은 이 외할애비가 그 젊었던 시절, 청주에 소재한 국립 충북대학교 재학시절 4년간 자주 듣던 말로 응수한다.

    “한아버지, 그건 그려(그래).”

    ‘고놈 하고는... .’

    나무난롯가 어린 외손주녀석 으뜸이를 덜렁 안고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골짝 외딴 농막에는 어둠이 내리고.

     

    124.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 제 124화는 더 이상 적을 수 없어요. 요 다음에... .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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