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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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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열 아홉 번째, 일백 스무 번째 이야기-
    수필/신작 2021. 1. 11. 18:20

    수필작가 윤근택, 그는 천재입니다.

    본디 그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만,

    습작을, 줄잡아 50여 년, 원고지 분량으로, 1톤 이상 해왔던 관계로,

    서서히 천재가 되어갑니다.

    왜 수필작가들 가운데 어느 사람을 '명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부르지 않을까요?

    아무튼, 아름다운 저녁 시간!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열 아홉 번째, 일백 스무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9.

    짐짓 녀석을 골려줄 요량으로, 이 ‘만돌이농장’을 휘감아 사계절 흐르는 개여울가에 외로 선 어떤 나무의 가지를 하나 베어 왔다.

    “으뜸아, 이 나무는 무척 향기롭고 달콤해. 어디 네 혀로 가지의 절단면의 맛을 느껴보렴.”

    녀석은 이 할애비의 권유에 따라 그 작고 귀여운 혀를 내밀어 나무의 맛을 보려 한다. 녀석은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그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한아버지, 순거짓말쟁이. 이 나무는 완죤(완전) 써. ”

    이 할애비는 호방하게 웃어젖히고 녀석한테 일러준다.

    “으뜸아, 이 나무를 ‘소태나무’라고 해. ‘소[牛]의 태(胎)’ 즉, ‘소의 태반(胎盤)’처럼 그 맛이 쓴 데서 유래한 나무이름이란다. 소태나무과(-科)에 속한 나무인데, 소태나무과에는 이 소태나무 말고도 지난 번 제 101화에 소개한‘가중나무[假僧木]’가 있어.”

    녀석은 그처럼 쓸개즙처럼 쓴 소태나무의 쓰임

    에 관해 이 외할애비한테 곧바로 물어 온다.

    “으뜸아, 우선 이 이야기부터 들려주어야겠다. 너는 소젖[우유]이 아닌 엄마젖을 먹고 자란 걸로 이 할애비는 알고 지낸단다. 네 어미이며 이 할애비의 딸인 ‘초롱’은 젖을 떼려고 무척 힘들어했대. 보통 아가들은 태어난 후 6~7개월이면 젖을 뗄 수 있는데, 외동인 터라 네 동생이 네 엄마 뱃속에 없었던 탓인지, 늦게까지 젖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던데? 해서, 네 엄마는 너한테 겁을 주려고 이른바 ‘아까징끼(머큐로크롬, 빨간약)’를 젖꼭지에 바르곤 했다던데?”

    녀석은 다소 쑥스러워하며 소태나무와 ‘머큐로크롬’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예전에, 이 외할애비의 아버지이시자 네 외증조부이신 분께서는 송아지 젖떼기를 할 적에 어미소 젖꼭지에다 소태나무즙을 바르곤 했단다. 송아지는 태어난 지 60일~70일이면 젖떼기에 알맞은 시기였기에. 사실 시골 엄마들 가운데 연년생 자녀를 둔 분들도 소태나무즙을 ‘아가 젖떼기’ 약으로 젖꼭지에 바르곤 했단다. ”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중간점검을(?) 한다.

    “한아버지, 소태나무는 소의 태반처럼 쓴 나무. 아가나 송아지 젖떼기에 쓰였던 나무. 근데(그런데) 다른 나무들처럼 소태나무도 별명을 여럿 가졌을 텐데... .”

    언제고 녀석의 질문은 이 할애비를 신명나게 한다. 해서, 덤으로 녀석한테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 소태나무는 고련(苦楝)·고목(苦木)·고담목(苦膽木)·산웅담(山熊膽) 등의 별명을 지니고 있다. 소태나무의 학명은 Picrasma quassioides(D.Don.) Benn.‘Picrasma’은 ‘쓴맛[苦味]’을 이르는 희랍어이고, quassioides’은 나무줄기껍질에‘콰시아(quassinin)’라는 쓴 성분이 들어있는 나무임을 뜻한다. 콰시아는 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던 대로 이유제(離乳劑)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구충제·건위제·소화제·식욕촉진제로도 쓰인다. 우리가 ‘소태같이 쓰다’라고 하는 말은 바로 소태나무 껍질 쓴 맛에서 비롯되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한아버지, 으뜸이한테 소태나무의 별명 가운데에는 ‘산웅담(山熊膽)’도 있다고 조금 전에 말했어. 웅담이면, 텔레비전 어느 제약회사 의약품 광고에서 ‘곰의 쓸개’로 알고 지내는데... .”

    녀석이 무엇이 연상되어 하는 말인지 알겠다. 녀석은 중국사극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떠올린 듯하다.

    와신상담, ‘ 섶에 누워 자고 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르는 말. 중국 춘추(春秋) 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섶에 누워 잠을 자며 복수를 꾀하여 월(越)나라의 왕 구천(句踐)을 항복시켰고, 패한 구천은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꾀하여 다시 부차를 패배시킨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으뜸아, 꼭히 우리가 아직 맛본 적 없는 곰의 쓸개가 아니더라도, 조금 전에 네가 맛보았듯, 소태나무도 정말 쓰지 않던?”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를 더 보탠다.

    “한아버지, 엄마는 으뜸이 젖떼기에 고생을 하였겠지만, 그래도 으뜸이는 소젖을 먹고 자란 그 많은 ‘뿔 달린 소새끼’들과 달리, ‘온유한 사람새끼’라서 무척 행복한 걸. 으뜸이는 엄마의 젖가슴에 묻혀 사랑으로 자라난 아이이니까.”

    이 외할애비는 조금은 앞질러 나간 외손주녀석의 말이 다소 맘에 걸리기는 하지만, 소태처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어려운 여건에도 녀석한테 모유를 먹여 키운 큰딸 ‘현지’가 갸륵하다.

    또 다시 어둠은 산골 외딴 농막에 찾아들고, 멀리에 있는 으뜸이 에미가 보고싶기도 하고... .

     

    120.

    어느새 나의 이야기는 제 120화에까지 이르렀다. 조손(祖孫)은 다시 신선로(神仙爐) 모양의 나무난롯가. 이 할애비는 오전에 조선낫을 들고 두릅나무숲을 이룬 뒷산에서 두릅나무 사이에 난 잡목들을 베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낫에 왼손 검지를 살짝 베였다.

    나무난롯가에서 일회용 반창고를 새로 갈아 손가락을 처매면서, 근심하는 녀석을 안심토록 한다.

    “으뜸아, 괜찮아. 곧 아물 거야. 원숭이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수도 있다지 않던?”

    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으뜸아, 어디 한 번 복습해볼까? 이 할애비가 언젠가 너한테 ‘상처 아물기 과정’(제 83화에서)을 들려준 적 있는데... .”

    녀석은 용케도 기억해 낸다.

    “ 그때 한아버지는 으뜸이한테, 손가락이든 나뭇가지든 상처가 나면, ‘삐오!삐오!삐오!’ 119구급차가 그곳으로 달려간다고 했어. 우리네 상처 난 곳이 욱신거리는 것은, 호르몬 등 상처 아물기에 유용한 물질이 그곳에 집중되는 생리현상. 마찬가지로, 식물들도 상처 난 부위에 그렇듯 ‘옥신’ 따위의 호르몬이 집중된다고 했어. 한아버지가 나무 접하기, 휘묻이 하기, 꺾꽂이 하기 등도 그 이치를 그대로 응용한 것이라고 했어. 식물도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상처 난 부위를 아물게 하고자 영양분을 그곳에 보내 물사마귀 모양의 조직(組織)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걸 ‘유상조직(癒傷組織;상처 아물게 하는 조직)’ 혹은 ‘칼루스(callus)’라고 부른다고 했다? 특히, 한아버지가 봄마다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접(接)하고 비닐테이프로 처매는 이유가 두 몸체가 하나 되도록 도아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고놈, 접의 원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구나.’

    이 할애비는 과일나무 등 나무를 접하는 원리와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보충설명을 하여 준다.

    ‘우선, 접붙이기의 원리다. 접붙이기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식물을 인위적으로 만든 절단면을 따라 이어서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재배 기술. 이 경우 일반적으로 한 식물은 뿌리를 남겨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바탕나무’가 되는데, 이런 나무를 ‘대목(臺木; rootstock)’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이 과실 등을 얻기 위한 목적이 되는 나무를 ‘새꽤기’·‘홰기’·‘호기’·접수(接穗: scion)· 수목(穗木) 등으로 두루 부른다. ‘바탕나무’와 ‘새꽤기’의 부름켜[形成層]를 정교히 맞춰, 물관[水管]과 체관[篩管]을, 마치 끊어진 고무호스를 연결하듯 하는 작업. 그러면 상처부위가 아물고 세포분열이 일어나 멀쩡한 한 몸체를 이뤄 생장을 하게 된다. 다음은, 접붙이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일단 대목의 영향을 받아서 접수 즉, 새꽤기가 자라는 방식이나 형태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수확량과 품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병충해에 내성이 있는 바탕나무를 사용함으로써 병충해 피해를 막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 잘 자라지 않는 나무를 젊은 나무로 접붙임으로써 자라는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열매가 맺히는 시기를 빨리 할 수 있다. 감나무의 경우, 감나무씨는 감자씨와 마찬가지로 퇴화(退化)가 심해서, 감나무씨앗을 심으면 ‘고욤나무’가 되어버리는데, 이때 고욤나무를 바탕나무로 삼아 감나무 접수로 접함으로써 본디의 감나무 형질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종자생산이 어렵거나 드문 나무의 종족 번식 내지 개체수 늘리기에도 접은 아주 효율적이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로 접을 한다.’

    “한아버지, 이젠 충분히 이해했어. 으뜸이가 가장 흥미로워 하는 사실은, 나무 접은 꼬마신랑이 엄마 같은 여자나 누님 같은 여자와 잠을 자면, 아가가 생기는 이치와 같은 거. 꼬마신랑은 나이 든 여자와 아가를 낳음으로써 나이든 부인과 동시에 어른이 이치.”

    ‘아주 맹랑한 녀석 같으니라고!’

    어쨌든, 이 할애비가 더 이상은 녀석한테 접의 원리와 이점을 강의하지 않아도 될 듯.

    “으뜸아, 우리가 먹은 대부분의 과일은 농부가 접붙인 과일나무에서 얻는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9할대 이상이 접목에서 얻을 걸?”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눈이 휘둥레진다.

    “한아버지, 정말?”

    산골 외딴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내리고, 나무난롯불은 사위어가고.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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