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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냄새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 연수원 기숙사 사감(舍監)으로 근무하는 나. 여러 소소한 업무 가운데 ‘방문 열기’도 포함된다. 연수생들이 일제히 퇴실하면, 부인 넷으로 구성된 ‘미화팀’은 말끔하게 청소를 하게 된다. 청소가 끝나고 미화팀이 퇴근한 저녁 무렵, 나는 62개 호실의 문을 밤새껏 열어두게 된다. 환기를 하기 위함이다. 아니, 사람 냄새를 없애기 위함이다. 흔히, 인간미를 두고, “그이한테서는 사람냄새가 난다.”식으로 말하지만, 내 업무의 특상상 사람냄새가 싫은 것이다. 사실 연수생 수칙상, 실내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도록 되어 있으나, 가끔씩 담배냄새를 남기고 가는 얌체족 연수생도 있다. 미화팀 부인들은 이불호청을 갈고,베갯잇을 갈고, 패드를 가는 등 애를 무척 씀에도, 설문서에다 ‘담배냄새 배어 있었음’ 등의 글을 적어 우리네를 곤혹스럽게 만든 예가 있다. 사실 골초인 나는 재차 호실점검을 하느데도 담배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 설문서를 적은 이가, 차라리 사전(事前)에 다른 방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으면 될 것을. 그 한 줄의 민원으로 인해, 멀쩡한 이불호청까지 다 갈고, 세탁소에다 그 많은 세탁물을 맡기는 등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 꼭히 담배냄새가 아니더라도 유난히 냄새가 배인 방도 있긴 있다. 그런 경우,방향제(芳香劑)를 뿌리면 될 게 아니냐고 할 독자님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자칫 방향제를 뿌리면 냄새를 더 나게 하는 일도 있더라는 사실.
마침 오늘은 노동절이라, 묵고 있는 연수생이 전혀 없다. 한 바퀴 둘러보다니 맞교대자 장 사감도 진작에 방문들을 다 열어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열린 방문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인간은 참으로 지저분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머리,턱수염,이빨,얼굴 등을 물로 씻는 등 관리하지 않으면 마련 없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고양이든 강아지든 송아지든 동물들은 씻지 않음에도 냄새도 풍기지 않고 이쁘기만 하던데… . 인간의 그 지저분함과 그 내음이, 잡식성 동물임과 전혀 무관치 않으리라. 인간이 향수(香水) 따위를 쓰게 된 이유도, 본디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자신의 불결함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향수나 화장품 등으로 더 치장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더 불결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왜? 신체구조가 남성에 비해 부품(?)이 더 많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여성비하로 내몰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로 짐승들은 암컷보다 수컷의 외양(外樣)이 아름답지 않더냐고? 동물인 인간들인들 다를 바 있을라고?
이번엔, 어떤 방향물질(芳香物質)을 떠올린다. 우리가 숲 속에 들어가면 상쾌한 기분이 되는데, 수목들이 내뿜는 방향물질 덕분임을 두루 아실 것이다. 사실 그 물질은 ‘테르펜’인데, 그들 수목들은 병원균, 해충, 곰팡이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물질을 내어 놓는다. 우리네는 이른바,산림욕(山林浴)을 곧잘 즐기게 된다. 특히, 편백나무의 ‘테르펜’은 효능이 뛰아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산림욕을 제대로 즐기려면 편백나무숲으로 가라. 1937년 러시아의 생화학자 토킨(Boris P. Tokin)은 수목들의 방향물질을, ‘파이톤쌰이드(Phytoncide; ‘피톤치드’라고도 한다.)’라고 명명하였다. ‘phyto(식물;수목)’와 ‘cide(죽이다)’의 합성어이다. 우리네 임학 관련 학자들은 주로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던 관계로, ‘파이톤샤이드’를 일본어식으로 ‘피톤치드’라고 번역하였을 따름이다. 명색이 임학을 전공했던 나. 이 글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앞으로는 ‘파이톤샤이드’라고 고쳐 부르길 원한다. 어쨌든, 수목이 내어놓는 ’테르펜’은 우리네 몸 냄새 제거 뿐만 아니라 살균소독도 도와준다. 이곳 연수원을 찾는 이들한테 잠자기 전 ‘숲 속 거닐기’를 필수과정으로 잡으라고 연수원 관계자들한테 건의해 볼 만하다.
몸 냄새를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시(詩)가 한 편 있다. 바로 김소월의 ‘여자의 냄새’다.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아니 땀냄새,때묻은 냄새./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냄새.// 푸른 바다… . 어즈리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던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어무러져 빗기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 지나간 숲 속의 냄새/ 유령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 두덩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위 시에 관해 잘은 모르겠다. 하더라도, 김소월은 여자체험에 관한 내용을 적은 것임에 틀림없다. 세상천지 어느 남정네가 여자 냄새를, 그것도 외간 여자의 몸 냄새를 싫어하리오. 사실 이 연수원 사감으로서야 여성 연수생이 머물렀던 기숙사에서 너무 진하게 나는 향수 내음과 화장품 내음이 역겹기는 하지만… .
내가 지난 직장에서 휴대전화를 많이 팔아서, 회사에서 일체 부담한 금강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사실 해외여행(?)은 처음이자 전부였다. 그때 가이드는, 북한 당국이 목욕탕 관리를 하는 방법에 관해 들려준 바 있다.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들은 1년 주기로 남탕과 여탕을 맞바꾼다고 하였다. 그러면 냄새가 사라진다고 하였다. 남성의 고유한 살내음과 여성의 고유한 살내음이 서로 섞여 중화(中和)된다는 말 아닌가. 실제로, 남자만이 혼자 지내는 방에서는 고유한 내음이 나곤 한다. 우리는 그 내음을 ‘홀애비 냄새’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혼자 지내는 방에서도 고유한 냄새가 난다. 그 홀애비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남녀가 한 방에서 살아야 하고, 한 방에서 자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러기에 독신으로 살아서는 아니 된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홀로 사는 노인들 방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 방에서는 노인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그 냄새의 주범은 ‘노덴알 디하이드’란 물질인데, 세포가 죽어가면서 또는 신진대사가 원활치 못해서 생겨나는 냄새라고 한다. 물론 매일 목욕하거나 옷을 자주 갈아입거나 운동을 끊임없이 하는 등으로 냄새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노인을 외로이 두지 말고, 젊은이들이 모시고 어울려 살게 되면 그 냄새는 줄일 수 있으리라.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지만, 홀애비냄새를 근원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거세(去勢)를 하게 되면, 남자 냄새가 사라질 것이다. 지난 날 국민학교시절 ‘실과’ 과목에서 익힌 가축 불까기[去勢]의 이점을 다시 떠올려 보면, 분명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 이점은, 육질이 부드러워진다,성질이 온순해진다, 성장속도가 빨라진다, 고기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등이었다. 그러니 남자의 성기능을 마비시키면, 남자 특유의 냄새도 사라진다는 걸 유추할 수가 있다. 내가, 그저 이 직장 말단(末端)에 있는 내가, 연수생들의 불을 함부로 깔 수도 없으며, 남녀 혼숙을 권장할 수도 없으며, 목욕을 꼭 하고 주무시라고 권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
끝으로, 몸냄새를 감추기 위해 개발된 향수(香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동서고금 가장 고전적인 향(香)은 향나무에서 얻었다고 한다. 우리네 개국 설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 여기서 말하는 ‘檀’은 ‘박달나무과의 나무’를 일컫기도 하지만, ‘향나무의 총칭’이라고도 한다. 종교적인 의식에 향불 또는 향수(향나무로 낸 물)를 썼음을 암시한다. 불결한 몸을 씻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음을… . ‘묘향산(妙香山)’이란 지명도 그러한 연유에서 지어 불렀다고 한다. 서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향나무에서 얻은 향불을 피우고 향수(향나무로 낸 물)로 목욕을 했단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갖가지 방향식물을 찾아내어 향수를 만들게 되었다. 내가 아는 향수 가운데는 ‘코코 샤넬 NO.5’이 있다. 그 향수를 개발한 여성 패션 전문가 ‘가브리엘라 샤넬(Gabrielle Chanel, 프랑스 , 1883~1971)’이 붙인 이름이다. 사실 나는 어떤 향내를 풍기는 향수인지 모른다. 다만, 샤넬은 젊은 날 보육원에 맡겨진 불우한 소녀였고, 그녀는 거기서 봉제기술을 익혀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창안해 내었고, 처녀시절에는 술집을 전전하면서 지냈던 덕분인지(?) 후일 위에서 소개한, 자기 애칭 ‘코코(Co Co)’를 붙인 향수까지 개발하였다. 편견일는지 모르나, 화류계의 여성들은 유난히도 향수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 놈 저 놈 불결한 남정네들을 만나야만 했으니 그리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불우했던 샤넬이 만들어 전세계에 이름을 떨친 향수이기에 그 이름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향수이름 가운데는 ‘오 데 코롱(eau de cologne)’도 있다. 향수는 아니지만, 향신료로 쓰이는 ‘민트(mint)’라는 식물도 기억하는데, 그 민트가 들어간 껌을 잘도 씹곤 하였다.
이제 두서 없는 글을 정리해야겠다. 직장 관계상 남이 묵었던 방을 틈만 나면 열어젖혀 그들이 남기고 간 몸냄새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야만 한다. 살과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건만, 그 살내음을 부득이 멀리해야만 하는 나. 사실 우리네 감각기관 가운데 코 즉, 후각은 가장 예민하면서도 가장 빨리 마비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령 분뇨 내음이 물큰한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설 때는 힘들어도, 앉아서 볼일을 보는 동안 그 냄새에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이치를 안다면, 그 누구든지 남이야 힘들든 말든 ‘냄새가 나서 도저히… .’ 따위의 볼멘소리를, 그것도 뒷북을 치는 말 따위를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 그러한 이치를 안다면, 너무 진한 향내가 나는 향수 따위를 발라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한 인격자는 상대를 금세 질식하게 한다는 것을.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이야말로 상대를 오래도록 상쾌하게 한다. 마치, 수목들이 내어놓는 ‘테르펜’처럼. 그 무엇보다도, ‘인간은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노래하면서, 사람 사는 곳에 사람 냄새 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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