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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초를 하고
    수필/신작 2014. 5. 8. 07:07

     

               예초(刈草)를 하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새벽엔 분무기를 지고 고추밭으로 나섰다. 고추 모 복토(覆土)마다 제초제를 쳤다. 고추 모 생육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잡초발아가 억제되는, 이른바 토양처리제 제초제를 그렇게 친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닌가. 그러한 제초제를 일컬어 선택성 제초제라고 한다. 제초제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그 다음 작업은 복숭아밭에 병충방제였다. 밭에 세워둔 경운기로, 살충제·살균제·영양제 등을 두루 섞어 약제를 뿌리고 있었는데, 분사력(噴射力)이 떨어지고 호스가 터지는 등 연장들이 말썽을 부려 제법 애를 먹었다. 사실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부치는 분들마저도 이러한 경험을 종종 하게 될 것이다. 잠시잠깐 끝낼 일임에도, 기계가 속을 썩이면 한 나절을 잡아먹는 예가 있다.

    개울에 나서, 홀라당 벗고 온몸에 묻은 농약들을 말끔히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점심삼아 막걸리를 두 대포 쭉 빨아당겼다. 역시 막걸리 맛은, 쉴 참에 논두렁에서나 밭두렁에서 마실 때 최고다. 잠시 낮잠을 자고 오후 일과를 시작해도 될 일이었으나, 막걸리 힘으로 일을 재촉하였다. 이번엔 한 해 동안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던(?) 예초기(刈草機)를 꺼냈다. 그리스(grease)를 묻혀야 할 곳에는 그리스를 바르고, 칼날 대신으로 쓰는 칼줄(?)도 새로 감고,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지정된 비율로 섞어 연료통에 넣었다. 사실 지난 해 쓰던 연료가 연료통에 조금 남아 있기는 하였다. 여기서 잠시. 독자님들께 덤을 얹어 드려야겠다. 예초기든 관리기든 곧바로 되쓰지 않고 오래도록 두는 요령이다. 연료 콕을 잠그고서 연료배급로에 남은 연료를 완전연소시켜야 한다는 사실. 그렇잖으면 점화플러그 등에 연료가 묻어 다음 번에 쓸 적에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애를 먹게 된다. 나야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늘 그렇게 간수한다. 시동밧줄을 몇 차례 당겼더니, 용케도 하며 시동이 걸렸다. 안전모를 쓰고, 예초기를 메고 300여 평 복숭아 밭 풀베기를 이내 끝낼 수 있었다. 알뜰히 낮춰 베지 않고, 건성건성으로 높여 벴다. 그것도 스스로 터득한 나의 지혜다. 뒤에 이야기할 잡초의 광발아성(光發芽性)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잡초 가운데 후발주자(?)는 이미 들어찬 잡초 그늘에 치여 촉을 틔우지 못한다는 거.

    새벽부터 시작된 나의 일과는 이로써 끝났다. 지금은 전등을 밝힌 채 농막에 우두커니 앉은 밤. 뒷산에서 소쩍새가 울어댄다. 문득, 연장이 일을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그만한 밭뙈기라도 낫으로 풀을 베자면 종일 걸렸을 터인데 . 나는 이 밤, 풀과 제초제와 예초(刈草)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독자님들께 들려드리고자 한다. 내가 이 글 제목을 풀베기로 정하지 않고, 굳이 예초(刈草)라고 한 이유부터 말해야겠다. 많은 이들이 예초기  애초기 또는 예취기 등으로 두루 부르고 있어,이번 기회에 정확히 알고 넘어가자는 뜻도 담겨 있다. 여기서 쓰인 풀 벨 예. 그 생김새만 보더라도 단칼로 무엇을 베어내는 듯하지 않은가. 같은 뜻과 같은 음()을 지닌 한자가 있긴 하다. 바로 . 아비 에서 위 두 획이 떨어져 나간 글자다. 풀 벨 예로도 읽지만, ‘풀 벨 애로도 읽는다. 아무튼, 풀을 베되, 단칼에 베어내는 게 예초예초기의 진정한 의미다. 사실 많은 이들은 위험한 칼날을 다는데 비해, 나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칼줄을 달곤 한다. 그러면 바윗돌이나 둥치 큰 나무 등과 마주쳐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그 줄은 특수한 줄이다. 회전하는 두 가닥의 줄이 그렇듯 풀을 베다니 신기롭지 아니한가. 그러한 걸 어떻게 고안해냈더란 말인가. 그 줄은 마치 회초리 같다. 고안자는 낫 대신 회초리를 들고 세차게 내리쳐도 풀이 베인다는 점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를 일. 아니면, 채찍으로 알몸의 노예를 세차게 때려도 살갗이 터지더란 점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를 일. 사실 나는 그 줄이 예사로운 줄이 아님을 안 지가 몇 해 아니 된다. 국산 줄보다는 미국산 줄이 나았다. 그 줄의 단면은 네모꼴이었다. 네 모서리가 칼의 날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그 고안자는,단면이 동그라미꼴인 줄보다는 효과적이라는 것을 또 어떻게 알았더란 말인가. 예초기에 관해서는 이 정도 소개면 될 성 싶다.

    이번엔 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성가신 풀을 잡초(雜草)라고 한다. 잡초학(雜草學)에서 내린 잡초의 정의는 사뭇 다르다.

    인간이 목적하는 식물은 작물이라 하고, 목적하지 않는 식물은 잡초라 한다.

    가령, 나물로 얻고자 비름을 재배하는데, 밭 군데군데 보리가 자라고

    배추가 자란다면, 보리와 배추는 잡초라는 의미다.

      어쨌거나, 농부의 일과는 잡초와 전쟁이다. 낫으로,호미로, 괭이로 발본색원(拔本塞源)한다고 하여 제초작업이 연간 일회성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알뜰히 김을 매게 되면, 오히려 잡초가 더 발아하여 활개를 친다는 사실. 이 무슨 아이러니냐고?  대체로, 야생식물(이 글에서는 편의상 잡초라고 하자.) 씨앗의 크기는 작물의 씨앗보다 잘다. 이는 잡초들의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사람이나 조류(鳥類)의 눈에 잘 띄지 않아야 살아남게 되니까. 잡초씨앗과 작물씨앗의 근본적 차이점은, 그 외형에만 있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발아(發芽)의 메커니즘도 다르다. 잡초씨는 광발아성(光發芽性)을 지녔다. , 빛을 보기만 하면 촉을 틔운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해 작물의 씨앗은 설령 빛이 없더라도 일정 온도,일정 습도 등을 갖추고, 일정 휴면기(休眠期)만 지나면 촉을 틔운다. 참으로 흥미롭지 아니 한가. 지혜로운 학자들은 그러한 비밀을 알아내었던 것이다. 그걸 응용하여 토양처리제로 일컬어지는 제초제를 개발하게 이르렀다. 비교적 깊이 묻게 되는 작물한테는 약해가 없고, 얕게 묻힌 잡초의 씨앗은 아예 발아를 못하도록 코팅해버리는 방법. 나는 이미 대체로 잡초의 씨앗은 잘다고 말하였다. 어느 씨앗이든 자기 몸 부피보다 턱없이 깊이 묻혀 있으면 싹을 틔우지 못한다. 그러니 이 자잘한 잡초의 씨앗들 가운데 땅거죽으로부터 1~2cm 아래 이내에 있는 녀석들만 싹을 틔우게 된다. 그것도 언뜻언뜻 비추는 햇빛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내가 위에서 호미로 김매기를 자주 하면 잡초발생이 많아진다고 했는데, 공연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대신, 토양에 깊이 묻힌 녀석들은 기회만 엿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오냐 오냐 돌봐주는 작물의 씨앗은 너무 깊이 묻어두면 이내 썩어버리지만, 잡초의 씨앗은 생명력이 질겨 오래도록 활력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첫 단락에서 소개했던, 토양처리제로 일컬어지는 제초제 개발의 기본원리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회 닿으면, 잡초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작품으로 다시 지을 터이니, 이 정도로 그치자.

     이번엔 제초(除草)와 제초제에 관한 이야기다. 除草라는 어휘 자체가 잔혹성을 띤다. 한마디로, 끝장을 내고야 말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그런데 비해, 서양사람들은 weed control이라고 한다. 풀 관리로 풀이할 수 있으니, 공존동생(共存同生)의 뉘앙스를 지닌 셈이다. 우리네는 풀을 초전박살(初戰搏殺)의 대상으로 아니, 초전박살(草戰搏殺)의 대상으로 삼는 편이다. 전세계에는 300여 종의 제초제가 있다는데, 우리나라 농약회사들이 만들어 낸 제초제가 100여 종 된다니 이를 반증한다고 볼밖에. 내가 살펴본 바, 성보·영일·동방·바이엘·에스엠·경농·삼공·한농·동부정밀 (無順임.) 등이 제초제를 각각 만들어 내고 있으며, 연구진도 각각 포진하고 있다. 제초제의 작용 기작(농학에서는 주로 메커니즘기작이라고 표현한다.)은 여럿 있다. 식물생장호르몬인 옥신 작용 교란, 단백질 합성 저해, 세포분열 저해, 광합성 저해, 엽록소 파괴, 광활성화,과산화물 생성화, 호흡저해, 세포괴사 등. 이러한 기능 가운데 하나 또는 여럿을 행하는 화합물이 바로 제초제인 것이다. 특정 잡초의 치명적 약점 즉, 작용점(作用點)을 노린 약제들이다. 우리네 농부들은 집집이 제초제를 가지고 산다. 그럴밖에 없다. 농부들이 노령화되어 가고, 힘에 부치는 관계로. 제초제는 생력농업(省力農業)의 총아(寵兒). 제초제를 두고, 인체에 유해하다느니,토양을 오염시킨다는니 우려들을 많이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전혀 달랐다. 요컨대,소금보다도 덜 위험한 약제라고 하였다. 소금은 매일 먹게 되지만, 제초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초제는 일단 토양에 닿기만 하면, 여러 방식으로 분해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토양 1g당 수천만 내지 수억의 미생물이 존재하는데, 그것들 가운데 더러는 제초제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은 사실이란다. 그러나 그 미생물 종류의 비율은 잠정적으로 달라지나, 전체 양은 불변한다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제초제 분해자들 여럿 가운데 미생물도 포함된다고 한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토양에 본디 제초제 성분으로 잔류하는 양과 그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들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월남전에 쓰였던 오렌지 에이전트라는 별명을 지닌 고엽제와 지난 해 (2013) 시판 금지된 그라목션 때문이란다. 그것들 두 종류가 많은 이들한테 불신을 키웠을 뿐이란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독자님들께서 지칠세라, 나의 이야기를 이 정도에서 매듭짓기로 한다. 아무튼, 농부들 일과 가운데 풀과 전쟁은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 풀과 전쟁은 작물 수확량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농부는 작물과 잡초 사이의 양분,수분 쟁탈전에서 작물을 편들 수밖에 없기에. 그러나 과수(果樹)의 경우, 위 세 번째 단락에서 내가 말했듯, 적절하게 잡초를 남겨둠으로써 여타 잡초가 발생하지 않게 되는 효과를 거두는 등 잡초는 우리에게 이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그러한 농사방식을 두고, 초생재배(草生栽培)라고 한다. 초생재배야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다. , 잡초를 베어 발효시키면, 좋은 유기질 비료가 되는 등 농부들한테 이로움을 주는 예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존재든 그저 손가락질만 할 수 없다는 걸 잡초는 일깨워준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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