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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솎음'에 관해
    수필/신작 2014. 4. 29. 12:18

                      

    솎음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마침 밖에 비가 내려 토양이 꼽꼽하다. 나는 이러한 때를 기다려, 각종 작물의 어린 묘를 이식(移植)하곤 한다. 오늘은 우의(雨衣)를 입고, 오전 내내 더덕 묘를 옮겨 심었다. 잠시 이 더덕 묘의 내력을 소개해야겠다. 이른 봄, 신호어른(그 어른 택호임.)네는 포도밭을 폐원(廢園)하고, 거기다가 더덕 씨를 갈았다. 기왕의 철사 덕과 콘크리트 지주를 재활용하면 될 성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댁 둘째아드님이자 내가 객지 아우로 지내는 상문씨가 일을 크게 그르쳤다. 그는 더덕씨앗을 거의 들어붓다시피하여 싹들이 달게, 즉 배게 나서 앞으로 일이 걱정이다. 그것들을 솎아내어 제대로 더덕밭을 만들자면, 고생께나 하게 생겼다. 해서, 내가 그 아우한테 넌지시 말해 둔 바 있다. 비 오는 날 신호어른 부처(夫妻)가 모르는 사이 제법 솎아 올 거라고. 두 분은 본디 욕심이 많은 터라, 복숭아 알 솎기 등도 게을리 해온 터. 하기야 그것이 욕심이라기보다는 농심(農心)이긴 하다.

      더덕 묘를 옮겨 심는 동안, 내가 넷째누님 내외분한테 또 약 올릴(?) 말이  생각났다. 그분들은 내가 임대한 300여 평의 농토를 부치고 있다. 그러기에 두 분은 자주자주 이 만돌이 농원에 찾아든다. 대체, 무슨 말로 약을 올릴 거냐고?

      매형, 보세요. 파밭이든 상추밭이든 김을 매려고 그렇게 애쓰지 말고, 저처럼 반대로 파나 상추를 뽑아 보세요.”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은 농부한테도 필요하며, 그것은 훌륭한 농사기술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가령, 파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싶으면, 나는 김을 매는 대신에 파를 모조리 뽑아버린다. 그렇게 뽑은 파를 한 데다 모아 하루 이틀 가식(假植)해 둔다. 그리고는 잡초만 남아 주인 행세하는 그 밭 자리를 관리기로 로터리 하거나 제초제를 쳐서 잡초를 박살내다. 그런 연후에 내가 목적하는 작물인 파를 다시 그 자리에다 원래대로 심게 된다.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신호어른네는 앞으로 김매기를 여러 차례 해야 할 테지만, 나는 손쉽게 더덕 묘를 키워 낼 것이다. 이는 내가 터득한 생력농업(省力農業)의 기술이다. 상추도 그렇게 한다. 이른 봄, 누님 내외분은 부지런을 떨며 비닐 멀칭을 하여 상추며 쑥갓이며 엇갈이배추며 온갖 채소를 갈곤 한다. 촘촘하기 이를 데 없으며, 씨앗 값도 만만찮았을 터.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밭을 장만한 후 그것들 어린 묘를 몇 추림씩 솎아다가, 곧 잎이 벌어질 걸 감안하여 한 뼘 간격씩 심곤 한다. 그 출발은 더디나, 해마다 나의 채소농사의 끝은 누님네보다 낫다. 요러한 걸 알고 실천하면, 그야말로 재미가 쏠쏠하다. 이러한 지혜를 하루 아침에 얻은 것도 아니지만, 그 바탕에는 사고의 대전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있다는 점.

    이제 나는 솎음에 관해 더욱 파고들고자 한다. 솎음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 가운데서 군데군데 뽑아내어 성기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솎음은 선발(選拔)’도태(淘汰)’의 의미를 동시에 지녔다. 건너편 신호어른네  더덕밭에서 내가 어린 묘를 솎아온 것은 선발이지만, 장차 그분들이 달게자란 더덕 묘를 뽑게 될 일은 도태다. 선발이란 어휘는 야구에서 흔히 쓴다. 1회부터 나오는 걸 선발투수등으로 말한다. 그렇게 뽑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솎음은 발본색원과도 의미가 통하는 말이다. 잡초를 뿌리째 뽑아 멀리 버리게 되는 일. 솎음은 색출과도 의미가 통하는 말이다. 머리 밑에 숨은 이[]를 찾듯 샅샅이 뒤져서 찾는 일이다. 농부한테 솎음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위 더덕 묘의 예만이 아니다. 과일나무의 알솎기는 꽤나 힘들고 중요한 작업이다. 대체로,그 솎음은 도태의 의미를 지닌다. 농부들은 알솎기를 일컬어, ‘다마돌이(일본말에서 온 말임.)’, ‘씨 추기(‘추리기의 사투리)’라고 두루 말하곤 한다.

    솎음에 관해, 독자님들께 아주 당연한 걸 아주 태연하게 알려드릴 게 있다. 내 이야기는 질문 하나를 던지는 걸로 출발함이 옳겠다. 작물을 본밭에다, 그 작물이 장차 차지할 공간을 감안하여,직파(直播)하지 않고, 묘상(苗床)에다 씨를 뿌리되, 밀식하여 후일 솎아서 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들 하시는지?  볼 것 없이 어린 묘 관리 용이함이 가장 큰 이유다. 병충 방제 등도 훨씬 수월하니까. 그리고 작물이 지닌 성질도 감안한 것이다. 대체로, 여느 식물은 이식을 거듭할수록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씀으로써 더욱 강인해지고 열매도 충실히 맺는다. 내가 적은 들깨는 시집을 보내야란 수필에서도 그러한 이야기를 이미 적은 바 있다.  묘상에다 어린 묘를 배게심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실 이는 내가 익힌 재배학원론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다. 그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부추겨 잘 자라게 하고자 함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외동아들이면 부모로부터 온갖 자양분 다 얻어먹고 쭉쭉 자랄 것 같지만, 막상 그러하지 못하는 예가 많다. 오히려 여러 동기(同氣) 가운데서 태어난 이들이 경쟁력이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식물도 다를 바 없다. 아주 어릴 적에는 배게 심고,차츰차츰 성기게 세워둠으로써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남다른 솎음의 지혜를 갖추었던 분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첫째, 내 어머니다. 당신은 콩나물을 기를 때 특별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시루에다 콩나물 콩을 안치되’, 바닥에다는 촉을 틔운 콩나물콩을 깔고, 그 위에다는 생콩을 얹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고? 시차(時差)를 두고, 비교적 오랫동안 콩나물을 뽑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살아생전 당신은 슬하에 열 남매를 두었는데, 열 놈 가운데 어느 놈 하나라도 제대로 되면, 나머지 아홉을 이끌어 갈 것이며, 그러기 전에 제 먹을 것을 하늘에서 타고 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둘째, 밭 이웃’ ‘이성호 형님이다. 그는 여느 과일농가의 알솎기 방식과 다른 알솎기를 하곤 한다. 무리하리만치 알솎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가 수확기에 이르러 굵은 놈들부터 따서 내다 판다. 그러면 남은 알들이 경쟁자였던 알들이 사라짐으로써 하루가 다르게 굵어진다고 하였다. 그는 차례차례 굵은 복숭아만 따낸다. 그렇게 해보니까, 단위면적당 복숭아 수확량이 많더라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남들보다 돈을 더 사게 되더란다. 그는 선발도태를 적절하게 안배한 솎음을 하는 셈이다.

    끝으로, 새로 취임한 나의 친정집 KT황ㅇㅇ회장이다. 그는 소위, ‘황의 법칙이란 걸로 반도체계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적인 회사 S사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들을 데리고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취임 2개월여 만에 단호한 조처를 하게 이른다. 그는 32,000여 종사자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8,300여 명의 종사자들을 솎아내었다. 최근의 일이다. 그는 15년차 이상 종사들을 모두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잘 했다, 못 했다 말할 형편은 못 된다. 다만, 그가 솎아내는 일에 관해서는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 , ‘쇠뿔도 단 김에 뽑아라.’를 그대로 실천했다는 점을 존중해 할 따름이다. 사실 그 솎음 즉, 해고의 방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선입선출(先入先出)과 후입선출(後入先出)이 그것들이다. 전자(前者)는 고단가비효율을 피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 한 사람 내보내면 여럿을 새로 뽑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기에 대체로 경영자들은 전자를 선호한다. 내 친정집 KT도 그런 방식을 취했다. 그런가 하면, 후자(後者)의 방식을 취하는 예도 가끔씩은 있다. 이를 엘리베이터 방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엘리베이터는 늦게 탄 이가 먼저 내리는 법이기에. 그 방식은 조직(회사) 기여도가 많은’,한솥밥 먹은 지가 오래된이한테 온정(溫情)을 베푸는 자못 인간적인 방식이다. 나야 이미 몇 해 전 누가 지렛대를 갖다 대고 들쑤시지도 않았건만, 내 발로 걸어 나왔다. 누가 함부로 나를 솎아내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

    , 이제 내 이야기를 정리할 때가 된 듯하다. 솎음은 취사선택과도 통하는 말이다. 다 살리려고 하거나 다 건지려고 하거나 다 취하려고 하다가는 다 잃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건너편 신호어른네는 너무 알솎기를 덜 하는 통에 꼬다마(꼬마 알) ‘ 복숭아를 만들어 제 값을 못 받는다. 또 그렇다고 너무 알을 성기게 만들어버려도 수확량이 적어져서 문제가 된다. 솎기에 관해서만은, 내 어머니와 밭 이웃 이성호 형님의 예를 따르는 게 좋을 성싶다. 처음에는 배게 두어 서로 적정하게 경쟁하도록 하고, 차츰 성기게 만들어 가는 거. 그게 바로 솎음의 기본원리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실행하는, 풀 대신 작물을 잠정적으로 뽑아내는 방식, 그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도 농사에 꽤나 유용하다는 걸 전하면서 글 접는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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