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일곱 번째, 일백 스무 여덟 번째 이야기-수필/신작 2021. 2. 4. 00:27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스무 일곱 번째, 일백 스무 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27.
이 할애비는 녀석한테 이미 수차례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한테는 통도조직(通道組織)인 물관[水管]과 체관[篩管]이 있어, 물과 양분의 이동에 쓰인다고 일러준 바 있다. 제 69화에서는 아예 이렇게 알려주었다.
<“으뜸아, 나무든 풀이든 식물들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맥’과 ‘정맥’이라는 두 종류의‘혈관’이 있다?”
녀석이 의아해한다.
해서, 이 할애비는 녀석이 알아듣기 쉽게 나름대로 애를 써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을 한다.
식물은 물관[水管]과 체관[篩管]을 지녔다. 물관은 동물의 동맥에 해당한다. 체관은 동물의 정맥에 해당한다. 물관은 동맥과 마찬가지로, 식물의 겉가죽을 기준하여 보다 깊은 곳에 자리한다. 체관은 정맥과 마찬가지로 겉가죽을 기준하여 보다 얕은 곳에 자리한다. 왜? 하느님께서는, 동맥이 심장에서 펌프질하는 피가 흐르는 관계로 제법 큰 압력이 있어, 자칫 탈이 날세라, 깊은 곳에 자리하도록 설계하신 것이다. 정맥은 비교적 압력이 없는 관계로 설령 터지더라도 피가 세차게 분출(噴出)하지 않으니... . 물관은 식물뿌리에서 빨아올린 수액(樹液)이 가지와 잎으로 이동하는 파이프이며, 체관은 나뭇잎이 만들어 낸 녹말이 뿌리로 이동하는 파이프다. 체관은 ‘어레미[篩]’를 지녔기에 붙인 이름. 그 ‘어레미’의 기능은 동물 정맥의 ‘날름막’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날름막’이 피의 ‘거꾸로 흐름’을 막자주는 기능을 하는 데 반해, 체관의 ‘체’는 영양분 알갱이들을 걸러 일부는 ‘가지 자람’, ‘잎 자람’, ‘열매 자람’에 쓰고자 설계된 것이다.>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위와 같은 내용을 복습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으뜸아, 내친걸음에 나무의 체관[篩管]에 관해 이 할애비랑 탐구를 더 해보자꾸나. 사실 이 할애비는 이날 이때까지 그 어느 문헌에서도 ‘체관’에 들어있는‘체’ 곧, ‘어레미’가 얼마 간격으로 자리하는지, 그 그물코[ filter mesh]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찾아볼 수는 없었단다. 참, ‘mesh’란, 미국 TYLER 표준체[標準篩]의 호칭으로서 1인치(25.4MM) 안의 눈 수를 일컫는단다.”
다소 번거롭다고 여기는지 녀석이 한 마디 한다.
“한아버지, 우리가 굳이 거기까지야 알 필요가 있을까? 좌우지간 체관에 자리한 어레미(체)는, 잎에서 만든 영양분을 모조리 뿌리로 내려보내지 않고 잎과 열매와 가지가 필요한 양을 낚아챌 수 있도록 걸러주는 몫을 한다는 것만 알아도 으뜸이는 큰 지식축적인 걸!”
하기야 녀석의 말이 옳기는 하다. 하더라도, 녀석한테 체관의 그러한 ‘거르기’ 역할을 인위적으로 증진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만은 이참에 다시 한 번 꼭 알려주어야겠다.
“으뜸아, 언젠가 이 할애비가 너한테 일러준 적 있다? 과수농가에서 가지휘기· 껍질 벗기기[剝皮]·줄기 철사감기 등으로 과일나무를 고의적으로 괴롭히는 일이 있다고 말이야. 왜 그리한다고 하던?”
총명한 녀석이 그걸 잊었을 리가 없다.
“한아버지, 그렇게 하면 과일이 굵어진다고 했다? 잎에서 만든 영양분의 흐름을 막아 좀 더 많은 양의 영양분을 과일이 먹게 되어서.”
이 할애비는 그 누구 못지않게 기초지식을 이만치 갖춘 녀석이라서 이제는 더 깊이 있게 알려주어도 되겠다.
“으뜸아, 과수농가에서 그렇게 하는 일들이 체관 속 어레미의 몫을 거들어주는 것이다? 가지휘기는 물 호스를 꺾었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꺾임의 정도가 심할수록 호스 안 물 흐름이 더디어질 것은 사실. 껍질 벗기기는 그 많은 체관들 가운데에서 꽤 많은 수량의 체관들을 끊는 일. 그리고 줄기 철사감기는 우리네가 상처부위를 압박붕대로 칭칭 감아 지혈(止血)을 하는 일과 통하지 않니?”
이 할애비랑 함께 한‘체관 집중탐구(?)’에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대만족해 한다.
“한아버지, 팟팅(파이팅)! 체관의 어레미 팟팅! 만약 체관이 없었다면, 우리는 탐스런 과일을 맛볼 수가 없었을 거야!”
조손(祖孫)은 털고 일어나 다시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128.
이미 두어 차례 외손주녀석, 으뜸이한테 ‘물은 물 따라 흐르기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어울려 있을 적에는 홀로 되기를 원하는 이중성을 지녔다’고 이야기 들려주기로 예고한 바 있다. 식물의 물관과 체관의 역할, 모세관현상, 증산작용 등에 관해 녀석한테 일러준 바도 있다. 기왕에 위와 같은 물 이동’에 관한 사항을 몇 차례 이야기하였으니, 심도(深度)를 더해 물이 지닌 독특한 성질을 마저 들려주어야겠다.
“으뜸아, 이 할애비가 너한테 물은 앞서 가는 물을 따라가는 습성을 지녔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그리고 막상 물이 어울려 있을 적에는 홀로 외톨박이가 되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지녔다고 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 찬찬히 들려줄 테니, 잘 들어보렴.”
녀석은 자세를 가다듬고 의자를 이 나무난로 맞은편 할애비쪽으로 바짝 당겨 경청하려 든다.
“으뜸아, 너도 이 할애비랑 이 농막 뒤편 숯골못[炭谷池] ‘무너미(물너미)’에서 떨어지는 물을 종종 보지 않니? 그 물은 본디 한 덩어리였으나 분자(分子) 즉, ‘각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가진 최소의 단위 입자’ 형태로 서로 갈라서는 거야. 그렇게 떨어진 물 분자는 다시 개울을 따라 앞서 흘러가는 물 분자의 손을 잡으려고 막 뒤따라간다? ”
여기까지 듣고 있던 녀석은 볼멘소리를 한다.
“한아버지, ‘당최’뭔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설명이 더 필요해.”
해서, 이 할애비는 아래와 같이 좀 더 쉽게 설명한다.
‘ 물은 수소(H) 분자 두 개와 산소 분자(O) 하나가 전기적으로 결합된 상태. 이를 이온 결합이라고 한다. 물 분자들은 여러 개가 모여서 집단으로 한 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또 하나가 무너지기도 하면서 엉터리 방향으로 자유롭게 운동하고 있다. 물이 물 따라 흐르는 걸 우리 둘레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온수 보일러 파이프. 그 파이프 속에 이른바 ‘ 에어(air;공기 방물)’가 차면, 파이프 속 물의 순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 이때 공기방울은 물 분자간의 결합을 방해하기에, 뒤따라가는 물의 분자가 앞서가는 물의 분자의 손을 놓치게 되는 셈. ’
“한아버지, 으뜸이가 이젠 충분히 알겠어. 물은 앞서가는 물의 손을 잡으려 한다? 그래서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거다? 글고(그리고) 물은어울려 하나가 되었을 적에는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물은 고독을 애써 즐기는 한아버지 성질과 같다? ”
‘녀석 하고는... .’
녀석한테 다음 노변담화 예고를 놓칠 수 없다.
“으뜸아, 기원 전 600년 경 그리스의 최초 철학자 ‘탈레스’는 말했단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그리고 물처럼 ‘자유로운 영혼(?)’도 없다? 이 세상에서 기체로, 고체로, 액체로 자유자재 그 꼴을 바꾸는 게 물뿐이다? 그리고 물은‘삼투현상(滲透現象)’이란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 요 다음에는 작물재배에 아주 중요한 사항인 삼투현상에 관해 찬찬히 들려줄 게. ”
녀석은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산골 외딴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내리고.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발 그를 가까이하지마세요 (0) 2021.03.19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아홉 번째, 일백 서른 번째 이야기- (0) 2021.02.10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세 번째, 일백 스무 네 번째 이야기- (0) 2021.02.01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다섯 번째, 일백 스무 여섯 번째 이야기- (0) 2021.02.01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스무 세 번째, 일백 스무 네 번째 이야기- (0) 202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