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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
    수필/신작 2022. 4. 30. 08:51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인 김소월의 언어감각은 매우 뛰어났다. 그의 시 ‘실버들’에 쓰인 첫 행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는 혀가 내둘린다.

       우선, 당해 시를 다시 함께 음미해보도록 하자.

     

                         실버들

     

                                          김소월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맘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실버들’이란 어휘 선택이 아주 탁월하다. 내가 써서 문학잡지에 발표한 적 있는 ‘버들’이란 수필작품 한 단락은 이렇게 되어있다.

     

       < 버들은 한 때 나를 곤경에 빠뜨린 나무다. 버들과의 나무는 무려 3속 340종이나 되어, 수목학 교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버들이면 다 같은 버들이냐고, 왕버들· 쪽버들· 반짝버들· 용버들, 수양버들· 능수버들· 콩버들· 키버들· 갯버들· 여우버들· 진퍼리버들… 참으로 헷갈렸다. 노교수께서는 무슨 재주로 그게 그거 같은 녀석들의 성깔을 일일이 식별하라 하셨던지. 명색이 임학도가 그들의 성깔도 익히지 못할 정도였으니, 매사에 얼마나 혼미와 혼돈만을 거듭하며 살아왔겠는가.>

     

       사실 ‘실버들’, ‘능수(陵垂)버들’, ‘수양버들’은 식별상 큰 차이점이 없다. 동일종의 버들이라고 하여도 무방하리만치. 가지가 실처럼 처진다 하여 실버들, 강가 언덕[陵]에서 자라며 가지를 늘어뜨린다 [垂] 하여 능수버들, 가지를 늘어뜨리고[垂 ?]한다 하여 수양버들이라고 부를 따름이다. 그러한데 시인 김소월은 굳이 ‘실버들’이라는 시어(詩語)를 선택한다. ‘실버들’을 그렇게 시어로 취택함으로써 ‘천만사 늘여놓고도’와 자연스레 ‘이미지 결합’하고 있다. 시인은 ‘실’의 개념을 너무도 잘 알았던 거 같다. 실은 어떠한 물체를 꽁꽁 묶는 재료. 외가닥의 실보다는 합사(合絲)가 더 효율적이다. 그 합사로 칭칭 동여매면 도망가려는 존재는 쉬이 달아나지 못한다. 나아가, 실은 서로 엮여 그물망, 곧 ‘net-work’가 되면, 걸린 물고기든 날벌레든 꼼짝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나의 기발표작 ‘베짜기새’란 수필 한 단락은 이렇게 되어있다.

     

       < 작가인 내가 이 시점에 베짜기를 새삼 떠올리고 있다. 어머니의 베는 ‘한결같이’ 고왔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날줄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날줄은 그 굵기와 올수에 따라 생냉이길쌈· 익냉이길쌈· 무삼길쌈으로 나뉜다. 폭당 올수가 많으면 옷감 결이 고와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머니는 이들을 11새, 7새, 5새 따위로 부르곤 했다. 새[升]는 날줄 80올을 이르는 말이고, 가장 고운 생냉이길쌈을 11새로 불렀으니, 한 폭당 날줄이 880가닥 된다는 뜻이다. 이들 날줄이 잉아를 통해 건넘수로 상하 440가닥으로 교차된다. 이 틈새로 씨줄 즉, 꾸리실이 담긴 북이 넘나들면서 교직(交織)되어 갔다. 북은 마치 작은 배가 880개 물이랑을 헤집고 지나가는 듯했다. 중년 여인의 가슴속 물결과도 같은... .>

     

       씨줄과 날줄이 교직되면, 웬만한 바람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베가 된다. 도망가려는 임을 그렇게 교직된 베로 만든 자루에 보쌈할 수도 있다. 김소월 시인은 그런 거까지 다 떠올리며 ‘실버들’이란 시어를 선택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속성을 지닌 실버들의 실오라기를 한 가닥도 아닌 천만 가닥을 늘여놓았으니, 풀어놓았으니 가는 봄쯤이야, 가는 임쯤이야 왜 붙잡아둘 수 없을까만... . 그러함에도 봄도 가고 임도 간다고 시인은 탄식하고 있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탄식하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시인 김소월은 빼어난 시인이었다.

       어느새 나도 탄식한다.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놓고도... .’

     

     

       작가의 말)

     

       사실 작가는 당해 작품을 적기에 앞서, 작품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챙기게 됩니다. 하더라도, 이번 글은 최소의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이른바 ‘미니멀리즘(minimalism)’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이란, 장식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표현을 아주 적게 하는 문화 예술 기법이나 양식을 일컫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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