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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한민국판 ‘꽃제비’수필/신작 2022. 4. 26. 10:53
어느 대한민국판 ‘꽃제비’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꽂제비’란, 북한에서 집 없이 떠돌면서 구걸하거나 도둑질하는 유랑자를 일컫는다. 일설에 의하면, 구소련사람들이 유랑자, 혹은 유랑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켜 말하는 ‘코체브니크(КОЧЕВНИК)’, ‘코제보이(КОЧЕВОЙ)’, ‘코제비예(КОЧЕВЬЕ)’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때는 한국전 시절. 대한민국 서울의 서울역 근처에 전쟁고아들이 꽂제비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이 글의 주인공은 당시 15세 소년. 그는 어느 날 염천교 밑에서 당시 거지왕으로 소문난 ‘김춘삼’을 만나서 거지로서 살아가는 데 지켜야할 중요한 규칙 몇 가지를 교육받았다.
1) 밥을 얻으러 갈 때 대문을 두드리지 말고 깡통 소리를 내라.
2) 밥을 얻을 때는 꼭 깡통이나 그릇을 준비해 가라.
3) 하루에 같은 집에 두 번 가지마라.
4) 땅에 떨어진 음식은 절대 먹지 말아라.
날이 갈수록 고아들이 계속 모여들어 129명이 나 되었다. 고아들 맏형격인 그는 고아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소매치기와 절도범으로 변한다. 그 많은 식솔이 제대로 못 먹고 질병으로 그동안 24명이나 죽었다. 어떤 날은 8명이 한꺼번에 죽는 날도 있었다. 약 사먹을 돈이 없기 때문에 심한 감기만 걸려도 고열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래서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소매치기와 도둑질을 해서라도 약값을 모으기로. 그 해가 1952년. 매일매일 소매치기로 번 돈으로 당장 아이들에게 옷도 사 입히고 그리고 약값에 충당했다. 그는 차츰 간이 커지면서 소매치기에서 부잣집들의 담을 넘기에까지 이른다. 주로 서울 장충동이 활동 무대가 되었고, 특히 제니스 라디오를 훔치는 날에는 동생들에게 특식으로 꽈배기 빵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년한테 운명적인 일이 생겨난다. 그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좀 고급스러운(?) 손님을 찾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 공군 장성이 탄 지프가 미군 전용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한다. 미군 헌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 장군은 환송차 대기 중이던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는 지프차 트렁크가 약간 열린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가방 하나를 훔쳐 비호처럼 도망간다. 그러나 그는 멀리 못가고 미군 헌병들에게 붙잡힌다. 그 가방 안에는 주요 군사기밀문서가 들어있었다. 그는 과거 미군부대에 조금 있을 때 배운 서투른 영어로 자신이 절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아들이 다 굶어 죽는다고 울어댄다. 사정한다. 근처에서 그 소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장군. 그는 곧 절도죄로 파출소로 연행하려는 헌병들을 말리며 그 소년을, 조선호텔 즉 장군의 숙소로 보내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의협심 많은 그 소년은 극구 사양한다. 자기가 없으면 전쟁고아 동생들 100여 명이 다 굶어죽을 거라며. 장군은 헌병들에게 100여 명 고아들의 생활 현장을 확인케 하고, 그 고아들 전원을 미국 공군이 운영하던 제주도 고아원으로 입소시킨다. 그리고 그 소년을 자신의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끔 한다. 그 장군이 바로 미국 5공군 사령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중장. 안타깝게도, 전투비행기 조종사인 그의 외아들이 전투비행 중 전사했다. 한편 화이트 장군은 그 소년을 데리고 약 1년 동안 유심히 관찰한 후 그 사람됨을 알아보고 소년을 양아들로 입적한다.
그 소년은 양부(養父)인 화이트 장군의 물심양면 도움으로, 미국으로 따라가게 된다. 1953년 화이트 중장은 북미주 항공사령관으로 발령 받아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면서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 하버드대학교에 무난히 입학하면서부터 그의 향학열은 더욱 더 불타올랐다. 그는 ‘앞으로 인류 역사와 문화의 중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테마를 주제로 하여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이 하버드대학교 학생 잡지에 게재가 되면서부터 미국의 언론과 정계에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외교안보 보좌관이었던 키신저는, 그의 논문에다 자기의 생각을 보태, “중국이 앞으로 문화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고 썼는데, 미국의 뉴스위크가 이 글을 크게 보도했다. 그의 논문은 키신저의 덧보탬 기고문에 힘입어 백악관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중인물은 <2차 대전 후 바이 아메리칸 정책이 아시아에 끼친 영향>이란 졸업 논문으로 하버드 대학교 국제관계 정치학 박사가 된다. 이날 그의 박사 학위식에 참석한 양부모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의 졸업식에는 미군 최고의 합참의장이 된 아버지와, 장성들이 두루 참석하였다. 졸업식 역사상 가장 많은 ‘별들의 잔치’가 되었다.
한편, 1967년 그는 25살의 나이로 군 입대를 해서 4년간 장교 훈련을 받았는데, 특히 낙하산 훈련과 특공대 훈련에서 1등으로 수료했다. 그의 첫 부임지는 주일 대사관 무관이었다. 미국 정부는 그를 아마 외교관으로 키울 계획이었겠지만, 그는 ‘그린베레’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의 임무는 미군 포로수용소를 습격하여 미군들을 구출하는 작전. 어느 날 대위였던 그가 작전을 마치고 지프차로 귀대 중 매복 중인 베트콩 기습을 받아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숫자적으로 불리함을 판단, 부하 3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에게 후퇴할 것을 명령하고 대신 자신이 포로가 되었다. 그는 야음을 틈타 포로수용소를 무조건 탈출했다. 그 이후에도 수차례 포로로 잡힌 적 있다. 그의 수용소 탈출과 15일간 정글에서 살아나온 이야기는 <정글 탈출기>란 책으로 엮여, 미국 육사 교과서 정식 교과서로 쓰였다.
그의 용감한 행적이 양아버지와 대통령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존슨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백악관에 가서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특진되었다. 존슨 대통령이 화이트장군을 따로 불러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양아버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5년 후 그는 닉슨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두 번째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 안보비서관’ 임명을 받고, 전 미 국무장관 키신저와 함께 외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총리 주은래를 여러 번 만나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를 성사시켰다. 주은래는 그를 동생처럼 여기며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모택동도 다섯 번씩이나 만났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이 극비리에 정상회담을 합의하였다. 그때 그와 함께 정상회담 가교역할을 하였던 키신저가 돌아가는 길에, “인접한 일본에도 알려야겠다”고 하자, 그는 “한국에도 알려야 한다.”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키신저가 말했다.
“한국에는 당신이 가서 알리신 게 좋겠소.”
그를 만난 고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기뻐하였다. 일 하느라 장가 못간 노총각이니 중신은 대통령인 내가 서겠다며 한국의 전통 가문인 민씨 가문의 규수를 소개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다. 그는 박정희대통령과 더욱 친밀해졌다. 우리나라는 그의 도움으로(?) 중국과 1972년 수교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닉슨, 포드, 카터에 이르기까지 국가안보비서관을 수행했다. 장군진급가지 포기한 그는 카터 대통령과 결별하여 ‘LA동양교회 장로’가 되었다.
그가 대체 누구? 바로 ‘임종덕' 장로[(1048(?) ~)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빛낸 위인(偉人)임에 틀림없다. 그 의협심으로 하여, 꽃제비에서 출발하여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움직인 위인. 그는 ‘풀브라이트 종군기자상’으로 유명한 <우물가의 소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밥을 얻어먹지 못하여 물배를 채우려고 종로구 내자동 우물가를 찾아가서 허기에 지쳐 힘없이 누어있던 한 아이. 타임즈 종군기자가 찍은 그 사진이 유명해져, 풀브라이트 종군기자상을 수상하도록 한 이. 사실 세계를 감동시킨 ‘The Deer Hunter (디어 헌터)’영화마저도 당시 임종덕 대위의 포로 탈출 기자회견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거 아닌가.
이처럼 위인의 삶을 살펴보노라면, 그 감동은 감히 글로써 표현할 길 없다. 나이 칠십을 불과 몇 해 아니 앞둔 이 시골구석의 농부 수필가인 나. 외로움으로, 도(度)가 넘는 감상(感傷)으로 늘 질질 눈물이나 흘려대는 꼬락서니를 크게 뉘우친다. 사내로 태어나 한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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