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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3) - 바로 그 악기 ‘오카리나(ocarina)’-
    수필/음악 이야기 2022. 7. 29. 13:49

    무더위 잘 견디세요.

    저는 '메밀밭' , '콩밭', '고추밭', '고구마밭', 

    '들깨밭' 등을 두루 살폈지요.

    그리고는 농막을 휘감는 개울에 나서서 홀라당 벗고 멱을 감고,

    '가루비누'로 팬티를 비롯하여 작업복 빨아 바위에 널고... .

    신작인데요,

    모자라는 점 채워서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3)

                                                     - 바로 그 악기 ‘오카리나(ocarina)’-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농부 겸 수필작가 겸 아파트 경비원인 나. 내가 격일제로 근무하는 아파트에서, ‘쓰레기 분리 배출장’에 때때로 나가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게 주요임무 가운데에서 하나. 여담. 다들‘쓰레기 분리수거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모국어도 제대로 못 부려쓴 산물이다. 오줄없이, 엉터리로, 입주민들이 ‘분리 배출’을 제대로 아니 하니, ‘-배출장’이라고 표현해야 마땅하거늘... . 오늘 캄캄한 밤에도 그 곳에 나섰다가, 이번에는 ‘똥장군’처럼 생긴 플라스틱 제품 하나를 줍게 되었다. 바로 열 세 구멍이 뚫린 ‘폐쇄 관악기’인 오카리나. 하기야, 내 농막 서랍에도, 독학하겠다며 젊은 날 사둔 오카리나는 먼지가 소복 쌓여있지만.

       경비초소로 돌아온 나. 그 오카리나를 만지작대다가 추억을 더듬고 만다. 정말로 아픈 추억. 돌이켜 셈을 해본즉, 2022년 기준으로 23년 전. 당시 내 나이 40대 초반. 나는 대구 도심에다 아내와 어린 딸들 ‘초롱’과 ‘아름’가족 세 여성을 내팽개치고(?), 직장전근을 핑계삼아 영양(2년) - 영덕(1년) - 울진(1년) 달아났다. 사실 본부 인사부서 인사담당 동기생한테 은밀히 로비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 어떤 열병(熱病)을 앓으며 맘 추스를 길 없어 그렇게 하였다.

       당시 울진전화국(요즘은 ‘KT 울진지점’이라고 부를 것이다.) 창구의 ‘윤근택 대리’.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 다시 잠입하였다. 남들은 내내 잔업(殘業) 때문인 줄 알았을 것이다. 카세트테이프를 ‘오디오 시스템’에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늘 그 음악이었다. ‘Song of ocarina(오카리나의 노래)’. ‘디에고 모데나(Diego Modena, 아르헨티나, 오카리나 및 팬플루트 연주자)’와 ‘장 필립 오딘(Jean Phillipe Audin,프랑스, 첼로 주자)’앙상블의 연주곡. 이미 내 책상 위 컴퓨터는 켜져 있고, 절반 마신 2홉들이 소주병과 반 마리쯤 남은 마른 오징어도 책상서랍에 감춰져 있고... .

       나는 그 ‘Song of ocarina’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거의 매일 한 편씩 수필작품을 적었다. 늘 내 두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기를 3개월 여. 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이 다스려졌다. 해서, 그 이듬해인 1999.11.20.에 출간한 내 두 번째 수필집은 <이슬아지>. 내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는 하다. 3개월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했으니까.‘이슬아지’란, ‘산앵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슬 + 아지(’아저씨‘의 사투리임.)’ 즉, ‘늘 눈가에 이슬 맺힌 아저씨 ’란 뜻을 부러 중첩했다. 하여간, 영양 2년, 영덕 1년, 울진 1년 합해서 4여 년 응축된 에너지가 그 3개월 만에, 마그마가 분출하듯, 그렇게 적어 묶은 게 나의 두 번째 수필집이자, 2022년 현재를 기준으로 최종 수필집. 사실 그 이후에도 5,000여 편을, 종이책 기준으로 50여 권 분량의 수필작품을 이날 이때까지 적어오지만, 더 이상 종이책으로는 묶지 않고 있다.

       그때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던 ‘Song of ocarina’. 그들은 1991년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그 앨범 하나로 전세계에 악기 오카리나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음악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 그들은 각각 자신의 음악 영역을 넓히고자, 전념코자 1996년에 갈라섰다고는 소식은 들었지만... . 내 젊은 날 한 권의 수필집을 쓰도록 내내 도와주었던 그 오카리나 연주곡의 공로. 영원히 잊지 못하리. 참말로, 그 앙상블의 ‘Song of ocarina’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

       다음은,‘오카리나’라는 악기에 관한 소개다. 본 시리즈물 제 2화와 제 38화에 적은 글을 아래와 같이 다시 따다 붙인다.

     

     

       <오카리나. 이는 이탈리아어로서, ‘작은 거위’란 뜻이다. 이탈리아어 ‘oca’는 ‘거위’를 일컫고. 그 생김새가 마치 물 위에 뜬 거위 같아서 생긴 말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네 정서상 그것은 마치 ‘똥장군’ 처럼 여겨지는 악기다. 흙으로 구운 것으로, 구멍이 13개 뚫린 오지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악기를 ‘sweet potato’ 즉,‘고구마’라고도 부른다. 내가 생각하기로도 그것은 고구마 같았다. 사실 내가 잠시 공부하겠다며 샀던 오카리나도 마치 고구마 같았다. 이 오카리나의 원형(元型)은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있었다고 한다. 조금씩 그 모양만 달랐을 뿐. 현재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잉카문명 지역에서 출토된 거북 모양의 오카리나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식 오카리나로 발전한 곳은 이탈리아로 알려져 있다. 1853년 부드리오(Budrio) 지방의 당시 17세 소년‘도나티(Giuseppe Donati,1836~1925)’란 이가 흙을 구워 만듦으로써 현대식 오카리나의 틀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나티로부터 3대째인 장인(匠人), ‘귀도 치사(Guido Chiesa)’는 더욱 오카리나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오카리나의 아버지’로 부른다. 현재까지는 13개 구멍짜리 오카리나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좁은 음역의 약점을 보완코자 ‘더블 헤드 오카리나(double head ocarina)’나 14구멍짜리 오카리나로 지속적인 발전과 연구가 행해진다고도 한다.(이상 본 시리즈물 그 (2)에서 따옴.)>

     

     

       다음은, 오카리나 대주자 소개다. ‘노무라 소지로(Nomura Sojiro,卽村宗次郞,1954~, 일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이 지난 1975년, 도치기현(-縣) 어느 작은 골짜기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토기(土器)를 굽는 ‘카야마 히사시’라는 분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어 흙으로 ‘오카리나(Ocarina)’를 직접 굽고, 직접 불게 된다.

       그는 자신만이 새롭게새롭게 구워낸 토기 오카리나로 연주를 하게 되었고, 1985년 그가 31세가 되던 해에 첫 앨범 <<Glory>>를 내게 된다.

       이듬해인 1986년, 그도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된다. 마침 NHK 특집프로그램 <<The great yellow river, 대황하>>에서 음악분야를 맡게 됨으로써 그렇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은 오롯이 그의 오카리나 연주곡으로만 장식되어 있다. 한마디로 대히트.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황하>>는 두고두고 나를 매료시켜 왔으며, 그의 <<대황하Ⅱ>>에 수록된 ‘춤추는 용(Dancing Dragon)’도 너무너무 내 감흥을 돋우곤 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오카리나 대주자가 없을까? 있다. 한태주(1987~)다. 그의 블로그는 ‘지리산 흙피리 청년’이고,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주제곡인 <물놀이>는 아주 경쾌하다.

       나는 오늘 밤 ‘아파트 분리 배출장’에서 플라스틱 오카리나 하나를 주웠다. 그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든 이탈리아의 당시 17세 소년,‘도나티’의 공로도 결코 잊지는 못하리.

     

     

     

      작가의 말)

     

     

      사실 자료는 몇몇 날 A4용지로 10매가량 메모를 하고, 관련 음악을 듣는 등 챙겼으나,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너무 지루할성싶어, 나름대로 이처럼 글을 다이어트를 했지만... .

       아무쪼록, 다들 부족한 점은 채워서 읽어주시길. 그리고 이 글도 내 사랑하는 그이한테 바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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