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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1) - ‘첼로’라는 악기는 -
    수필/음악 이야기 2022. 7. 21. 15:56

    열정이지요.

    집중이지요.

    사랑이지요.

    완성 향한 몸부림지요.

    제 음악 공부는 죽는 그날까지.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1)

                                                                    - ‘첼로’라는 악기는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다소 자극적으로, 이번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2022년 기준으로 대략 52세가 된 그녀. 그녀는 요즘도 홀라당 발가벗고 무대에 오를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20여 년 전 그녀의 뒤태는 정말 관능미 그대로였다. 늘 음지에서(?) 팬티에 가려졌던 그 엉덩이 부위. 팬티 자국이 여타 부위보다 두드러졌던 여인.’

       내 이번 이야기가 종착역에 닿자면, 아주 까마득하여, 간략하게 적으려 한다.

       그녀는 ‘나탈리 망세(Nathalie Manser, 1970~,스위스)’. ‘나체의 첼리스트’로 그녀를 부른다. 첼로라는 악기는 피둥피둥 살찐 서양 남자들 체구와 비슷. 그녀는 무대에 오를 적에 나체로 그 첼로를 포옹하고, 앞가림하여 자기의 젖무덤과 음부(陰部)를 가리고, 의자에 앉아 첼로를 연주하곤 하였다. 첼로의 몸집을 감안하면, 가랑이까지 쩍 벌리고서. 마치 성행위를 즐기듯. 인간의 목소리, 아니 남자의 목소리와 아주 유사하게 첼로가 지어내는 음(音)을 그처럼 즐기던 그녀. 사실 그녀는 자기가 활로 지어내는 음향과 연인인 첼로가 속삭이는 음향을 동시에 느끼며 오르가즘 상태로 가는 듯도 하였다. 하여간, 그녀는 요부(妖婦)처럼, 첼로를 연인으로 여기는 듯하였다. 나는 그녀의 연주곡 가운데에서 ‘Les Angeles(천사들)’를 너무도 좋아한다. 그녀는 클래식만이 아닌 여러 장르의 음악을 첼로로 연주하는 뮤지션.

        곧바로 다음 이야기다. 이 농부 수필가는 첼로 연주곡의 원류(原流)를 찾아, 그 시원(始原)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내지 은어.

       4개의 현으로 된 첼로. 첼로는 독주악기로는 아주 부족한 악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했는데... . 스페인 카탈루냐의 어느 11세 소년한테는 첼로가 만들어내는 음이 색다른 체험이었다. 그이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마을에서 열린 ‘피아노 트리오 연주회’에서 첼로가 만들어내는 음을 듣고 후일 이렇게 말한다.

       “ 저는요, 첼로의 첫 음을 듣는 순간,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압도되었어요. 무언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인간적인 빛이 내 속을 가득 채웠죠. 그날부터 아빠엄마께 첼로를 사달라고 매일 졸랐죠. ”

        음악인이었던 그의 부친은, 자기 아들녀석이 하도 ‘빗자루같이 생긴 악기’ 타령을 하기에, 호리병에다 현을 하나 단 악기를 만들어 건네주었다. 그것이 그의 최초 첼로.

        그는 11세가 되던 해,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하여, 그날 ‘피아노 트리오’에서 첼로를 연주했던 ‘ 호세 가르시아’의 제자가 되고, 본격적으로 첼로연주를 공부한다. 그는 그 어린 나이였음에도, 양친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 토스트’란 카페에서, 첼로 연주로 아르바이트를 뛰게 된다. 그러다가 당시 유명 작곡가인 ‘이삭 알베니스’의 눈에 띄어, 음악학자 ‘기예르모 모르피’ 백작한테 추천된다. 그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스페인 궁정 음악인이 되어 훈장까지 받는 등.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제대로 된 악보로 교본삼아 첼로를 공부하고자 중고서점을 찾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13세. 정확히 1889년. 그는 중고서점에서 해질 대로 해진 첼로 악보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 길로 그는 무려 12년 동안 그 악보를 연구하고 연습하게 되었으니... . 그 악보는 이미 149년 전에 이승을 떠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의 악보. 사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악보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다. 그저 연습곡 정도이겠지 정도로만 알고 지내왔던 터. 더욱이, 위에서도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첼로는 독주악기로는 부족한 점이 여로 모로 많았기에. 이 글 주인공의 혜안도 대단하지만,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그 모험심(?) 또한 대단하다. 바흐는 그 악보에다 <무반주 첼로 ??>라고 이름붙였기에 하는 말. 달리 말해, “ 첼로도 무반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임을, 내가 이 곡을 통해 알려주니... .”가 되니까.

        더 늦기 전에 이 글의 주인공을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 이어가자. 그가 바로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스페인 카탈루냐, 1876~1973(91세)’다. 그는 바흐의 악보를 손에 쥐고, 무려 12년 동안, 바흐의 그 속뜻을(?) 헤아려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매일매일 6시간 이상씩 연주연습하고 탐구하였다. 그때까지 ‘첼로 연습곡’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 악보. 그는 바흐의 그 악보를 ‘구약성경’이라고 부를 만큼 엄청난 지위로 올려놓게 된다. 제 1곡 ‘프렐류드’를 시작으로 제 6곡에까지 이르는 모음곡. 사실 그 모음곡 제 5곡과 제 6곡은, 바흐가 그 당시만 존재했고, 현존하지 않는 첼로 등을 상정(想定)하여 적고, 지시어 등이 따로 없는 등 재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했음에도, ‘파블로 카잘스’는 바흐의 그 곡을 표준화하여, 최적의 연주상태로 다듬게 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란 버젓한 이름도 그로부터 지어지게 된다.

        제 5곡의 경우, 본디는 활 쓰는 법이라든가 템포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나, 운궁법과 템포를 이해하기 쉽게, 연주하기 쉽게 윤색.

        제 6곡의 경우, 일반적 형태의 첼로로는 연주하기 어려운, ‘비올라 폼포사’라는 5현 악기를 위해 적은 악보였음에도 현대적으로 연주하기 쉽게 표준화.

        그렇게 12년 동안 탐구했던 ‘카잘스’는, 6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음반을 만들게 된다. 카잘스는 그 오랜 동안 바흐 연구로(?)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첼로의 전설’ 등의 명성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스페인 내전 종식 이후 ‘플랑코 총통’한테 부역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고초를 겪게 되고, 평화주의자인 그는 ‘플랑코 총통’ 체제하의 스페인을 승인하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연주회조차도 거부한다. 은둔생활을 이어가던 그. 바흐 탄신 200주년 기념 공연에 비로소 모습을 다시 드러내었다.

        나는 그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 1곡, 프렐류드>도 거의 매일 듣는다. 첼로라는 악기도 반주 없이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적은 바흐도 대단히 존경스럽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재정립한 카잘스 또한 존경스럽다. 현대 첼리스트들의 필수 교본이라는... .

        그가 95세 되던 해, 어느 짓궂은(?) 기자가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했다.

        “선생님, 아직도 매일 6시간씩 바흐를 연주연습하시다면서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죠.”

       첼로 연주에 관한 한, 카잘스에 필적할 만한 연주자가 금세기에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잠시. 나는 그의 ‘Birds’란 연주곡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본향 ‘카탈루냐’의 민요라고 알려진 그 곡.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에 빗대, 세계 평화를 위해 한평생 헌신한 그의 영혼이 담긴 연주곡이기도 하니까.

       그의 살아생전 명언 가운데에는 인류애와 평화에  관한 웅변도 있다.

       " 인류 없는 예술은 헛된 겁니다.'

       96세로 세상을 뜬 카잘스. 그 이후 카잘스의 계보를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전해드리며 이 글 맺으려 한다. 카잘스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러시아의 유명 첼리스트, ‘ 레오폴드 비톨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도 있었다. 그의 아들은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드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80세)’. 그는 카잘스 이후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힌다. 그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는 ‘미래의 로스트로포비치’로 일컬어졌던 ‘미샤 마이스키(Mische Maisky,1948~, 라트비아)’.그의 딸 '릴리'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제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1982~, 대한민국).  한편, ‘요요마(Yo Yo Ma, 馬友友, 1955~ ,중국계 미국인)’는 카잘스가 체계를 세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정말로 잘 연주하는 첼로 명인.

       요컨대, 13세 소년 첼리스트 카잘스. 그가  한 평생 탐구하고 연습하여 , 바흐의 그 묻혀 있던 너덜한 악보로, 첼로를, ‘반주 하나 없이도 독자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거듭나게 했다는 거. 인간의 진지한 목소리와 아주 닮은 첼로.  여담이다. 카잘스의 애기는 '마테오 코프릴러'. 18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현악기 제작계에서 '도메니코 몬타냐나'와 더불어 대가였다는 거.

     

     

     

     

       작가의 말)

     

     

       생각은 여러 날 오래도록, 쓰기는 잠시.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님들께서 채워서 읽어주세요.

    사실 ‘카잘스’에 관해서는 몇몇 날 공부하였으나, 너절하게 글을 쓰기가 두려워서...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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