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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02) - 아내한테 상복(喪服)입지말라 유언 남긴 음악인-수필/음악 이야기 2022. 8. 16. 09:34
여름비가 내려요.
퍽이나 많이 내려요.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해요.
계절의 순환, 그 누구가 말리겠어요.
'피아노의 시인' 인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이 썩 어울리는 시절인 걸요.
부디, 아름다운 나날!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02)
- 아내한테 상복(喪服)입지말라 유언 남긴 음악인-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 그와 그의 아내
그는 51세 나이에, 자기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임종(臨終)하는 아내한테 상복을 입지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대체 그들 내외한테 무슨 기막힌 사정이 있었기에, 죽어가면서까지 그런 모진 말을? 42세 노총각이었던 그는, 19세 연하이며 23세이던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비엔나에서 둘째 가라하면 서러울 지경으로 아름답고 예술적 재능과 교양을 두루 갖췄던 아가씨. 그는 그러한 색시를 얻음으로써 수많은 남정네들로부터 부러움을 산다. 셈을 해본즉, 그들 애증의 결혼생활 기간은 10년이 채 아니 된다. 사실 그의 유언은 젊은 아내의 한때 과거행실에(?) 대한 원망과 증오도 한 자락 깔린 듯도 하고, 사후 자기 아내의 운명을 예견한 데서 비롯된 듯도 하고.
더 이상 뜸들일 일도 없다. 그가 바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보헤미아 태생 지휘자 겸 작곡가)’이다. 그의 부인이었던 이는 ‘알마 쉰들러(1879~1964)’. 그녀는 첫 남편 말러 사후에 결혼을 두 번 더 하게 된다. 두 번째 남편은 ‘바우하우스’의 창시자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세 번째 남편은 체코 출신의 시인이자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프란츠 베르펠.
‘daum백과 예술가의 지도’는 그녀의 삶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당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던 여인 알마, 그녀 자신도 여러 곡의 가곡과 오페라를 위한 연주곡을 남긴 작곡가였다. 하지만 알마는 예술가로서보다는 예술가들의 아내로 역사에 남았다. 말러, 그로피우스, 코코슈카, 베르펠의 예술 속에서 알마는 숨 쉬고 있다. 때론 더없는 기쁨으로, 때론 더없는 고통으로.>
사실 위 요약분은 시시한 남정네들은 아예 범접할 수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첫 남편 구스타프 말러를 비롯하여 자기 분야에서 최고였던 남정네들만 사냥했던(?) 여인.
나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말러’와 그의 부인이었던 ‘알마’의 생애에 관해, 몇몇 날 공부하였으나, 어떻게 압축해서 글을 꾸려가야할지 막막할 따름.
말러는 젊고 아리따우며 예술적 재능이 빼어난 색시를 얻으면서, 각별히 당부한다. 당시 지휘자로서 최고봉에 올라있던 말러. 알마는 그저 고분고분 따르며 작곡 활동 등 아예 접고, 착한 아내로서만 조신하게 살겠노라고, 그야말로 눈물 머금고(?) 맹세한다. 둘은 한 동안 행복해했다. 말러의 명성은 나날 드높아가고... . 결혼 2년차 1904년에 그들 내외는 첫딸 ‘안나 말러’를 얻는다. 알마는 난산이었다.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아가씨 시절 실물사진을 보면, 허리가 개미허리였으니, 그 신체구조와 관련은 없었을까? 게다가 그녀는 산후우울증까지 겹친다. 그리고 2년 후 둘째 딸 ‘마리아 말러’를 얻는다. 후일 마리아 말러는 조각가가 되고, 자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였던지, 결혼을 다섯 차례나 하였다고 한다. 그들 어린 자매가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은 내가 보아도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첫딸 안나 말러는 성홍열로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불행히도 죽고 만다. 극도로 우울증에 빠진 알마는 요양차 남편 말러와 당분간 떨어져 지내게 된다. 알마는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니, 그가 말러 사후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연하의 유명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사실 말러 부부 갈등의 화근(禍根)은 또 다른 데에도 있었다. 그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말러의 형제들에까지 닿는다. 말러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했다. 말러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정신병을 앓았으며, 말러의 15명의 형제 중 8명을 일찍 잃었다. 게다가 그의 가족 중에는 맹인도 있고 정신병과 뇌종양을 앓거나 권총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말러의 조울증과 강박신경증 등은 어린 시절에서 유래한 듯하다.
아내인 ‘알마’가 둘째 아이를 가졌을 적에, 말러는 아내가 불길한 예감으로 한사코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꾸역꾸역’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가곡을 적고 있었다. 말러는, 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용의 어느 시인의 시에다 곡을 입힌 것이다. 사실 자기 유년시절 형제간의 슬픈 노래일 수도 있는 ... . 예술가였던 알마가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은 번연한 일.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어느 날 말러는 차마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아내 알마가 요양지에서 만난 연인한테서 아내한테로 날아온 연서를 개봉하고 말았던 것이다. 첫딸의 죽음, 아내의 외도, 지병인 심장병의 악화 등으로 말러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갔다. 그러자 말러는 마침 그곳을 여행 중이던 자기와 동향 보헤미아 출신인 ‘프로이트’한테 심리치료를 자청해서 받기까지 한다.
프로이트는 그에게 권고한다.
“아내를 너무 가두어두지 마시라. 그녀에 대한 집착을 누그러뜨리고, 예술창작활동도 허락해주시라. ”
그래서 아내 알마한테 창작활동을 허락해주었다. 그때 알마가 적은 가곡 가운데에는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In meines Vaters Garten)>>도 있다.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녀의 일생은 아버지의 정원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으리!”였다. 알마는 알마 대로 지쳐갔다. 잠시라도 집을 비울 수가 없게 되고, 자기의 인기척이 없으면, 남편은 한숨도 제대로 못 자는 등.
말러는 51세 나이에, 아내 알마가 임종하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들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이즈음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2) 그의 <<교향곡 제5번 제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adagietto’란, 악보에서 ‘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이다. 그의 위 악장 ‘애칭’처럼 쓰이는 말. 그리고 위 제 4악장은 여러 영화 OST로 쓰여, 말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악장. 심지어,‘말러리언 (Mahlerian;‘말러 열광자’를 일컬음.)’이란 말까지 만들어낸 악장. 영화감독 ‘박찬욱’도 스스로 ‘말러리언’이라고 하며 <<헤어질 결심>>이란 작품에 세 번씩이나 삽입했다고 하는데... .
사실 내가 이 글 완성도를 높이고자 그 악장을 여러 차례 들어보긴 하였으나, ‘확’ 구미가 당기는 음악은 아닌 듯하였다. 다만,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카더라 방송’에 세뇌된 듯하기만 하였다. 다들 그 악장의 탄생비화까지를 알고서 접근한 덕분은 아닐까 하고서... .
그 악장의 탄생비화다. 우선, 뤼케르트( Friedrich Rückert,1788-1866)의 가곡 <<사랑과 음악 속에서>> 가사부터 음미해보자.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이제 어느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도
부정할 생각도 없어
사실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세상의 동요로부터 떨어져
조용한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네!
나만의 천국에서 홀로 살리라
내 사랑 안에서, 내 노래 안에서!
말러와 알마가 처음 만난 날은 1901년 11월 7일. 그때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은 아직 미완성 단계.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그는 위 가곡 가사처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알마와 결합할 수 있기를 열망했을 터. 그것이 알마에 대한 그의 사랑을 담은 아다지에토 속에다 위 가곡의 모티브를 숨겨놓은 듯. 아무튼 말러는 아다지에토라는 노래를 통해 그녀의 사랑을 획득했다.
말러가 1901년 12월 8일에 알마한테 보낸 편지. 그는 이미 ‘당신(Sie)’이라는 존칭어가 아닌 ‘너(Du)’라는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고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2월 11일자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음악이, 그 울림이 너를 향한 나의 열망을 더욱 이끌어낸다면, 너는 매일 아침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너를 향한, 너를 위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어. 나의 사랑하는 알마여!”
다시 말하거니와, 말러는 위 곡으로, 아니 위 악장 ‘아다지에토’로, 19세 연하의 알마를 색시로 얻는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 그윽한 악장’이라고들 한다. 사실 말러의 당초 구상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초의 절대음악으로 쓴 교향곡이다. 말러가 ‘이 곡은 스스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4개 악장의 교향곡이 될 것’이라고 1901년 무렵에 이야기하였다. 이 곡이 교향시나 칸타타 형식의 초기 교향곡과는 달리, 절대음악으로서의 교향곡을 쓰고자 하는 말러의 첫 구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나중에 알마를 만난 말러가, 그녀를 염두에 두고 예정에 없던 아다지에토를 삽입하면서 곡의 구조는 애초의 아이디어에서 조금 벗어나기는 했다.”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 지칠세라, 다음호에 ‘나누어 싣도록’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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