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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을 하며(1)수필/신작 2022. 11. 16. 00:55
하여간, 저는 쉼없이 적어야만 해요.
죽는 그날까지 적을 거에요.
님들께서는 제 소중한 자산이에요.
마치 또 다음 작품 조르시는 것 같아서,
글 아니 쓸 수가 없어요.
이 글 '정규화 박사님'께 바쳐요.
박사님께서는 줄잡아 20년 제 최애독자로 계시지요?
그리고 새롭게 얻은 내 착한 뮤즈한테도 이 글 바쳐요.
모자라는 점은, 그대가 개작하여 지상에 발표하시어도 좋아요.
나의 글에서 영감을 얻으시어,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드시어도 좋아요.
오, 두루두루 사랑해요.
저는 제 수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이에요.
그리고 단언해요.
화려한 이야기가 왜 필요한 거죠? 무슨?
수필작가가 쓰는 글은 모두 수필인 걸요.
글은 살아있어야하지 않아요?
매양 제가 말해오지 않았던가요?
"생활이 수필이요, 수필이 생활입니다."
아주 작은 지식이라도 독자님들께 전한다면,
그 또한 보람된 일이고요.
콩 타작을 하며(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농부들 사이에는 콩 타작을 하면, 한 해 농사는 끝난다는 말이 있다. 콩 타작은 미뤄두었다가 맨 나중에 하여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나의 작업도 콩 타작이 최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가을볕이 좋은 오늘 하오. 한 나절 이슬이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멍석 대용으로 나온, 그 편리한‘가빠(kappa,capa)’에 꽤 오랜 동안 각각 널어두었던 콩대와 팥대를, 가빠를 썰매삼아 콘크리트 다리[橋脚]에 두 차례 끌어왔다. 콩과 팥은 그 쓰임이 다르니, 당연히 가빠를 달리 해서 따로따로 말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닥이 딱딱하여야 도리깨질이 제대로 먹혀들어갈 것 같아서, 콘크리트 다리를 부러 택했다.
콩 타작은 시작된다. 도리깨질을 세게 해대니, 콩꼬투리가 차례차례 벌어지면서, 콩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얼씨구나 좋다하며 그야말로 ‘콩!콩!’산지사방(散之四方). 녀석들은 가급적이면 이 농부의 가빠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애쓴다. 녀석들은 종족번식을 위해 그러한 ‘공 꼴[球形]’몸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해서, 이 녀석들을 총칭하여 협과(莢果) 즉, 꼬투리열매과로 부르지 않는가. 마치 애인의 그 예쁜 바지 앞지퍼가 터지듯 하는... . 그 지퍼가 터지면 그 반동(反動)으로, 용수철처럼 가급적이면 멀리 튀어, 그곳에서 ‘송백파(松柏派)’ 따위로 ‘파(派)’를 이루고자 할 게 아닌가. 마치 내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듯. 콩과식물, 즉 콩꼬투리를 지닌 모든 식물들의 독특한 종족번식법을 내 모를 리 없었건만... . 농부인 나는 녀석들의 욕망과는 전혀 다르다. 보다 많이 알갱이를 포로로(?) 잡아두어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아내는 메주를 쑬 게 아닌가. 도리깨질을 하되, 그 강도를 조절하여 보다 약하게 한다. 내 꾀는 멀쩡하니 자꾸 속을 수는 없지. 자꾸 낭패를 당할 수는 없지. 나의 도리깨질은 피아니시모(pianissimo), 피아니시모. 아니, 데크레센도(decrescendo).아니아니,안단테에스프레시보(Andante espressivo) 즉, ‘감정을 갖고 천천히’.
잠시 도리깨질을 쉬고, 콘크리트 다리에 퍼질러 앉아 농주(農酒)인 막걸리를 두어 사발 연거푸 들이킨다. 문득 그분이 떠오를 줄이야! 그분이 정년퇴임으로 두고 간 그 대학의 연구실에는 이곳 ‘경산시 남천면 송백1리에서 취득한 표본 돌콩과 표본 여우팥씨’라는 정보가 든 씨앗도 있다고 자랑하셨다. 내가 부친 그 씨앗들. 나름의 분류기호가 든 그 씨앗들. 그분은 전남대 생명화학부 석좌교수 두곡(豆谷) 정규화박사님. 그분은 세계 최고 콩박사이며 야생콩 세계 최다 보유자이시다. 그분은 미국 ‘일리노이즈 국제 메주콩 연구소’에도 근무하시었다. 그분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메주콩의 원조인 우리나라의 돌콩 씨앗을, 거금 들여 사들이겠다고 로비해 왔을 적에도 국익을 생각하시어 단호히 거절했던 일화도 나한테 들려준 바 있다.
“윤 선생님, 국제간에는 종자전쟁이에요. 안타깝게도, 생각 없는 이들이 우리 꺼 다 빼돌렸어요. 제가 그 점 너무 안타까워, 정부 당국자들한테 ‘종자 보존에 관한 법률 제정’을 권고했어요. 때늦게야 관계법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
메주콩[大豆] 공부에 미쳐서(?), 혼기도 다 놓치고 삼십 대 후반에, 착하디착한 구원자(救援者)와 결혼하신 분. 하필이면, 그 사모님은 중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시라고 하셨다. 사모님은, 내가 당신 남편이신 정 박사님께 e메일로 부쳐드리는 나의 수필작품들을 수시로 출력하여, 당신의 어린 제자들한테 종종 소개하신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이 매정하고 무례한 수필작가 윤근택은, 그분을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직접 찾아뵙지를 못하였다. 20여 년째 나의 최애독자로 계시는 분. 사실 나는 그분께 ‘돌콩박사’란 수필작품 한 편을 적어 헌정했을 뿐인데... . 그분은 세상의 모든 메주콩의 기원은 대한민국이라고 여러 차례 힘주어 말씀하셨다. 우리가 늘 먹는 된장 원료의 원조는, 한반도의 돌콩이라고 하셨다. 이 콩 타작을 끝내면, 곧바로 문후(問候) 드려야겠다.
농부가 쉬는 것도 유분수지. 늘어지게 쉬어서야 되겠나. 다시 내 작업은 이어진다. 한 알이라도 덜 달아나게 도리깨질 강도를 되도록 약하게. 기왕에 유전적으로 꼬투리로 된 콩.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그 솔기가, 그 재봉선이 터지는 것을.
콩과식물은 참으로 우리네 인간한테 이롭다는 것을, 새삼 내 애독자들께 간략간략 전해야겠다.
콩과식물의 이점.
1. 녹비작물(綠肥作物)
그들 뿌리는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한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콩과식물의 뿌리에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대신 공기 중의 질소 성분을, 식물의 뿌리가 흡수하기 용이한 형태로 고정(固定)시켜 준다. 공기 중에는 질소 성분이 최고 많지만, 식물생장에 필수적인 그 성분을, 뿌리가 빨아들이기에 용이치 않은 ‘유기태(有機態)’를 ‘무기태(無機態)’로 바꾸어준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연상작용을 이내 하실 듯.
“그렇다면 개간지나 절개지에는 첫해에 콩과식물을 심으면 되겠네요?”
제대로 알아맞힌 것이다. 새 도로를 내면서 생긴 절개지에다 콩과식물인 싸리나무 씨앗을 뿌리는 이유다.
2. 콩은 순따기[摘心]가 반드시 필요한 식물
아이러니하게도, 콩은 ‘해코지’를 하여야만 수확량이 많아진다. 이는 일소[役牛]와 고라니한테서 배운 지혜. 본디는 우리네 인간들이 콩 농사에 순따기를 몰랐다고 한다. 콩은 생장과정에 다소 덩굴성을 지녔다. 일소와 고라니는 어찌나 콩의 햇순을 좋아하는지. 일소는 ‘소머거리’ 즉, 마스크를 채우지 않으면, 밭을 갈다가도 주인 몰래 그 얼뜬 눈을 흘깃하며 콩순을 그 긴 혀를 내밀어 말아 따먹게 된다. 그러면 주인은 그 해 콩 농사를 다 망쳤다고 생각한다. 고라니들도 마찬가지. 밤새 콩밭에 내려와 용케도 콩의 새순을 모조리 다 따먹고 간다. 그러면 농부는 그 해 콩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다친(?) 콩에서 풍성한 수확을 보게 된다. 가지가 벌어 더 많은 꼬투리가 맺은 결과. 순전히 그러한 일소와 고라니의 해코지 덕분이다. 그때부터 ‘콩순 따기’는 콩 농사기술이 되었다는 게 정설(正說). 순전히 일소와 고라니가 콩 농사 기술을 일러준 셈.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이 글도 여느 나의 작품들처럼 수편의 연작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는 글의 길이에 너무 지친다는 나의 뮤즈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세계적인 콩박사이신 정규화 박사님께도 이 글 바쳐요.
그리고 내가 새롭게 얻은 뮤즈께서는, 절제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이 글 맘에 아니 들면, 개작(改作)하여 본인의 작품으로 발표하여도 좋다. 이젠 내 곳간의 쇳대(열쇠)마저도 그대께 맡기고픈 걸요. 그대가 이 대한민국 최고의 수필작가가 되길 바라면서.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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