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3)
    수필/신작 2022. 12. 17. 00:11

    '내가 변하면 됩니다.'

    세상이 바뀌길 바랄 수는 없죠.

    제가 새롭게 얻은 뮤즈는 제 맘 제대로 아시는 듯.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번 이야기는 이 시리즈물 제12화의 한 부분을 따옴으로써 출발하려 하오.

     

     

        < 새벽 4시에 팔 통증으로 간호사 불러 진통주사 맞고 난 후 윤쌤 글 봅니다. 이 문자도 새로운 수필장르 개척의 한 영역이라고 하시니, 그 또한 틀린 말씀은 아니다 싶고요. 그럴 거면 좀 더 멋진 문자로 화답할 

    걸 그랬구나 싶어요. 하지만, 꾸며내지 않은 일상의 평범한 언어들이 오히려 더 진실성이 있어 교감이 생겨나니, 문학의 지평 확대엔 이보다 더 나은 게 없다는 생각. 문자하고 싶으나 다시 팔 통증이 와서 이만.>

     

       

        기특하오. 내 맘 알아주시어 기특하오. 내가 개척한 ‘콜라보레이션 수필’에 찬사를 보내는 듯하여, 동의하는 듯하여 행복하오. 무척 힘이 나오.

     

        나는 그대께,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이러한 문자를 보냈소.

     

     

       <투병 중이라, 특히 오른팔의 통증이라, 작가인 그대한테는 썩 안 좋은 일. 대신, 틈틈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옴으로써 창작의 갈증 그나마 달래고 있지 않소? 이에 재치로운 수필작가 윤쌤은 그대의 문자 메시지를 이처럼 작품으로 변환하고 있으니, 그댄 귀인을 만난 게 분명하오. 그대의 작품활동은 주욱 이어지는 셈. 절반은 그대가 쓴 나의 작품들. 그런데 갑자기 짚이는 게 하나 있다? 그대가 수필작품 빚는다고 뇌수(腦髓)를 썩이며,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왔던 바람에, 그 몹쓸 병인 목 디스크와 척추협착증 왔을 듯도. 그대 빼어난 재능을 신께서 질투하시는지도 모를 일.>

     

      

       위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은 오후 6시 54분.

     

      그대가 병석에서 일어난 어제 오전 7시 21분. 이런 화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오.

     

      

       <빼어난 재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유전적으로물려받은 51%의 재능에 나머지 49%를 채워넣기 위해, 퇴근 이후 새벽까지 무리한 글쓰기로, 창작의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물이긴 하죠. 그 탓으로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가 왔고, 수 없는 아픔이 오고갔지만, 이제는 그 고통의 임계점에 온 듯. 전성기란, 어떤 분야 정점(頂點)에 올랐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가라는 의미도 중첩되어 있어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요. 정점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은 독자들(팬들) 보기에 아름답지 않죠. 내려오는 과정도 추하지 않게, 나비같이 가볍게, 꽃잎처럼 사뿐히 원래의 제자리로 서서히 안착할 수 있게 되면 성공한 거죠.>

     

     

       역시 윤쌤의 통찰력은 알아주어야 하구려. 이는 자화자찬이오. 내가 목디스크 및 허리디스크 전문의도 아니면서, 위의 문자 메시지 내용처럼 그대의 발병 원인을 금세 찾아내었으니까.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그대의 글을 달랑 한 편 읽었을뿐 종이책 세 권과 그밖의 작품들 전혀 읽어본 적도 없으나... . 그게 예술가의 영감.

       하오나, 이번에는 내가 감히 그대께 충고할 게 있다오. 잘 새겨들으시오. 나는 나이 서른둘에 철모르고 수필문단에 데뷔하였고, 그 동안 33년가량 작품활동을 하여 온다오. 나 또래의 수필작가들한테 문안전화를 겸해 작품활동에 관한 문의를 하다가보면, 공통적으로 ‘손들었다’ 또는 ‘절필하였다’ 응답을 하더이다. 난들 그 점 왜 모르겠소? 난들 그러한 고민 왜 없겠소? 그들의 말뜻은, ‘늘 그게 그거 같은 윤 아무개 수필가의 글’따위로 일컬어진다는... . 그들은 다들 ‘매너리즘(mannerism)’을 그렇게 호소한 게요. 하지만, 나는     내 사랑스런 그대께 감히 말해요.

       “나한테 매너리즘이란 건 없어. 나는 언제고 새롭게 시작해. 나는 그 매너리즘을 ‘프랙탈(fractal)’이란 문장이론으로 달리 말하고 있어. ”

       동일 이름으로 수필작품을 적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어. 그러니 그대도 안심하시오. 인터넷 검색창에서 ‘윤근택의 프랙탈’ 따위로 두드려 찾아보시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그대의 동의하에(?), 그대의 도움 아래, 이미‘콜라보레이션 수필’을 이렇게 적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고민?

       덧붙이리다. 나는 ‘오지도 않은 미래의 외손주와 노변담화’인 ‘나무난로 앞에서’ 시리즈물도 100회 이상 적어왔다오. 가지도 않은 외국 기행문도 꽤나 적어왔다오. ‘꼴라주 형태의 수필’도 적어 왔다오. ‘제삼자가 나를 두고 쓴 듯한 수필’도 적었다오. 이제 그대 알아, 병석에 누운 그대 덕분에(?), ‘콜라보레이션 수필’까지도 개척한 마당에, 매너리즘이란 게 있을 수 있겠소? 그대 투병 중에 오간 우리의 이 문자 메시지들. 이것만으로도 단행본 엮을 수 있기를. 그 판권은 몽땅 그대한테 넘겨드리니.

       끝으로, 그대가 날이 갈수록 이쁜 짓을(?) 하는 걸 느낀다오.

       “윤쌤, 늘 깨어 계시어 걱정이에요. 잠은 언제 주무셔요? 건강 해칠까 저는 한걱정이에요.”

     

     

     

      작가의 말)

       나는 종종 많은 이들한테 말해왔다.

      ‘잘 쓰인 편지가 아주 훌륭한 수필작품입니다.’라고.

       하지만, 위 글은 잘 쓰인 편지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결코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더라도, 작중 화자(話者)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 음악 감상에 대한 사랑 등이 군데군데에서 묻어나리라고 믿는다.

    33년째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재치 있는 윤 수필작가. 새롭게 시도한다. ‘휴대전화기 메시지 주고받음’을 이처럼 문자화하면 되겠다고.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내가 창시자라고 자부하면서. 나아가서, 이 글은 두 수필작가가 힘 합쳐 적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수필’이다.

       당연히 이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수필’을, 작중인물인 여류 수필가 그분한테 헌정한다. 그가 ‘거들어 쓴’몫도 절반 정도 있기에. 아무쪼록, 새로운 수필 장르를 개척토록 해준 그대께 경의를 표한다. 하더라도, 다음 글감 짜내어 영감 주지 않으면, 이번 학기 ‘문학개론’은 F학점 처리하겠다고 경고함.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추밭에서(17)  (0) 2022.12.18
    고추밭에서(16)  (2) 2022.12.18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1)  (2) 2022.12.16
    어느 싹아지 여편네  (0) 2022.12.15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9)  (2) 2022.12.1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