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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추밭에서(16)
    수필/신작 2022. 12. 18. 06:31

     

                                                                       고추밭에서(16)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풋고추를 따면서, 이번에도 아주 엉뚱한 혼잣말을 내뱉게 될 줄이야!

       ‘ 이 자잘하고 하얀 꽃들이 나중에 내 사타구니의 고추보다도 더 큰 고추열매를 달리도록 하다니!’

        정말 그러하다. 하찮게 보이는 이 고추꽃들이 일을 저질러도 한참 크게 저지른다. 맵고 굵은 고추열매를 맺도록 한다. 동물의 수컷 정액에 해당하는 꽃밥 내지 꽃가루가 암꽃의 그 가느다란 대롱 입구인 암술머리에 닿으면, 그 특유의 나팔처럼 생긴 소음순(小陰脣)을 거쳐 질(膣) 속으로 달려가게 된다. 동물의 자궁에 해당하는 ‘씨방’에 꽃밥이 닿아, 난자와(?) 결합하면, 곧바로 고추열매로 자라게 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이 과정 탄복해 하셔야 할 듯. 동물의 수컷암컷의 성기(性器) 구조와 식물의 그것들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성행위 과정도 엇비슷하다. 다만, ‘植物’은, 스스로 움직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動物’과 달리,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누군가가 다른 장소로 ‘심어주어야 할’  뿐. ‘植物’이란 이름이 하나 더 시사하는 바, 우리네가 동물한테 행하는 인공수정처럼, 누군가가 수컷의 씨[꽃밥]를 암술머리에 ‘심어주어야[植]’하는 생물체로 새겨도 될 듯. 자연 식물은 동물과 달리, 성교의 쾌감도 못 느끼는 채 남녀간 교접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른바 중매쟁이가 그것들 성교를 도와준다. 풍매화(風媒花)니, 충매화(蟲媒花)니, 수매화(水媒花)니, 조매화(鳥媒花)니 하면서. 고추꽃은 화려하지 않고 꿀이 많지 않아, 벌 따위의 곤충을 크게 유혹하지는 않는다. 해서, 고추꽃의 ‘꽃가루받이’ 곧, 수분(受粉) 은 주로 바람을 중매쟁이로 삼는 ‘풍매화’로 부른다 . 그러나 나는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윙윙대는 꿀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꿀벌의 침에 손가락이 쏘인 경험도 있다. 그러니 고추는 풍매화이면서도 충매화임을 알 수 있다. 해서, 고추의 종족번식 전략 내지 종족번식력은 빼어나다고 보면 된다. 작은 바람의 일렁임에도 수술머리의 꽃밥이 발기(勃起)하여(?) 암술머리로 쏟아져 내릴 터. 그러면 물오른(?) 암술머리는 나팔처럼 생긴 그 특유의 소음순을 발름거려 정충(精蟲)을 받아먹을 것이다.

        대체로, 고추를 비롯한 풍매화들의 번식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인류 3대 곡물인 벼와 밀과 옥수수가 대표적인 풍매화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서 옥수수는 풍매화이되, 교잡(交雜)이 아주잘 되는 작물이다. 자가수정(自家受精)을 오히려 꺼려하는 작물로 잘 알려져 있다.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뛰어난 작물이다. 이 점이 다양한 종류, 다양한 성질의 옥수수로 지구상에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옥수수꽃은 본디‘바람둥이’라서 서로 가리지 않고 난잡한 관계를 맺어, 순수 혈통보다 강한 F1, F2, F3...를 낳게 된다고 달리 말할 수 있다. 고추도 그러하다. 바람만 살랑 불어도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니, 그 번식력은 대단하다고 할밖에. 실제로 고추와 옥수수의 품종은, 잡종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없이 많다. 그것들 작물이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큰 힘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고추는 수백, 수천 종으로 분화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만도 100여 종으로 분화되어 있다. 그 쓰임에 따라서만도, 풋고추·오이고추·꽈리고추·아삭이고추·청양고추로 가를 만치. 파프리카, 피망, 칠레고추 등도 고추의 한 갈래일 따름. 옥수수도 그러하다. 하여간, ‘바람기 많고’바람을, 봄바람을 중신애비로 잘도 삼는 고추는 옥수수와 더불어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생명체가 고추뿐이랴! 사타구니에 고추를 달고 지내는 인류도 마찬가지다. 그 생산능력을 논하자면, 흰둥이든 검둥이든 누런둥이든 서로 연애하기만 하면, 우성(優性) 형질의 혼혈아 2세가 태어나니. 그 맵싸한 고추의 위대함이여!

     

       작가의 말)

       단숨에 적은 글이라 흠결이 아주 많을 줄로 안다. 하더라도, 이젠 안심이다. ‘내가 새롭게 얻은 뮤즈’께서 병석(病席)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기만 하면,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낱낱이 바로잡아주실 테니.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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