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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7) - 두 남자가 공유(共有)했던 여류음악인-수필/음악 이야기 2023. 2. 26. 15:11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7)
- 두 남자가 공유(共有)했던 여류음악인-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화학에서는 ‘공유결합(共有結合)’이란 게 있다. 2개 이상의 원자들이 전자쌍을 공유하면서 형성되는 화학결합을 이른다. 암모니아·에탄올·포도당이 대표적인 공유결합물이다. 또, 나라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결혼풍습도 공유결합과 유사한 예가 있다.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니,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따위가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은, ‘공유결합’도 유분수이지, 변형된 ‘이부일처제(二夫一妻制)’를 한평생 맘껏 누렸으니, 복 받은 여인이었음이 틀림없다.
때는 정확히 1843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22세 나이였다. 그녀는 러시아로 첫 공연에 나선다. 그녀의 공연을 보던 어느 러시아 문학작가가 그녀의 독특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3세 위인, 25세의 서류상(?) 총각인 ‘투르게네프(1818~1883, <첫사랑(중편)>과 <아버지들과 아들들(장편)>의 작가, 러시아)다. 사실 그녀는 이미 18세에, 쇼팽의 연인이었고 9년간 그와 동거한 ‘조르주 상드(1804~1876, 프랑스 소설가)’의 소개로, 자기보다 21세가 많은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녀의 남편은 ‘루이 비아르도(1800~1883, 프랑스 언론인 겸 저술가 겸 예술 역사학자 겸 예술 평론가)’다. 이미 둘 사이에는 첫 아이가 태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유부녀였던 게다.
그런데 어쩌자고 ‘투르게네프’는 그처럼 무모한(?) 행각을 벌였을까. 그는 그때부터 그녀한테 폭 빠져,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게 된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가 ‘베를리오즈(1803~1869, 프랑스 작곡가)’와 어금버금 ‘예술가 스토커(stalker)’로 역사가 기록하여도 될 듯. 하기야, 이 연작물 제 75화에서 다룬 <환상교향곡>의 주인공, ‘베를리오즈’도 여배우 ‘해리넷 스미디슨’한테 유사한 짓을 하였다. 결국 그들은 나중에 결혼하고, 뒷날 둘 다 불행해졌지만... . 사실 투르게네프도 이미 하인이었던 여인을 어찌어찌 하여, 사생아까지 얻은 상태이긴 하였다.
그길로 투르게네프는 아예 보따리 챙겨, 그녀가 사는 집 옆집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이주하게 되면, 그도 또 다시 이사를 따라하게 된다. 기가 막힐 일. 더더욱 놀라운 일은, 그녀의 남편이 그들 ‘불륜사실’을 짐짓 눈감아주었다는 점. 아니, 그들 두 남자는 태연작약 ‘ㅇㅇ 동서’로 한평생 다툼 없이(?) 지냈다는 게 더욱 흥미롭다. 같이 사냥을 가거나 문학토론도 했다는 거 아닌가. 그들 삼인(三人)은 화학시간에 졸지 않고(?), ‘공유결합’의 개념을 정확히 깨우쳤던 듯.
남자 복도 배 터질(?) 지경으로 많았던 이 글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 그녀가 바로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 1821~1910, 에스파냐 출신, 프랑스 메조소프라노 가수 겸 교육자 겸 작곡가)’이다. 내가 이 글의 완성도를 더하고자, 인터넷을 통해 그녀의 실물사진과 ‘열창(熱唱) 동영상’을 보고 듣고 하였는데, 나도 역시 ‘뿅!’했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는, ‘공연장 여성 출입금지’를 하던 시절에, 그녀의 공연을 보러, 일부러 남장(男裝)까지 하고서 갔다가 ‘뿅!’해서, 21세 위인 남자를 배필로 맺어준 점을 이해할 듯하다. 심지어, ‘상드’ 자신과 한 때 열애했던 ‘뮈세(1810~1857, 프랑스 시인 겸 극작가)’가 ‘폴린’을 치근덕대자(?) 떼어놓고, 그렇게 혼인을 서두르기까지 하였다. 자연, 상드는 그 소식을 연인인 쇼팽한테도 전해주었을 터. 18세의‘폴린’은 쇼팽이 죽자, 진혼곡을 불러주고자 하였다. 장례위원회는(?) 몇몇 날 장례를 미루고, 대주교를 설득한 후 커튼 뒤에서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것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는 가톨릭 종교 교리에 따라, 여성이 장례식에서 진혼곡을 못 부르게 되어 있었단다.
‘폴린’한테는 많은 작곡가들이 ‘나립(羅立)’했다고 한다. 멘델스죤, 쇼팽, 리스트 등등. 그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위해 곡을 써 줄 테니, 그 곡을 불러주시오.”
쇼팽은 자신이 적은 그 많은 <마주르카> 가운데에서 12곡을 뽑아, 그녀한테 악보를 건네주며, 편곡하고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 <마주르카 33-2>는 그녀에 의해, <나를 사랑해줘요(Aime Moi)>로 편곡되어 노래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시계바늘을 저기 위 어느 단락,‘ 때는 정확히 1843년.’로 돌린다. 투르기네프가 그녀 러시아 첫 공연에서 ‘뿅!’가기 시작하던 때 후일담이다.
어느 평론가는 그녀의 상트페트르부르크 공연을 청취하고 이렇게 적는다.
‘ 우리는 많은 일급가수의 노래를 들어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를 압도한 가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이 글에서 떠나 있었던 투르기네프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그의 대표작들 가운데에서 하나로 알려진 중편소설, <첫사랑>은 1860년 그가 42세가 되던 해에 발표했다. 시기적으로 보아, 그가 이 글 주인공인‘폴린’과 불륜관계를(?) 이어가던 한 참 후 작품이다. 그 작품 속 여주인공 ‘지나이다’의 모델이 폴린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임자 있는 여인을, 그토록 사랑함으로써 영감을 얻어 쓴 명작이라고 보아도 될 듯.
한편, 폴린은 폭넓게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동시대를 살았던 슈만의 부인, ‘클라라 슈만(1819~1897,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독일)’도 있었다. 둘은 절친이었다고 한다. 자연, 그 소식도 남편인 슈만한테 전해졌을 터. 슈만은 그녀의 공연을 본 다음 이렇게 말한다.
‘ 저런 여자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녀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가수 저음인 ‘알토’에서 고음인 ‘콜로라투라’까지 음역대가 아주 넓었다고 한다.
‘모파상(1850~1893, 프랑스 단편소설가)’도 한마디 거든다. 사실 모파상, 그는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너무 밝혀 ‘매독’이란 성병에 걸려, 43세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이긴 하지만... . 어디 그뿐인가. 그는 살아생전 친구들과 농담 끝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여자다.”라고까지 했다지만... .
‘투르게네프와 폴린의 관계야말로, 19세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참, 이 이야기에 앞서, 그녀 이성관계를 밝힐 걸 그랬다. 그녀의 이성관계는, 모친 역할을 했던 상드와 달리, 비교적 깔끔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편과 또 다른 남편격인 ‘투르기네프’한테만 충실했던 것으로. 하기야, 그들 남자 둘만 하여도 복이 한껏 터진 여인이었지만... .
이제 그녀, ‘폴린’에 관해 내가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취득한 정보를 마구 따발총처럼 ‘따!따!따!’ 쏟아 붓고 글을 맺어야겠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테너였던 ‘마누엘 가르시아’, 그녀의 오빠는 바리톤이자 19세기 성악교수법의 최고 권위자였던 ‘마누엘 가르시아 2세’, 언니는 오페라 가수였던 ‘마리아 말리브란’, 그녀는 막내. 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그녀가 피아노를 접고 성악으로 승계. 그녀의 아버지는 불같은 성질. 매질해가며 자식들 성악을 조련한(?) 이. 세계 도처로 음악여행을 했던 가족. 그녀는 그 덕분에 4세 때부터 4개외국어에 능통. 그녀는 언니에 비해 얼굴이 좀 뒤쳐졌다고 한다. 목이 유난히 길고, 눈은 툭 튀어나오고 커다란 눈이었다. 두꺼운 눈꺼풀이었다. 입술은 두터웠으며 턱은 덜 빠져 나왔다.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하기야 그녀가 에스파냐산이었으니. 어떤 이들은 그녀가 ‘말상[馬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우아한 미소, 총명하게 반짝거리는 개암색 눈빛, 활발한 성격을 보여주는 표정 등으로 두 번, 세 번 그녀를 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매료되었다고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그녀에 관해서 따로 알아보시길. 대신, 나는 많은 음악평론가들 이야기 등을 취합하여 이 글에서 밝힐 게 몇 개 된다. 첫째, 그녀는 정상적 학교교육을 받지도, 음악공부를 하지도 않았다는 점. 오로지 부친의 호된 조련으로(?) 성악은 물론 작곡의 경지에까지 올랐다는 점. 둘째, 그녀는 기존질서 내지 통념을 깨뜨리고, 두 남자를 섬기며 연인인 투르게니프의 사생아도 자기 아이처럼 돌보아주었다는 점. 셋째, 남편 죽음에 이어, 연인인 투르게네프가 65세 나이로 척추암에 걸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집에서 보살펴주었다는 점. 끝으로, 그녀는 예술장르와 관련 없이, 나라도 상관없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예술의 가교(架橋)’ 역할을 했다는 점. 이에 덧붙여, 그녀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문호 투르니게프의 연인이었다는 점.
이제 나는 너무 숨차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로 여기에서 마감해야겠다. 이 말 한마디만 더 하고서.
‘제발 예술을, 예술가를 도덕적 잣대로만 재지 마시오. 모름지기, 예술가한테는 ‘영감’, 영감만이 ... . '
작가의 말)
나의 뮤즈들께서도 바람기 많았던 탕아(蕩兒) ‘페르 귄트’를 닮은, 이 윤 수필작가의 언행을 넌즈시 보아 넘겨주시길.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가운데에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떠올리시면서.
소프라노 ‘조수미’도 애절하게 노래할 거외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하략)//>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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