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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9)- “그가 미쳤어!”-수필/음악 이야기 2023. 3. 13. 03:48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9)
- “그가 미쳤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928년 그가 53세 때 작곡한 곡. 그해 11월 22일 ‘파리오페라극장’에서 러시아 출신, 전설적 남성 무용가 ‘니진스키’가 연출하고 초연하게 된다. 그 공연을 관람하던 한 여성이 고함쳤다.
“ 그가 미쳤어!”
그 소문을 전해들은 이 글 주인공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내 음악을 제대로 이해했어.”
그 곡은 특이한 구성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똑 같은 리듬에 맞춰 연주되는 두 개의 주제선율. 악기만 바꾸며 18번이나 반복된다. 부연하자면, 제1주제와 제2주제가 18개로 변주된다. ‘스네어드럼’,곧 작은북으로 아주 여리게 시작된다. 악기 순서는 이렇다. 다소 장황하지만, 그대로 적을밖에. 플루트 - 클라리넷- 파곳 - Eb클라리넷 - 오보에 다모레 - 플루트, 트럼펫 - 테너 색소폰 - 소프라노 색소폰, 소프라노 색소폰 - 오보에, 오보에 다모레, 잉글리시 혼 - 클라리넷 - 트롬본 - 목관 앙상블 - 현악기 - 현악기와 트럼펫 - 오케스트라 전체 - 피날레 .
영화 ‘포레스토 검프’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겹쳐진다. 작중 인물 ‘포레스토 검프’가 쉼 없이 달리자, 영문도 모르는 채 추종세력들이(?) 골목골목 하나, 둘 모여 나와 달려, 그 인원이 차츰 늘어나듯. 또, 실개울이 냇물을 이루고, 그 냇물이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바다에 닿듯 하는 음악 구성. 문장수사법에 비유하자면, ‘점층법’이다.
그 작품 초연은 대박이었다. 그 작품이 성공하자, 작곡가 자신이 당황해하며 고백하게 된다.
“ 이 곡은 음악이 아니라 ‘실험’이었어. ‘음악이 아닌 관현악적 조직’이었어.”
후일 그는 이런 말도 하게 된다.
“ 나는 단 하나의 걸작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이 글 주인공에 관한 힌트를 위에서 살짝 흘려 두었다. <볼레로>. 내 애독자들께서야 애가 타든 말든, 그의 정체에 관해서는 좀 더 뜸들이고, 엉뚱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볼레로란, 매우 강렬한 리듬을 지닌 3/4박자의 스페인 춤이다. 캐스터네츠를 치며, 걷기(paseo) - 갑자기 멈추기(bien parado) - 다양한 발구르기(battement)로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 글 주인공의 모친은 스페인계였으니, 그의 피속에도 ... .
그 곡의 탄생비화다. 그는 마침 파리에 와 있던 러시아 무용가, ‘이다 루빈스타인(Ida Rubinstein,1885~1960)’의 청탁을 받았다. 그녀는, 알베니스의 <이베리아>를 ‘관현악의 대가’ 내지 ‘관현악의 교본’이신 당신답게 편곡해서 무대에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가 있어, 그는 괴짜스럽게(?) 이 곡을 적어 건네주었다. 파격적인 구성과 혁신적 실험이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반복적 선율은 중독성이 무척 강해, 18분간의 연주를 들으면, 종일 그 여음(餘音)에 시달릴(?) 지경이다.
대체, 그가 누구냐고? 그가 바로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1875~1937, 프랑스)이다. <볼레로>면 라벨, 라벨이면 <볼레로>라는 하나의 등식을 만들어낸 작곡가. 그는 14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음악 학습 지진아였다. 결국은 20세가 되던 해 자퇴할밖에. 그랬던 그가 ‘관현악 교재’가 되었다. 독창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 그는 ‘균형감과 놀라움의 요소’를 지닌 모차르트를 이상적 작곡가로 여겼다. 그는 고전주의적 대칭적 선율구조와 간결함과 명료성을 추구하였다. 게다가, 그의 곡에는 라벨 특유의 현대적 감각이 녹아 있다. 정교하고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 빌라 로보스 등 당대의 음악인들을 매료시켰다. 스트라빈스키는 그를 두고, ‘스위스 시계공’이라고까지 하였다.’
사실 음악평론가들은 대체로, 그가 피아노 기반 곡을 반복구조를 통해 절정으로 몰아가는 ‘미니멀리즘’ 음악가들한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들 한다. 미니멀리즘이란, 최소의 재료(선율)로 표현하는 예술(음악)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점만은 이 ‘농부 수필가’가 동의할 수 없다. <세 개의 짐노페디>란 작품으로, 미니멀리즘의 창시자라고 하는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프랑스)’.그는 1888년에, 라벨이 <볼레로>를 적었던 1928년보다 정확히 40년 전에 그 곡 <세 개의 짐노페디>를 적었다. 정말로 라벨과 에릭 사티가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구자였을까?
사실 나는 이 글의 완성도를 더하고자 몇 몇 날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원(始原)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이 작은북의 여린 음(音)에서 비롯되었듯. 그러자 여태껏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놓친 걸 드디어 찾고 말았다. 크나큰 수확물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13세기부터 계속 나나났다고 한다. ‘크리스발 모랄레스’는 ‘모테트(Motet)’,곧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성악곡’을 이미 적은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반복되는 음정과 리듬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위와 같은 악곡 형식이 16세기 춤곡의 베이스 성부에서 보편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음악용어에도 ‘오스티나토(ostinato)’라는 게 엄연히 존재한다. 오스티나토란, 악곡 전체에 걸쳐 짧게 반복되는 선율 또는 리듬 악구를 일컫는다. 바로크 시대 음악에 오스티나토가 많이 쓰였단다. 파헬벨(Pachelbel, 1653~ 1706, 독일) <카논>도 오스티나토. 그러니 이 글 주인공인 라벨한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볼레로>도 이러한 관점에서는 대단한 게 못된다. 다만, 위 부제목으로도 삼았지만, 어느 여성 청자(聽者)가 “ 라벨이 미쳤어!”라고 고함쳤던 점은 인정한다. 사실 그 <볼레로>는 듣는 이들은 매료되지만, 연주자들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단다. 특히, 작은 북 연주자는 그 강도를 차츰 높여가며 무려 18분씩이나 연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조금만 틀려도 연주 전체를 흩트려버린다고 하지 않은가.
사족을 붙인다.‘루도비코 에우나우디’, ‘막스 리히터’, ‘필립 글래스 ’ 등 내가 평소 좋아하는 미니멀리즘 음악가들의 음악도 그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색다른 게 결코 아님을 이 글을 쓰는 동안 깨닫게 되었다. 모두 오스티나토에 기반을 둔 작품들임을. 우리네는 오스티나토, 곧‘악곡 전체에 걸쳐 짧게 반복되는 선율 또는 리듬 악구’에 중독되고 있을 따름.
이제 엄연히 수필작가로 돌아와, 벼르게 된다. 나도 그 중독성 강한 ‘오스티나토의 수필작품’을, ‘미니멀리즘 수필작품’을 적어보아야지 하면서. 사실 이미 수 편 그런 경향을 띤 수필작품을 적었노라고 스스로 위로하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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