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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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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상(隊商)의 행렬
    수필/신작 2023. 7. 8. 12:37

                                                      대상(隊商)의 행렬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칼럼니스트)

     

     

        저녁 무렵. ‘만돌이농장’ 농막 처마 아래. 이미 농주(農酒)로 마신 막걸리로 말미암아 반술이 된 나. 흔들의자에 앉아, 저 아랫녘 저녁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발 아래, 콘크리트로 포장한 뜨락에, 까만 띠가 나타나 있었다는 거 아닌가. 처음에는 불쑥 나타난 실뱀인가 여겼는데... .

        정말 장관(壯觀)이었다. 그야말로 ‘대상의 행렬’이었다. 금세 오버랩 되는 장면. 1980년대 일본 ‘NHK 다큐’, <실크로드>. 당시 음악 담당이었던 ‘키타로(喜多郞,Kitaro,1953~,일본)’는 정상적인 음악공부도 아니 하였지만... . 미국 3인조 보컬그룹의 실패작인(?)‘카라반 사라이(karavan sarai)’란 가사가 든 곡을, 편곡하여 신서사이저 등으로 연주. 대박. 일천만 장 이상의 디스크 판매고를 보였다지 않던가. 다들 아시겠지만, ‘karavan’은 중세기에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방 실크로드를 오가던 ‘(낙타) 대상(隊商)’을 일컫는다. ‘sarai’는 그들 카라반들이 머물렀던 숙박소를 이른다.

       나는 농막 처마 밑 콘크리트 뜨락에 퍼질러 앉아, 4시간가량 ‘대상의 행렬’내지 ‘군대의 행군’을, 감동어린 눈으로 목도했다. 장마가 시작되는 걸 예감했던 건지, 개미들이 새로운 주둔지로, 혹은 새로운 ‘삶의 터’로 그렇게 대장정을 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그들을 위해, 휴대전화기를 조작하여‘키타로’의 ‘대상의 행렬’을,‘거듭 듣기’로 4시간가량 내내 들려주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그 신기로운 장면은 여태 잔상(殘像)으로 남아 있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그날 지친, 그들 까만 작은 개미떼들한테 내내 키타로의 ‘대상의 행렬’을 잘 들려준 것 같다.

       오늘은 종일토록 개미에 관해, 휴대전화기를 조작,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가 ‘개미장(-場)’이란 우리말 하나를 낚아채었다. 비가 오기 전에 개미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걸 두고, 우리네 조상들은 그들이 ‘장을 보러간다’고 여겨서 생긴 말인 듯. 그러니 일전 내가 그들의 행렬을 보고서, 무리지어 낙타 등짝에다 상품을 싣고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의 행렬’을 연상했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여담. 이처럼 나의 창작활동은 끈질김의 끝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그날 4시간가량 콘크리트 뜨락에 앉아, 개미들의 이동을 찬찬히 관찰하였다. 대열에서 이탈할세라, 탈영할세라, 좌우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질서를 잡아주는 개미들도 보았다. 그들은 호송(護送)을 맡은 듯. 일정 거리만큼 자기 담당구역을 맡아, 전진과 후퇴를 하며 대열의 질서를 잡아주고는 다시 일행에 합류하고, 바통을 다음 개미들한테 넘겨주곤 하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 행군은 먹이 피라미드 상위자의 눈에 띄지 않는 해질녘을 택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날 군대생활 3년 동안 경험했던 야간 군대이동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 그날 나는 아주 엉뚱한 생각도 하였다. 선구자(先驅者) 내지 지도자도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들 지도자가 올바른 곳으로 동족을 이끌고 가는지?’하고서. 몽매한 백성은 맹목적으로 그들 리더의 이끎에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근심도 해보았다. 그들 리더가 징기즈 칸, 히틀러, 알렉산더, 나폴레옹, 김일성, 푸틴 등 정복자 내지 전쟁광은 아닐까 근심도 해보았다. 우매한 백성을 전장(戰場)에 내몰아 몰살시키는 자는 아닐까도 근심해보았다. 그러면서 그들 개미들의 수장(首長)이 혜안(慧眼)을 지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이집트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고국을 향하던 성경 속 ‘모세’이기를 빌어주었다. 그들 리더가“나를 따르라.”하셨던 예수님 같은 개미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디 내 바람이 그것뿐이었으랴!

        “대왕이시여, 이 도읍은 기(氣)가, 운때가 다 하였으니 천도(遷都)를 하여야합니다.”

        그렇게 꼬드긴 개미는 없었으면 참 좋겠다는 ... .

        나는 참말로 그들 개미의 행군에 관한 속사정을 알 길 없다. 하더라도, 군집생활 내지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들한테는 서로 역할분담이 있을 터. 먹이 피라미드 상위자의 습격을 피하고자 피란길에 오른 것인지, 아니면 동족상잔을 피하고자 그렇게 고단한 길을 떠나는 것인지, 장마 따위 자연재해에 대피하는 것인지 등.

        일전 저녁 무렵 보았던 개미들의 대장정. 오래도록 내 망막에 남을 듯. 나는 그들이 새로운 곳에서 생업에 충실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간절히 기도한다. 본디 개미와 벌은 태어날 적부터 신분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여왕개미는 알만 낳고, 일개미는 일만 하고, 병정개미는 싸움만 하고... . 타고난 대로 자기 직분에 충실하며 불평불만 터뜨리는 법 없다고 하였다. 향도(嚮導) 즉, 가이드가 올바른 길을 안내하여 자기 종족을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들 리더가, 수장이 백성을 잘 이끌어 가서 태평성대를 누렸으면 참말로 좋겠다. 더 이상 그들 ‘대상의 행렬’에 욕심은 없다.

        “샬롬(shalom)! 평화가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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