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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집힌 우산’을 쓰고 있는 그들
    수필/신작 2023. 7. 18. 17:49

           ‘뒤집힌 우산’을 쓰고 있는 그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농막 창밖으로 내다본 바깥 사정. 내 ‘만돌이 농장’을 휘감고 흐르는 개여울은, 콘크리트다리 턱밑까지 찰랑찰랑. 우의(雨衣)를 입고, 금세 불어난 개울물에 떠내려갈세라, 다리[橋脚] 위에 설치해둔 전동 분무기 두 대를 얼른 피난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농작물 침수피해 등은 사치스런 걱정. 나는 다시 농막 안으로 피신해 있다. 이미 올해 장마철 집중호우는, 게릴라성 폭우는 전국 곳곳 많은 인명피해도 입힌 터.

        근심스레, 집중호우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농막 창을 통해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우물가 20여 평 토란들이 말썽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은 이 집중호우를 외려 즐기는 듯싶다. 얄밉다. 세상천지에,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뒤집힌 우산을 쓰고,“내리소서, 비여! 내리소서, 비여!”빌고 있는 듯싶어 얄밉기까지 하다. 누구 염장 지르는 것도 유분수지!   그러다가 이 농장주, 윤 수필가는 순간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이야! 그것들한테는 ‘뒤집힌 우산’이 보약이며 생명줄이라는 점.

        사실 나는 1989년, 내 나이 고작 32세일 적에, ‘우산’이란 수필작품으로, 어느 명문 수필문학 전문잡지를 통해, 수필작가로 데뷔하였다. 저 경남의 ‘정목일’이 나이 31세에 최연소 수필작가로 데뷔한 이래 처음. 그 데뷔작의 세 번째 단락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략)나는 어머니가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고쳐낸 우산의 행방을 잘 알았다. 아무리 조심스레 들고 가더라도 시오리 학교길 반에 반도 못 가서 바람에 훽 날려 우산은 초라하게 부셔졌다. 아, 이 또한 한 여인의 남편이 된 지금에사 되생각해보니, 모진 풍우에 시달려 돌아서서는 몰래 우셨을 어머니의 찢어지는 가슴은 아니었을까? 하는 수 없이 나와 우산짝인 형은 사나운 빗속에서 따로따로 갈라져야 했다. 고집스런 형은 아예 책보자기를 품에 꼭 안고 비를 날걸로 맞고 갔지만, 나는 알랑대며 친구의 살이 반짝이는 까만 천우산 아래로 갔다. 좁은 우산 아래에서 주인은, “우산을 똑바로 들자. 내 어깨 다 적시잖아! 책보자기를 바깥 팔에 들고 바싹 붙어라... .” 어찌나 이쁜 우산을 유세부리던지. 형처럼 비를 그냥 맞고 가는 편이 나을 성싶어 끝내는 그 까만 천우산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구두쇠 같은 어머니가 고샅에서 어르고 추키고 달래며, “ 이 우산 이젠 말짱하잖니?” 하던 말이 미워서 속을 보글보글 끓이며 빗속을 달음질쳤다. 친구가 공부 잘 하는 나를 시샘했다면, 나는 그 이상으로 녀석의 까만 천우산을 부러워했다.(하략)>

     

       그런데 저 토란 족속들은(?), 뒤집힌 우산을, 이 상황에서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놀랍고 신기하다. 얄밉기까지 하다. 들깨, 여름 상추, 팥, 콩, 옥수수 등 여타 내 ‘만돌이농장’의 작물들은 맥없이 장맛비에 물이 잠겨 허덕이는데... .

        정말로, 그것들 토란들은 폭우가, 장마가, 뒤집힌 우산이, 세상이 물바다가 되든 말든 죽든 말든 호기(好期)이다. 반듯 우산대에 해당하는 대궁을 세우고, 마치 뒤집힌 우산 같은 잎을, 이리저리 일렁이면서 그 잎에 맺히는 빗방울을, ‘탈탈’ 털어내는 재주하고는! 그러는 사이 우산대에 해당하는 줄기는 더욱 튼실하게 굵어질 터이니! 하여간, 그것들은 폭우를, 장마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저 토란은 지난 늦가을, 뿌리에서 ‘알토란’으로 일컬어지는 뿌리를 내가 정성스레 캤다. 그런 다음, ‘상토(床土)’를 담은 스티로폼박스에 심은 후, 시내 아내가 사는 아파트 작은방에 잠재워두었다. 겨우내 아내는 수시로 볼멘소리를 하였다. 벌레가 일었으니 내다버리자느니. 그러했음에도 나한테는 결코 아니 될 말.

        “토란은 더뎌요. 보리가 팰 무렵에야 싹을 틔우니... .”

        그래도 조바심부리며, 아내는 수시로 보챘다.

         “   현지 아빠, 이 토란들 다 틀린 것 같으니, 관리기를 몰고 와서 로터리(쟁기질)해주세요. 야생화 꽃밭으로라도 만들 테니... .”

        그것들, 알토란들은 하느님의 미션(mission;사명)을 여축없이 이행하였다. 내 아내가, 내가 심은 밀들을 베어, 입가에 숯칠을 하며 ‘밀사리’를 해먹을 무렵 그제야 촉을 틔었다. 해마다 그러했듯. 사실 나는 해마다 그들의 철을, 때를 알고 지내왔던 터.

        내 아내, 차 마리아님은 그제야 호미로 그것들이 들어선 고랑의 잡초를 베려고 들었다. 무식한... 그녀는 나이 70이 되어도 농사의 기본인‘생력(省力)’의 개념을 모른다. 생력이란, ‘힘[力]’을 더는[省]’ 걸 이른다. 그런 연유로 늘 싸운다. 나는, 숙련된 나는 왜낫을 연마숫돌에, 수시로 갈아[練磨], 그 토란 순들 다치지 않게, 잡초를 베었다. 토란이 ‘쑥쑥’ 자라면, 그 밑 잡초는 치이어 끝.

        다시 농막 창밖 토란들. 그것들은 마치 뽐내듯 뒤집힌 우산, 즉 잎들을 흔들어댄다. 더러더러 폭우로 내리는 빗방울을 이리저리 흔들어 털어버린다.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어 물을 털 듯. 여느 작물들의 강우대처법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들은 즐긴다. 본디 물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그 동안 때를 기다린 게다. 그렇게 ‘탈탈’ 터는 빗물이, 자신들의 자양분이라는 걸 아는 듯싶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수필작가인 나는 이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아,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겠구나. 노자(老子)의 사상 가운데에서 ‘유능제강(柔能制剛)’. 즉,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토란이야말로 연(蓮)과 마찬가지로, 저렇듯 ‘뒤집힌 우산’을 쓰고, 세상이치를 깨닫는 식물이리니! 이 수필작가 윤근택은 32세 때에 ‘(어머니의 뒤집힌) 우산’을 추억하며 글 적어, 수필작가가 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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