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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빠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40년여 수필작품을 창작해온 나. 나름대로 문장이론을 정립하여 편편 일정 규범에 맞춰 글을 적어왔노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젠 그 정형(定型)에 나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해서, 이번 이야기는 ‘카오스(chaos)’다. 혼돈이다. 뒤죽박죽이다. 하더라도, 애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카오스의 글을 읽으시는 동안 ‘코스모스(cosmos)’,곧 ‘하나의 질서로운 일체로서 우주’로 길들어져 있음을 알아차리시면 참 좋겠다.
자, 시작이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go go씽씽’이다.
지금은 살을 에는 엄동설한. 산속 외딴 농막.어디론가 떠나간 그들이 그립다. 그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시 그립다. 봄부터 차례차례 계절에 마침맞게 이 산골 숲으로 돌아와 다시 노래 들려주길 학수고대한다. 그들을 철새 내지 후조(候鳥)라고 부른다. 꾀꼬리·두견이·검은등뻐꾸기·노랑할미새·쏙독새·휘파람새·호반새·흰눈썹황금새·큰유리새... 호랑지빠귀·되지빠귀.
사실 산새들을 텃새·철새·나그네새로 대분류하고 있는데, 나는 나이 70을 목전에 두고서야 인터넷을 통해, 평소 이웃인 그들의 몸매와 노랫소리와 습성을 차례차례 익힐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몸매와 목소리도 짝지어 익힐 수 있었다. 이는 행운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환히 밝혀준... . 인터넷, 당신이야말로, 일찍이 ‘데비 분(Debby Boone,1956~,미국)’이 노래한 ‘You light up my life’다.
산새들과 관련한 노래라면, 제주도 민요인 ‘너영나영’이 으뜸일 테지. ‘너영나영’은 경상도말로 풀이하면 ‘니캉내캉’일 테고, 이는 다시‘너랑나랑’이란 뜻일 테지. 하여간, 그 유명한 노래 한 소절은 이렇다.
‘(상략)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하략)’
정말 새들의 지저귐은 울음일까에 관한 사항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한편, 우리나라 최초 서정시로 알려진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黃鳥歌)’. 왕은 시앗싸움 끝에, 자기 고국 한(漢)으로 돌아가버린 후실 ‘치희(雉姬)’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翩翩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기원전 17년에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은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셈. 왕이 노래한 황조(黃鳥)는 바로 여름철새인 꾀꼬리. 그렇다면 왕은 치희를 달랠 길 없어, 여름날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꾀꼬리 한 쌍의 대화를(?), 정말로 관심있게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최근에야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알게 된 사항이지만, 꾀꼬리는 8개 각각 다른 목소리를 지녔단다. 사실 나는 그들 꾀꼬리를 골려줄 요량으로, 농사를 하면서 휘파람으로 흉내를 잘 내는 편. 그러면 어느 나뭇가지에 앉은 한 꾀꼬리는 마치 자기 짝을 찾은 듯, 유사한 대꾸를 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그들의 언어는 딱 여덟 종류이면 만족인 셈. 감히 내가 추측컨대, 그 여덟 종류의 대화체 문장은 이런 것들일 거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1. 너, 어디 있니?
2. 밥 먹 었 니(‘먹었니’를 스타카토로)?
3. 에이, 그건 아니야!
4. 너 에미 코 꿰 달아라(지난날 내 어머니가 꾀꼬리 노랫소리를 이렇게 풀이했다).
5. ‘니캉내캉! 니캉내캉! 니캉내캉!’
6. ‘휴!(너네 부모 몰래 물레방앗간으로!)’
7. 여긴 잡아먹을 벌레가 별로다?
8. 나, 곧 니한테 날아갈 게.
우리네가 흔히 쓰는,‘목소리가 꾀꼬리 같다’라는 말은 꾀꼬리가 쌍을 이루지 않고, 각각 다른 나뭇가지에 앉아, 여덟 종류의 특유한 말로 소통하는 데에서 기인. 특이한 것은, 그들의 의사소통의 목소리는 늘‘스타카토’로 이뤄져 있더라는 거.
자, 이제 미뤄뒀던 이야기 들려드릴 차례. 위에 ‘아침에 우는 새는’이란 제주도 민요의 노랫말이 엉터리라는 것부터. 사실 새들의 음향은 그들만의 고유한 의사소통일 따름. 결코 ‘울음’이 아니라는 사실. 고등동물이라고, 문자를 지녔다고 뻐기는 우리네 인간들. 하지만, 새들도 저마다 의사소통의 말[언어]이 있다는 것을. 다만, 그들은 이런저런 구질구질한 언어 대신, 아주 단조로운 언어만 지녔을 뿐. 아주 뻔한 이야기, 언제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 대신, 아주 단조로운 언어로도 서로 소통한다는 것을. 위에 예시한 꾀꼬리들은 적어도 여덟 종류의 언어를 쓰고 있는데... .
하여간, 꾀꼬리는 여덟 종류 각기 다른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것은 ‘애인 구함’일 수도 있고, ‘경계 경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 내가 최근에 새롭게 안 한 무리의 철새의 목소리. 바로 ‘되지빠귀’의 노랫소리다. 우리나라에서 10월까지 머무른다는 나그네새인 그들. 그들은 하루 종일 쉼 없이 재잘대는 새로 알려져 있다. 나는 지지난 달인 지난 해 10월까지 ‘대구혁신도시’에 자리한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딱 7개월 근무한 바 있다. 그 아파트는 숫제 산속에 자리해 있어, 온갖 산새들 지저귐을 들을 수 있었는데... . 새벽마다 손수레를 끌고 101동,102동 ‘공동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가곤 했다. 화단 앙상한 ‘마가목’ 가지에 앉아 쉼 없이 지저귀던 새. 그 새는 날마다 그렇게 마가목 나뭇가지에서 경비원인 나한테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젠 그곳 아파트를 떠나 또 다른 아파트 경비실에 와 있지만... . ‘숲속의 성악가’ 혹은 ‘숲속의 가수’로 알려진 되지빠귀. 그들은 나그네새로 알려져 있다. 더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그곳을 떠난 나. 그 녀석도 그 나뭇가지를 떠났을는지 모르겠다.
‘되지빠귀’, 그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다. ‘호랑지빠귀’는 깃털이 호랑이의 털 같이 얼룩덜룩하여 생겨진 이름이고, ‘전설의 고향’ 따위에 무덤가에서, 비오는 날, “휘!휘!” 소리내어 ‘귀신새’로 부르는데, ‘되지빠귀’의 유래는 참말로 모르겠다. 다만, ‘되지빠귀’는 종일 무어라무어라 노래부른다는 거.
아, 그러고 보니, 짚이는 게 하나 딱 있다. ‘되지빠귀’ 는 ‘되질(뒈질)’ 때까지 노래만 부르는 지빠귀’에서 온 말은 아닐까 하고서. 그렇다면 그렇다면 수필작가인 나야말로, 40년여 5,000여 편 수필작품을 적어온 나야말로... .
해서, 나는 ‘되지빠귀’. 결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나그네새 ‘되지빠귀’. 나는 죽는 그날까지 목청껏 노래부르리. 글 적으리.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