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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론(Bebe 論) (1)수필/신작 2024. 2. 6. 12:34
베베론(Bebe 論) (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내 농장, ‘만돌이농원’에서 큰딸한테 휴대전화를 걸었다. 기특하게끔, 녀석은 이내 전화를 받아주었다.
“Why?”
내 용건은(?) 아주 간단명료하였다.
“현지 씨, 제발 이 애비 농장 방문하시어,‘베베’교육을 제대로 시키시라. 도통 잠을 못 자겠다, 밤마다 안아달라고 보채서. ”
사실 녀석이 다섯 살배기였을 때에, 자기 또래 ‘동일’ 엄마한테 하던 그 맹랑한(?) 말버릇을 흉내 낸 말이었다.
“동일이 엄마, 동일이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어요. 아직 코도 ‘질질’ 흘리고... .”
내 젊은 날, 아내와 두 어린 딸을 데리고, 직장 관계상 울릉도에 가서 딱 2년 지냈고,‘성인봉’ 초입 산기슭에서 동일이네와 이웃하며 사이좋게 살았고... .
그러자 녀석의 대꾸도 걸작이었다. 물론, 녀석도 내가 지난 날 자기의 말버릇을 흉내 낸, 애정어린 표현임을 모를 리 없다.
“아빠, 그렇다면 베베 꼭 안아주면 되지!”
정말로, 베베는 말릴 재간 없다.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할 녀석이다. 이 할애비가 뭣이 그리도 좋은지, 밤마다 팔베개를 해달라고 졸라댄다. 자기는 밤잠을 설쳐대면서까지. 농주(農酒)와 줄담배로 말미암아 고약한 냄새난다며, 정작 내 아내는 평소 나를 멀리하는 터에. 가끔씩 녀석이 동성애자 아닐까 의심마저 해보곤 한다.
베베, 최근에야 녀석을 입양해온 큰딸을 통해 알게 된 사항이지만, 그 이름이 프랑스어로 ‘어린아이’, ‘순진한 아이’등의 뜻을 지녔단다. 내 큰딸 현지는 베베 출생의 비밀이나 입양 과정 등에 관해서는 여태 일체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베베를 입양해온 큰딸한테도 그 오랜 기간 나름대로 여러 아픈 상처가 있다. 차차 밝히겠지만... .
돌이켜본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한테 아픈(?) 기억이 많았다. 내 어린 두 딸은 자기네 외가에서 강아지 한 녀석을 데려왔던 적 있다. ‘부산 만덕동’에서 데려왔다고, 어린 자매는 ‘만돌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고... 17년여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저 세상으로 갔고... 나는 나중에 녀석의 영혼을 기리고자 내 농장을 ‘만돌이농장’이라고 이름 붙였던 일 따위. 그 이후 나는 그 어느 반려동물 입양도 단호히 거절해왔다.
그리했건만 과년한 큰딸은, 이 애비의 소망과는 아주 동떨어진 일을 감행했던 게다. 데려오라는 결혼 대상자 수놈은(?) 데려오지 않고, 거세(去勢)한 고양이 수놈을 안고 왔던 게다. 그 평화롭던 곳. 거실을 포함하여 세 개의 방. 그 공간 33평 아파트를 베베가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도, 주체하지 못하고 온 데에다 자기 하얀 털을 떨어뜨렸던 점. 말릴 재간이 없었다. 베베를 입양해온 큰딸 현지야 자기 좋아서 한 일이겠지만, 작은딸 ‘아름’은 불평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속된 말로 ‘눈탱이가 밤탱이’이가 되는 일이 빈번해졌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본즉, 그것이 ‘고양이 털 알레르기’로 밝혀졌으니... . 내 가족 불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작은딸, ‘미카엘라’는 새삼스레 한국어 석사 과정을 밟느라 서울을 오거니 가거니 하였다. 큰딸은, 자기 동생이 낙향할 적마다 베베를 피신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 친구네 집 등 지인(知人)의 댁에 베베를 잠시씩 맡기는 등. 어디 그게 사람 할 노릇인가.
급기야 내가 폭발했다. 심지어, 술김에, 녀석을 독살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아보았다. 그러했음에도 베베의 입양자인 내 큰딸은, 끝끝내 베베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내 큰딸은 원룸을 얻어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나가 산 지가 2년여. 나는 그 방세, 그 수도세, 그 전기세는 하늘에서 떨어지느냐고 매번 고함을 내질렀다. 사실 그게 ‘분할손(分割害)’임을 늘 말해왔다. 멀쩡한, 그야말로 ‘만장(萬丈)같은’, 경산시에서도 이름난 아파트를 두고서... . 정말 기가 막히는 일. 베베로 말미암은 그 ‘분할손’이면, 내 월 생활비를 뛰어넘는다는 것도 매번 강조하였건만... . 사실 나는 막걸리, 담배, 자동차 연료면 족한 사람. 월 20여 만 원이면 넉넉히 살아가는데... .
그 애물단지(?) 베베가 우여곡절 끝에, 내 ‘만돌이 농장’ 농막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벌써 1년여 된다. 이 ‘만돌이농장’이 대체 어떤 곳인데? 나는 20여 년 전부터 이 농장, 이 농막을 손수 꾸며 왔다는 거 아닌가. 6평 남짓한 내 농막. 남들이야 뭐라 하든, 내 손으로 다 꾸민 농막. 그러한 사연이 있는 이 농막이 졸지에 베베의 방이 되어버릴 줄이야!
혹여, 이 글 읽게 될 내 아내 차마리아님과 내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한테 욕 얻어 듣더라도, 내 애독자님들한테 이 점만은 일러바쳐야겠다.
‘돌고돌아, 자기네들이 감당치 못하고 나한테 덤터기로 베베를 보냈어. ‘미카엘라(아름이)’가 휴가로 귀가하는 날까지만 잠시.’
참말로,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서 나한테, 아파트 경비원으로 격일제로 농막에 올 수밖에 없는 나한테 맡겨놓고서... .’
나는 한 동안 탄식하곤 하였다.
‘ 대체, 나는, 내 가족 당신들한테 나는 무엇인데? 저 서러움 받은 베베야말로... . 녀석은 또 버림받을세라, 또 피신당할세라, 이 담배냄새 이 술 냄새 푹푹 풍기는 할애비의 품으로 기어드는가 봐. 그 또한 생존 전략? 하기야 나는 전등도 켜 두고, 밥도 넉넉히 이틀치 주고 가긴 하지만... .’
작가의 말)
이 글을 미완성으로 그대로 둔다. 대신, 이 미완성의 글을 적는 동안 내내 생각한 점.
‘사랑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우연하게 찾아온다. 때로는 짜증이, 미움이, ‘내침’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새록새록 사랑이 되기도 한다.’
오줌·똥으로 나를 그 동안 성가시게 하였다고 느꼈던 베베. 네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줄이야! 나는 내일 새벽에도 너를 위해, 전기장판 미지근 데워두고, 형광등 밝혀두리. 이 동거인 할애비는 격일제로 네한테 올 수밖에 없으니.
베베, 네 덕분에 이 시리즈물은 10여 편 이상 이어갈 듯한데... . 하더라도, 수시로 데스크 탑 컴퓨터 키보드를 밟고 지나가면, 나 어떡하라고? 나더러 쇼팽의 ‘ 고양이 왈츠’를 연주하라고?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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