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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나리
    수필/신작 2014. 8. 6. 06:19

                             참나리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분명코,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개나리가 아니라 참나리. 우리네 야생화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참나리도 누군가의 정성스런 손길 없이도 길섶 등에서 여름날 제멋에 겨워 수수하게 피어난다. 키가 무려 1.5미터씩이나 되어 너무 멀쑥한데다가 밭 가장자리 등을 함부로 차지하기에, 나는 보이는 족족 녀석들을 뽑거나 베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도 저렇듯 대를 이어온다. 겨우내 멧돼지들이,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참나리 군락(?)을 습격하여 알뿌리를 죄다 캐먹고 간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앞밭에 심어둔 이십 여 종 서양백합과 십 여 종 튤립도 멧돼지들이 알뿌리를 훔쳐 캐먹고 갔다. 그러나 참나리를 비롯한 몇몇 종류의 서양백합과 튤립은 여러 개의 알뿌리로 겨울을 내는 터라, ()가 끊기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 가운데서도 야생화인 참나리의 생존전략은 특히 대단하다. 자잘한 알뿌리를 퍽이나 많이 맺어 후사(後嗣)를 도모하기도 하지만, 줄기의 잎겨드랑이마다 팥알만한 주아(珠芽;씨눈)를 달고 있다. 그 주아가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새로운 개체가 된다. 사실 참나리는 꽃을 피워도 결실을 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참나리는 대안(代案)으로 주아를 맺는다. 하여간, 참나리는 주아와 알뿌리 양자(兩者)로 확실한 대 이음을 하게 된다. 열대지방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강 어귀에 자라는 맹그로브(mangrove) 나무는 가지에다 이른바, 태생종자(胎生種子)라 일컬어지는 어린 싹을 제법 키운 후 물에다 떨어뜨린다고 하던데, 참나리의 번식방법도 그에 못지 않게 특이하다.

    나한테는 백합(百合)이란 이름보다도, lily라는 이름보다도 나리라는 이름이 정겹게 들린다. 나리 가운데도 참나리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든다. 여기서 잠깐. 百合에 관해서는 대학시절 노교수님(老敎授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전설 한 자락이 다시 떠오른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어떤 젊은이가 산중에서 목을 매어 자살코자 새끼를 꼬며 슬프게 울고 있었다. 그때 흰 수염을 한 도사(道師)가 나타났다. 도사가 영문을 물었다. 이에, 젊은이는 온갖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고 한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해 부인으로부터 소박맞아 더 이상 살 게 뭐 있냐는 것이었다. 도사는 젊은이한테 일렀다.

    여보시오, 젊은이! 한번만 더 속아 보시오.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좌측으로 몇 걸음, 또 위로 몇 걸음만 걷다가 보면 커다란 바위가 나올 것이오. 그 바윗돌 아래 꽃이 한 그루 피어있을 거요. 그 꽃뿌리를 달여먹으면 일일백합(一日百合)할 것이외다. 도사는 사라지고, 젊은이는 그대로 실행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백합의 알뿌리가 양기(陽氣)가 아닌 음기(陰氣)를 돋우는 약제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그 교수님이 들려준 전설이 왠지 그럴싸하다. 百合 은 언제고 一日百合 의 준말처럼 여겨진다. 일설에 의하면, 백합의 알뿌리는 양파처럼 생긴 백 개 가량의 비늘줄기로 싸여 있어 百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나리lily라는 영어식 이름의 발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새삼 흥미롭다.

          하고많은 나리 종류 가운데 하필이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나리를 참나리라고 부르는 데는 무슨 곡절이 더 있지 않겠나. 단지, 주아를 잎 겨드랑이에 달아 번식력이 왕성한 것 말고도 말이다. 살펴본즉, 우리네 선조들은 참나리의 알뿌리를 쪄서 단자를 만들어 먹거나 가루를 내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 먹을 수 있기에 참꽃이듯 -을 붙인 모양이다. 굳이, -을 붙인 이유를 하나 더 보탠다면, 여러 종류의 나리 가운데서도 맨 나중에 꽃피운 점. 참나리의 특징은, 꽃이파리 안쪽에 짙은 자색의 반점(斑點)이 가득 있다는 점이다.

          참나리 말고도 나리가 참으로 많다. 하늘을 향해 피면 하늘 나리, 땅을 내려다 보며 피면 땅나리,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어정쩡한 곳 중간을 바라보며 피고 잎에 반점이 중간쯤만 있으면 중나리,중나리와 비슷하나 전체에 잿빛 털이 돋으면 털중나리, 잎이 줄기를 따라 360도 균제롭게 돌려나면 말나리, 말나리라도 하늘을 쳐다보며 피면 하늘말나리, 말나리라도 울릉도 등 섬에서 자라면 섬말나리, 우리나라 특산 나리이면서 꽃잎에 있는 반점이 뻐꾸기의 목깃털에 난 무늬와 닮았으면 뻐국나리, 잎이 솔잎처럼 가늘면 멸종위기로 보호를 받는 솔나리.

           사실 나는 내 아내와 달리, 여유와 낭만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는 야생화 등을 농장의 노는 땅에 군데군데 심거나 자생하는 그것들을 보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비해 나는 생계수단으로,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아니 되는 짓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참나리도 멋없이 키가 큰다고 베어버리곤 하였다. 심지어 지난번엔 뜨락에 무리 지어 자라는 노루오줌을 잡초로 오인해서,제초작업을 하면서 예초기로 날려버린 적도 있는데, 농장을 방문한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거라며 어찌나 나무라던지.

          이제금 마음을 조금 바꾸어 먹고자 한다. 비록 내가 농사일로 우리 꽃에 몰입할 여유는 없을지라도, 산야에 저절로 피어나 계절 바뀜을 알려주는 그것들을 가상히 여겨야겠다는 .  사실 나는 여태껏 참나리마저도 개나리로 잘못 알고 지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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