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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6)
    수필/음악 이야기 2015. 2. 15. 16:5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6)            

    - 시각장애를 딛고 대성한 팝페라(popera)’ 성악가-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우선, 그를 소개하기에 앞서, 그가 추구하는 음악 장르 팝페라(popera)’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독자님들께 알려드려야겠다. ‘(pop)’오페라(opera)’의 합성어로, 오페라를 팝처럼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스타일 또는 대중화한 오페라를 가리킨다. 1997<<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음악 장르로까지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팝페라 성악가로는, 이 글의 주인공을 비롯하여 세라 브라이트먼’, ‘조수미’, ‘임형주등이 있다.

           이제 슬슬 이 글 주인공에 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볼까 싶다. 그가 바로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이탈리아 피사, 1958~)’. 그는 이탈리아 피사1958년 이탈리아의 피사 주() 근처 라자티코의 농장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포도주와 농기구를 판매하는 가정인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해 열정을 갖고 있었다. 6세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고, 플루트· 트럼펫 등 관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12세가 되던 해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던 중 사고로 머리에 큰 충격을 입게 되는데,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녹내장과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만 것이다. 그러했음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시력을 잃는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악기뿐만 아니라 노래 부르는 것에서도 재능을 발하게 된다. 14세 때에 나폴리 민요인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불러서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보첼리는 피사 대학교로 진학하여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바(bar)에서 상연을 하는 등 법학도로 공부하면서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법학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졸업한 후 법정 변호사로 1년여 일했다. 그는 1993추케로라는 락커의 공연에서 ‘Nessun Dorma’를 솔로로 불렀고, 같은 해에 밀라노에서 슈거 뮤직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다.

           19942, ‘산레모 가요제의 경연대회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고,자신의 데뷔앨범 ‘Il mare calmo della sera’는 발매와 동시에 이탈리아 탑 10앨범에 오르며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96년은 그에게 정말 중요한 한 해였는데, 영국의 소프라노이자 팝페라 가수인 세라 브라이트먼과 듀엣으로 ‘Time to Say Goodbye’를 불렀고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3백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그는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하게 한다. ‘Time to Say Goodbye’는 본디 그의 제 1집 앨범 Bocelli의 수록곡인 ‘Con te partiro’세라 브라이트먼이 듣고서, ‘Time to Say Goodbye’으로 바꾼 것이다. ‘세라 브라이트먼은 독일의 라이트헤비급 복싱선수였던 헨리 마스케의 은퇴전을 위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리고 보첼리와 듀엣으로 녹음하였다.

           또한, ‘Time to Say Goodbye’는 각국의 유명 가수들과 보첼리 자신과 듀엣곡으로 번안되고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세라 브라이트먼과 듀엣 원곡은 ECHO ‘올해의 싱글을 수상하며 명곡으로 뽑히게 되었다. 유럽 전역에서 인기와 명성을 얻은 그는 1998년 미국에서 콘서트를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같은 해에 발매된 제 5집 앨범 Aria - The Opera AlbumECHO 클래식 어워즈에서 최다 판매 클래식 앨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미국시장 진출 중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공연은 셀린 디온의 특집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당대 최고의 디바(diva)’ 빼어난 여류였던 셀린 디온‘The Prayer’를 듀엣으로 불렀고, 이 곡은 영화 캐멀롯의 의문OST, 또 자신의 앨범Sogno에도 수록되었다.

           1999년에 열린 56회 골든 글로브상에서 신인 가수상후보에 오를 정도로, 그는 미국시장 진출 이후 더욱 유명해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순회공연을 펼친다. 2000년도에는 42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The Prayer’로 보컬상과 최고의 남성 팝 보컬상에 후보로 오르게 된다. (이상 안드레아 보첼리 : 시련을 극복해낸 세계적인 테너, 팝페라 가수/작성자 woommusic79’에서 죄다 옮겨 옴.)

             위와 같이 죄다 옮겨다 놓고 보니, 수필작가인 내가 정작 적을 말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내 신실한 애독자들한테 전할 말이 영 없지는 않다. 흔히들 말하기를, “장애는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한 인간의 삶의 의지마저 꺾지는 못한다.”고 한다. 팝페라의 창시자나 진배 없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보여준 그 인간승리에 찬사를 보낸다. 사실 <<史記>>를 적은 사마천(司馬遷)도 스스로 궁형(宮刑)을 자처하여 남자로서 구실을 못하는 상태에서 그처럼 위대한 작품을 빚었다지 않은가. 굳이 유명 예술가만을 예로 들 것까지도 없다. SBS의 프로그램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도 이따금씩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거둔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어 우리네 가슴을 뜨겁게 달구곤 한다.   

            또 하나 빠뜨릴 뻔했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가 전통적인 오페라나 팝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버무려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열었다는 사실.

            끝으로,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 수필작가들께, 수필작가 지망생들께 권하노니, 시간이 없다는 등 스스로 작업환경을 만들지 않고 핑계를 대거나 게으름을 에둘러 말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 그리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작품 적어대는 길만이 답이라는 거.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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