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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4)수필/음악 이야기 2015. 2. 8. 02:53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4)
- 자기 조국의 고액권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진 작곡가 -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그 어떤 위대한 작곡가라도 그와 같은 영광을 누린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기 조국의 고액권 지폐에, 앞면에는 얼굴 그림이, 뒷면에는 지휘봉을 잡은 그의 생전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마디로,그가 국민적 우러름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그 고액권 지폐는, 그가 72년 동안 살다가(1887년~1959년) 이 세상을 떠난 지 27년, 28년이 지난 1987년과 1988년에 두 차례, 자기 조국의 중앙은행인 ‘브라질 은행’에서 발행되었다. 그 나라 화폐인 ‘헤알(Real)’에 ‘500 quinhentos cruzados’라고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 그가 대체 누굴까? 바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최초 브라질 음악가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Heitor Villa Lobos, 1887~1959)’다. 외래어 표기방식이 바뀌기 이전에는 ‘빌라 로보스’로 알려졌던 인물.
그는 담배, 당구, 영화를 좋아했으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평생토록 정신적 지주였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이하 ’바흐‘라고 함.)’와 함께 살다가 간 음악인이다. 그는 바흐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 세계 각국의 민요와도 잘 어울리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악의 원천이다.”
사실 거의 모든 이들이 바흐의 음악세계를 그렇게들 말한다. 달리 말해, 바흐의 음악은 지구상의 음악적 토양에다 자양분을 제공하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라는 거.
그의 부친은 스페인에서 이민한 도서관 사서이자 아마투어 음악가였는데, 어린 아들에게 첼로를 가르치게 된다. 그랬던 그에게 불운이 닥치게 된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부친이 타계하자, 그의 홀어머니는 음악을 관두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그는 18세 어린 나이에 가출하여 방랑음악인이 되고 만다. 이리저리 다니며 첼로와 기타에 유행가를 실어 연주하는, 길거리 음악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음악방랑은 그의 음악세계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민속음악을 자신의 곡에다 흡수하게 되었으니. 사실 그는 14세 때부터 작곡을 하였지만, 정통 클래식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클래식을 공부하였다. 그처럼 음악방랑을 떠났던 그가 ‘리우 데 자네이루’로 돌아와 국립음악원에 등록했지만, 이내 그만 두게 된다. 그는 그때 일을 술회한 바 있다.
“대학은 거기에 한 발을 내미는 순간, 최악으로 변하게 되는 곳이다.”
그 말은 곧 대학에서 배운 것은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는 전혀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 아니, 걸림돌이 되었다는 뜻이렷다.
그렇게 학업을 포기한 대신, 그는 북부 브라질 ‘바이아’로 떠나 그곳에서 3년간 음악순례를 하게 된다. 그는 그곳을 돌며 아프리카 계통의 브라질 음악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더불어 방대한 분량의 악보를 챙겨 ‘리우 데 자네이루’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한편, 그는 바흐를 비롯하여 바그너, 푸치니 등에 이르기까지 꽤나 많은 작곡가들을 연구하게 된다. 특히 그들 가운데서도 바흐의 음악에 심취한다.
1918년,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 그가 31세 되던 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 마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폴란드, 1887~1982)이 브라질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때 ’로보스‘는 동갑내기인 ’루빈스타인‘한테 직접적으로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무시하는 말‘을 하게 된다. 며칠 후 우연히 길에서 산책중인 루빈스타인과 마주쳐 그에게, “진짜 브라질 음악을 들려주겠소.” 하였다. 그러고서는 즉석에서 첼로를 연주하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일 루빈스타인은 1919년 파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세계를 돌며 빌라 로보스의 음악세계를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그에게 루빈스타인은 은인 가운데서도 은인임에 틀림없다. 그의 진짜 은인은 바흐였지만.
이제부터 그의 음악세계에 관해, 내가 마치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학생마냥, 많은 음악 평론가 등의 글을 토대로 두서없이 요약하면 대체로 이러하다. 바흐 및 프랑스 작곡가들, 바그너 양식에 입각하여 여러 편의 오페라, 발레, 교양곡, 협주곡, 교향 모음곡, 독주곡 등을 두루 적었다. 실로, 다작(多作)의 작곡가였다. 그의 양식은 브라질 민속 타악기들과 토속리듬의 독특한 기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브라질 음악가다. 그는 “민요, 그것은 나입니다.‘하고 말한다. 그는, ”나는 토속문화를 ’사용‘한 적이 없다. 내가 바로 토속문화다.’라고 말한다. 그가 만든 음악은 아마존과 같은 원시 부족들로부터 얻은 영감에 기초한 게 많다. 재즈처럼 여러 가지 ‘문화적 충돌이 만든, 원주민 브라질인이 아닌 브라질인들의 토속음악인 ’쇼로(Shoros)‘에서부터 시작하고 발전하였다. 그들 토속음악 ’쇼로(Shoros)‘가 ’재즈‘와 비슷한 탄생배경을 지닌 음악이지만, ’쇼로‘는 ’빌라 로보스‘와 같은 몇몇 전문 음악가들 손에서 완성되었다는 게 ’재즈‘와 다른 점이다. 쇼로는 재즈보다 부드러우며, 조금 더 초연한 듯하다. 쇼로 음악은 남미의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우울함이 섞인 열정을 품고 있다.
뒤늦게 고백하건대, 사실 이밖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메모하여 공부한 자료만 하여도 A4용지로 20장은 족히 된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치고, 진짜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더 이상 글이 늘어지기 전에 밝혀야겠다. 나는 엊그제 밤 내내 ‘뉴 에이지 음악 90곡’을 연속듣기 하다가, 그의 곡 ‘브라질풍의 바흐 No 5(아리아)’를 또 다시 들었다는 거 아닌가. 해서, 지금부터는 그 곡에 집중해서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 소개하려 한다.
‘브라질풍의 바흐 No 5(Bachianas Brasileiras No.5,아리아)’. 그의 그 많은 작품 1500여 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곡이다. 이미 이 글 두 번째 단락에서 복선(伏線)을 깔아두었지만, 그는 살아생전 늘 바흐를 존경했다고 한다. 헨델과 더불어 바로크 음악의 쌍벽(雙璧)을 이뤘던 바흐를 그가 왜 그토록 존경했을까? 바흐의 형식인 ‘대위법(對位法)’을 따르고자 했던 것 같다. 그의 자세는 대위법 등 음악 형식에 담겨진 선율과 리듬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바로크의 형식에다 브라질에서 가장 민속적 소재를 담아 매우 독창적인 곡을 적었다. 그는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위에서 소개한 ‘No.5(아리아)’를 포함해 ‘브라질풍의 바흐’를 총 9곡 적었다. 바흐 음악에 심취하여 원색적이고 소박한 브라질 음악을 범세계성을 지닌 바흐의 고전 음악적 분위기를 통해 재편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사실 맥동하는 리듬과 화음 전개는 바흐를 암시하나 그 정신은 브라질이라는 게 중론(衆論)이다.
‘브라질풍의 바흐 No.5’에 관해서는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보자. 이 곡은 소프라노와 8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곡이지만, 여러 버전으로 편곡이 되었다. 이 곡은 두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제 1악장은 1938년에 적은 것으로, 브라질 여류시인이자 성악가인 ‘루트 코레아’의 시에다 곡을 붙인 것이다. 그 아리아의 포르투갈어 버전은 이렇다.
‘저녁, 반쯤 투명한 장밋빛 구름, 천천히 나른하게 아름다운 허공을 가로지른다!/ 달은, 영혼이 아름답기를 원하는 자신을 돋보이게 꿈결같이 준비하는 처녀같이 조심스레 수평선 위에 떠오른다./그녀는 하늘, 땅, 모든 자연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그녀는 새의 슬픈 울음을 침묵시킨다. 그리고 바다는 그녀의 모든 보물을 비춘다./ 달은 살며시 웃음과 울음의 잔인한 갈망에 눈을 뜬다./ 저녁, 반쯤 투명한 장밋빛 구름, 천천히 나른하게 아름다운 허공을 가로지른다.//’
핀란드 음악학자 ‘에로 타라스티’는 ‘블랙박스’라고 표현했다. 분석해기 어려운 매력과 치밀한 구성력을 두고 한 말이다. 제 2악장은 1945년에 적은 것으로, 시인이자 친구인 ‘마노엘 반다리아’가 쓴 시에다 곡을 붙인 것이다. ‘마르테로’란 무곡(舞曲)이다.
어느 국내 음악평론가는 ‘브라질풍의 바흐 No.5’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슬프지만 슬프다고 말하기 어렵다. 흥겹지만 흥겹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의 음악은, 남미 음악은 그 모든 것들을 절묘하게 균형 잡고 있다.”
또 어느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독특한 구성의 음악은 정확하게 남미를 느끼게 한다. 그건 (브라질을 식민 지배했던) 포르투갈도, (바흐의 조국)독일도, (원주민이 사는) 아마존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남미의 소리다. 약간 우울함과 뜨거운 열정이 만나서 춤추게 만드는 남미의 음악. 그의 음악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의 조국 브라질의 어느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 빌라 로보스가 쓴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음악, 브라질의 음악,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음악인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애독자 여러분께서는 빌라 로보스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그 곡,‘브라질풍의 바흐 No.5’이 대체 어떤 곡인지 궁금하실는지 모르겠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열연했던 영화 <<팔월의 크리스마스>>에 OST로 쓰였던 곡이다.
한편, 그는 1920년에 12개의 ‘Choros(쇼로)’라는 이름을 붙여 작품을 따로 적었는데, 이미 위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브라질 토속음악을 일컫는다. 더해서, 포르투갈어로 ‘불만’, ‘죽는 소리’이니, 어떤 유형의 음악인지 내 신실한 독자님들도 미루어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그가 적은 ‘Choros(쇼로)’란 작품은 분위기와 내용이 다양하고, 악기도 독주 기타에서부터 ‘풀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 특징이다. 물론, ‘브라질풍의 바흐’ 9곡도 모두 ‘Choros(쇼로)’에 해당한다.
이제 정말 두서없는 이야기 총정리해야겠다. 빌라 로보스는 오랜 기간 음악순례를 행했고, 토속음악을 수집 연구했던 이다. 거기에 만족치 않고 바흐를 비롯한 그 많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섭렵하였다. 음악대학수학(修學)이라는 그 전통을 깼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야말로 비빔밥을 만들 듯 버무려서(클로스오버, 문화적 융합)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쳤다. 어느 평론가의 말 그대로, ‘남미의 정서를 기조(基調)로 한 새로운 전통의 창시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게을러터진 대한민국 현존 수필작가인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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