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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9)
    수필/음악 이야기 2015. 2. 22. 06:4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9)            

                            - 일본에 귀화(歸化)한 프랑스 출신 기타리스트-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그는 프랑스 출신이면서도, 어떠한 계기로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본이 자신의 음악적 출세를 도와준 데 대한 보은(報恩)으로 그처럼 귀화까지 하게 되었다는데... . 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때는 1965,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일 적. 마침 일본의 수입영화사 닙폰 헤랄드에서는 그리스의 영화, <<The Red Lantern(’紅燈街‘, 원제는 라브리안 바닷가’, 일본 번역 안개 낀 밤의 데이트등으로 두루 알려짐.)>>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관계자들은 그 영화의 타이틀곡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여겼다. 한마디로,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글 주인공의 기타곡을 바꾸어 삽입하게 되는데, 영화는 물론 그의 음악인 ‘La Playa(’라 프라야‘, ’해변이란 뜻임, 그 번역된 영화 이름을 따서 안개 낀 밤의 데이트라고 널리 알려져 있음.)조차 대히트를 하게 되었다. 그랬던 그의 영화 삽입곡은 자기 조국 프랑스로 건너가 다시 대히트를 하면서, 프랑스로부터 커다란 음악상까지 받게 된다. 그야말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약관(弱冠) 20세에 불과했으며, 그 길로 팔려나간 디스크가 졸지에 150만장에 이르게 된다.

            , 이쯤 되면 그가 일본에 보은을 아니 할 수 없었을 게 아닌가. 그는 해마다 일본으로 가서 연주회를 갖는 등 활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패션모델 여성과 열애하게 된다. 그러고서는 1964년에 그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심지어 2세까지 얻게 된다. 당시 일본법은 양친 가운데 아버지가 외국인인 경우, 그 아버지 나라의 국적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는데, 무려 30만에 달하는 그의 팬들의 청원으로, 그의 2세는일본 국적까지 취득했다니, 음악의 위력이 얼마나 크냐고! 사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각종 자료를 챙기기 직전까지만 하여도 첫째 단락과 이 단락에 쓰인 내용을 모르고 지냈다. 해서, 늘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 빼어난 뮤지션이 지진과 화산이 잦은 그 나라, 일본이 뭣이 그리 좋다고 귀화까지 했어? 자신의 정체성은?’

            이만치 뜸을 들였으니,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이 글 주인공에 관해 화끈하게(?) 소개해 드려야겠다. 그가 바로 끌로드 치아리(Claude Ciari, 프랑스 태생, 일본 귀화, 1944~). 그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관광도시 니스(Nice)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는 뮤지션들과 달리, 유년시절 그다지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러했는데, 교외(郊外)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서 연주활동을 하던 그의 백부(伯父)의 영향으로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11세가 되던 해, 그의 백부는 인도여행을 다녀오면서 그에게 기타 한 대를 선물로 사다주었다. 그때부터 이꼬맹이는 학교공부를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면서 기타 연주에만 빠져 들었다. ’아니 봐도 비디오이니, 그의 양친의 속을 꽤나 썩였을 법. 13세가 되던 해부터는 자기 큰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른바 딴따라가 되었다.

           그가 19세가 되던 해, 드디어 솔로로 전환하여, 불후의 명곡인 위 안개 낀 밤의 데이트(’La Playa‘)를 연주하게 된다. 음악평론가들은, 안개 낀 밤의 데이트를 비롯한 그의 기타 연주곡들에 관해 이렇게들 말한다.

            그는 기타 연주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탁월한 뮤지션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영화음악, 클래식, 샹송, 칸초네, 라틴곡 등 다문화적 하모니에다 감미롭고 애수어린 멜로디를 두루 섞은 마스터 기타리스트.”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음악 애호가는 이렇게도 적어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니스(Nice)의 평화롭고 밝은 태양의 빛을 연상케 하는,따사롭고 정감이 감도는 곡들이다.”

            사실 내가 농부 수필작가이며 음악 애호가이긴 하지만, 더 이상 보태서 적을 처지가 못 된다. , 그는 독특한 어쿠스틱(acoustic; ‘전자음향에 대비되는, 악기 자체의 멜로디를 중시하는의 개념임.) 기타(guitar)‘를 구사한다고 요약할 수는 있다.

            여담인데, 내가 이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시리즈에 이번엔 끌로드 치아리를 쓰게 된 이유가 따로 있다. 일전, 부산에 살며, 대학 동기생이고, 서양화를 전공했던 여류화가이며, 중고등학교 미술교사였던 이 아무개’. 실은, 학창시절 나는 그를 통해 클래식음악에 맛 들여져 있었으며, 그를 짝사랑하다시피 하였다. 그랬던 그가 내게 불쑥 나타나 원고 더미를 내밀었다. 혼자서 유럽 10개국을 여행했노라며, 기행문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겠다고 하였다. 자기 딴에 유명 수필가라고 믿는 나더러 원고 교정을 의뢰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암스테르담기행에 관한 사항도 적혀 있었다. 그것이 이 글의 모티브였다. 나는 그에게, “ ‘물 위의 암스테르담(Amsterdam sur)’ 어떻던가요? ” 했더니, 어리둥절해 했다. 이에, 이어지는 나의 대꾸가 가관(可觀)이었다.

            이 선생님, 암스테르담에서는 끌로드 치아리물 위의 암스테르담이 곧바로 오버랩 되었어야 했지요.”

           진짜로, 이 글 주인공인 끌로드 치아리의 그 많은 명연주곡 가운데서도, 내가 좋아하는 명연주곡 가운데서도, ‘물 위의 암스테르담은 빼놓을 수 없다. 1977아그네스 바르다라는 감독의 프랑스 영화, <<노래하는 여인, 노래하지 않는 여인>>에 쓰였던 영화음악이라는데...

           이제 두서없는 이야기를 슬슬 정리해 보아야겠다. 그의 연주곡은 국내 방송 각종 음악프로그램의 단골 리퀘스트로 쓰인 바 있다. 시그널 뮤직으로도 자주 쓰였다. 나는 그의 연주곡들 어느 한 가지인들 좋아하지 않는 곡이 없지만, ‘첫 발자국 (Le premier pas)’, ‘나부코의 기타(Nabucco’s Guitar)‘, ’ 솔렌자라(Solenzara; ‘이탈리아 반도 서쪽 해상에 자리한 섬의 해안지역일컬음.)‘, ’엘 빔보(El Bimbo; ‘새로운 형태의 춤이란 뜻임, ‘올리브의 목걸이로도 알려짐.) 등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나의 애독자들께서도 홍수처럼 밀려오는 여러 유형의 음악에서 잠시 벗어나, 짬을 내어 추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그의 연주곡을 다시 들어보셔도 좋을 듯.

            끝으로, 이 음악 이야기 39회분을 적도록 모티브(?) 준 부산의 이 선생님한테는 따로 인사드리며, 글 맺도록 한다.

           이 선생님, 나더러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한 기행수필을 적는다고 탓하시더군요. , 훌륭한 예술품은 그냥 보고 듣고 느끼면 되는 것인데, 나처럼 괜히 분탕(粉湯)하면 감흥이 반감(半減)된다고 하시던데, 이를 어쩌죠? 그래도 적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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