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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벗, 곤줄박이수필/신작 2015. 3. 6. 00:43
농부의 벗, 곤줄박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산골농부이기도 한 나. 산속에서 살다보니까, 해마다 봄이 오는 걸 색달리 느끼곤 한다. 삼동(三冬) 내내 탁하고 갈라졌던 산새들의 목소리가 한결 청아(淸雅)해지면, 봄이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된다. 그 어린것들 가운데서 ‘꿩’을 예로 들면 이렇다. 그것들은 ‘겨우내’ 추위와 귀해진 먹이 문제로, 말 그대로 ‘겨우겨우’ 지낼 적에는 새벽에 홰에서(꿩들은 포식자들로부터 보호받고자 밤마다 나뭇가지에서 잔다고 한다.) 빈 밭으로 내릴 때에도 둔탁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해동(解冬)이 되면, 새벽마다 “꿩!꿔궝!” 자기 이름들을 맑게 외치며 풀밭에 내리곤 한다. 마치 활주로에 사뿐 내려앉는 여객기처럼. 하여간, 새봄이 되면 맑은 산새소리를 제일로 많이 자주 듣게 되는 것이 산골농부의 특권임에 틀림없다.
이번에는 내 고운 독자님들께 그 많은 산새들 가운데서도 농부의 벗인 ‘곤줄박이’를 자랑코자 한다. 사실 나는 그 새들 이름이 ‘곤줄박이’라는 걸 요 며칠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도 조류백과(鳥類百科)를 한참이나 뒤져서.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새는 18목(目) 74과(科) 537종(種)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새가 그 새 같은 걸 어찌 다 알 수 있었으리? 그러함에도 굳이 내가 그 새 이름을 알고자 했던 데는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들 종족만치나 인간을, 특히 농부 내지 나무꾼을 잘 따르는 새는 없을 듯해서.
도대체 그 동안 내가 곤줄박이네와 어떤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느냐고? 내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갈 적에 예외 없이 곤줄박이가 나타난다. 톱으로 썬 나무 등걸에, 조선낫으로 벤 나뭇가지에,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금세 날아와 재잘대곤 한다. 또, 묵정밭을 일굴 요량으로 가시덩굴을 걷어내어도 그 가시덩굴 그루터기에 날아와 재잘대곤 한다. 심지어, 과수원의 과목(果木) 전정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미리 전정한 가지에 앉는 녀석이 그 어느 산새도 아닌 곤줄박이다. 이를테면, 농부가 땀 흘려 일한 자리에는 거의 빠짐없이 나타나는 게 곤줄박이다. 참말로 그 이유를 알 길 없다. 자그마한 환경개선 내지 환경변화에도 녀석들은 그처럼 민감할 수가 없다. 단지, 농부가 덤불이나 가지 따위를 그렇게 뒤적임으로써(?) 부차적으로 생겨나거나 발견된 먹이를 쉽게 챙기려고 그러는 것 같지만은 않다. 여느 산새들은 그리 하지 않고도 먹이를 손수 잘도 구하던데 말이다. 농부인 내가 생각하기에는, 약자(弱者)인 곤줄박이들은, 인간과 너무 가까이 하기엔 뭣하더라도, 농부의 땀 흘림을 제대로 알아주는 새인 듯하다. 내 사랑하는 애독자들께서도 다음과 같이 믿으면 거의 틀림이 없다.
‘내가 나뭇가지를 베거나 덤불을 걷거나 낙엽을 그러모을 때에 맨 먼저 나타나는 새는 보나나마 곤줄박이다. 아니, 그럴 적에 맨 먼저 날아와 꽁지를 아래위로 흔들며 재잘대는 새는 시쳇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곤줄박이다.’
자, 이 쯤 해두고, 곤줄박이가 어떻게 생겨먹은 새인지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솜씨로 그림을 그려볼까 싶다. 아니, 내가 본디 게을러터진 터라, ‘다음 백과사전’에서 따다 붙이련다.
‘곤줄박이는 박새과에 딸린 텃새이다. 이마는 흰색이고 얼굴에서 목까지는 갈색을 띤 흰 띠가 있다. 날개 길이는 7~8cm이다.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딱따구리의 묵은 집이나 썩은 나무 구멍에서 산다. 알은 흰색 바탕에 연보라색과 적갈색 점이 많다. 품기 시작한 후 12~13일이면 깬다. 곤충과 나무 열매를 먹는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산다.(이상 ’다음 백과사전‘에서 따옴.)
다시 이야기하건대, 내 사랑하는 독자님들께서 들일을 할 적에, 특히 나뭇가지 등을 벨 적에 최초로 나타나는 새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곤줄박이다. 그래도 그 생김새가 궁금하거들랑, 인터넷 등을 통해 알아보시기 바란다. 사실 ‘딱새’ 라는 산새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는 그 새가 ‘곤줄박이’란 이름을 갖게 된 내력이다. ‘네이버 지식in’에서 ‘물신답변’이란 어느 네티즌이 썩 유익한 정보를 아래와 같이 제공해주고 있다.
‘곤줄박이(곤줄매기)는 아름다운 새입니다. 이마와 뺨은 흰색이고, 머리꼭대기에서 뒷목까지는 검은색의 띠가 있습니다. 등 뒤 중심 부분에는 반달 모양으로 붉은색의 점이 있고, 아랫등은 푸르스름한 회색입니다. 가슴과 배의 중앙은 노란색을 띠며, 양옆은 붉은색입니다. 짧은 부리와 단단한 다리는 검은색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띠는 곤줄박이는 아름다운 새라서 새장에 넣어 기르기도 합니다. 관상용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새라면 빛깔과 소리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이’는 무엇이 일정 장소에 박혀 있는 사람, 짐승, 물건을 나타낼 때 쓰는 접미사입니다. 그렇다면 ‘곤줄박이’는 무엇인가가 박혀 있는 새임이 분명합니다. ‘-매기’도 띠나 끈 같은 것을 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곤줄매기’는 무엇인가를 몸에 매고 있는 새임이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곤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곤줄’은 ‘곤줄박이’의 미적 특성을 생각할 때, ‘고운 줄’이 될 수 있습니다. ‘고운 줄과 고운 무늬가 박혀 있는 새’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운’이 줄어서 ‘곤’이 된 것이지요. ‘고운 줄 박힌 새’가 줄어서 ‘곤줄박이’가 된 것이겠지요.
‘곤줄’을 ‘꼬다’와 관련지어 생각해 봅니다. ‘꼬다’는 둘 이상의 줄이나 실을 한 줄이 되게 비빈다는 뜻입니다. 곤줄박이의 등뒤 날개 부분을 보면 마치 청색과 회색 실을 꼬아 놓은 듯한 알록달록한 줄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꼰 줄이 박혀 있거나 매어져 있는 새’라는 의미로 ‘꼰줄박이’, ‘꼰줄매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꼰줄’이 ‘곤줄’로 소리가 약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곤줄박이’라고 하지 않고 ‘꼰줄박이’라고 발음합니다. 꼰줄박이라는 발음에서 ‘색실로 꼬아 놓은 노끈과 같은 무늬를 가진 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곤줄’을 다른 뜻으로 생각해 봅니다. 곤줄박이는 등뒤에 ‘곤지’와 같은 붉은 점 무늬가 박혀 있습니다. 옛적에 시집가는 새색시가 이마에 찍는 붉은 점인 ‘곤지’에 대해서는 잘 아시지요? 곤줄박이의 등뒤에 새색시가 이마에 찍는 곤지와 같은 붉고 예쁜 점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붉은 곤지가 박힌(찍힌) 새’가 ‘곤지박이’로 ‘곤지박이’가 ‘곤줄박이’로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곤지와 줄(줄무늬)이 박힌 새’라는 뜻에서 ‘곤줄박이’라고 이름 지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곤지+줄+박이 ㅡ> 곤줄박이
‘곤줄박이’에 쓰인 ‘곤’은 흔히 말하는 ‘곤색(감색)’이 아닐 것입니다.‘곤색’이란 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말입니다. 곤줄박이는 일제강점기에 수입해 온 새가 아니고, 그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 살았던 새입니다. ‘곤줄박이’라는 이름도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이름일 것이니, 일본어 ‘곤색’과 관련지어 생각한다는 것은 다소 억측이 될 것입니다. (이상 ‘물신답변’의 탐구정신이 깃들여진 글임.)
산골농부인 나. 실제로, 자고 일어나면서부터 진종일 산새들의 재잘댐 속에서 일과를 보내면서도, 그것들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적도 많았다. 실제로 행복에 겨워해야 함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참말로 더 이상은 아니 될 일이다. 설령, ‘18목 74과 537종’ 한국의 모든 산새들 이름을 다는 모르더라도, 여생(餘生) 동안 그것들의 이름들만이라도 하나하나 새롭게 익혀가야겠다는 다짐. 왜? 그 귀여운 것들이야말로 진실된 나의 이웃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송광사의 어느 스님은 하루 종일 곤줄박이와 함께 지낸다는데, 거기까지는 아니 미치더라도... .
새에 대한 사랑이라면, 종씨(宗氏)인 ‘윤무부 박사’를 지나칠 수 없다. 그분은 한번 탐조(探鳥)를 하러 나서면, 몇 날 며칠 갈숲에서 지내지 않던가. 진짜 새에 관한 사랑이라면, 저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의 ‘아시시 프란체스코 성인(聖人)’을 아니 떠올릴 수가 없지. 당신은 ‘가난과 겸손과 말씀(주님의 말씀)의 성자(聖者)’로도 알려져 있다. 당신은 살아생전 새들한테까지 다음과 같이 전교(傳敎)를 하였다고 한다.
SERMON TO THE BIRDS
My little sisters, the birds, much bounden are ye unto God, your Creator, and always in every place ought ye to praise Him, for that He hath given you liberty to fly about everywhere, and hath also given you double and triple raiment; moreover He preserved your seed in the a가 of Noah, that your race might not perish out of the world; still more are ye beholden to Him for the element of the air which He hath appointed for you; beyond all this, ye sow not, nether do you reap; and God feedeth you, and giveth you the streams and fountains for your drink; the mountains and valleys for your refuge and hight trees whereon to make your nests; and because ye know not how to spin or sew, God clotheth you, you and your children; wherefore your Creator loves you much, seeing that He hath bestowed on you so many benefits; and therefore, my little sisters, beware of the sin of ingratitude, and study always to give praises unto God.
(내 작은 자매들인 새들이여, 너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냐? 너희가 마음껏 창공을 날 수 있도록 하셨고, 너희가 따듯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털옷을 지어 입히신 창조주 하느님을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찬양하라.
더욱이 너희가 멸종되지 않도록 노아의 방주에서 너희 종족을 보호하신 하느님, 그 하느님이 공중의 모든 것을 너희에게 맡기셨도다. 이것 외에도 너희가 씨 뿌리지 않고 추수하지 않았어도 너희를 먹이시고, 냇물과 샘물로 너희 목을 축이게 하시고, 골짜기로 너희 피난처를 삼게 하시고, 키 큰 나무로 숲을 만드시어 너희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너희가 길쌈하지 못하는 까닭에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입히시는 하느님, 이 세상 모든 곳에서 하느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달을지어다.
그러므로 나의 작은 자매인 새들이여, 교만과 무지의 죄를 경계하고, 항상 어떻게 하느님을 찬양할 것인가를 생각할지어다.)
두서없는 나의 글을 이 말과 함께 맺도록 하자.
‘보다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새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게 되며, 부지런한 농부일수록 곤줄박이를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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