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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실나무 전정을 마치고
    수필/신작 2015. 3. 9. 23:21

                    

                                                                       매실나무 전정(剪定)을 마치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전정(剪定)은 말 그대로 잘라서[] 정리정돈[]하는 행위이다. 아울러, ‘가지를 살려둘 것인지 자를[] 것인지   마  음속으로 굳게 정하는[]하는 일이다.

           어제는 종일, 평소 임의롭게 지내며 서로 품앗이를 하는 사이인 객지친구 OO’800여 평 매실밭에 함께 있었다. 그가 나더러 매실나무 전정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리 하였다. 사실 내가 썩 훌륭한 전정사(剪定士)도 못되는데, 그는 내 과수원 등지에서 여러 종류의 과목(果木) 등을 전정한 걸 본 바가 있어, 나를 전문가라고 치켜 올리며 그렇게 부탁한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전정 솜씨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지난해에 그가 전정을 하면서, 나무 가지 가운데 속을 시원시원 들어내어 이른바 개심형(開心形)’으로 만들어 둔 점이 맘에 들었다. 제법 수형(樹形; ‘나무 모양내기’)을 잡아두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농약도 골고루 묻게 되며, 태양광선이 속속들이 들어가게 되어 광합성을 촉진시키고, 통풍도 잘 되며, 열매 수확하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그의 지난 해 작업에 문제가 영 없었던 건 아니다. 도장지(徒長枝; 더북나기)가 너무 많은 게 흠이었다. 사실 지난해 그렇듯 웃자란 가지들은 꽃을 맺지 못하고 자양분만 축낸 셈이다. 물론, 올해도 그대로 두면 그러한 악순환이 이어진다.

           다행스레, 내가 설명을 곁들여 작업을 이어가자, 그가 군말 않고 고개를 끄덕대곤 하였다.

           자네, 이 도장지 자세히 보게나. 자네가 작년에 가지를 자르면서 원줄기의 겨드랑이까지 바짝바짝 자르지 않고, 덜렁덜렁 2~3센티미터씩 남김으로써 이처럼 도장지가 생겨난 걸세. 하여간 바짝바짝 원줄기 겨드랑이까지 잘라줘야 해. 또 그렇게 하여야만 옹이가 생겨나지 않는다네.”

           그야말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었다. 물론, 가르치는(?) 나도 눈[]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곤 하였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매실나무든 복숭아나무든 감나무든 가지를 자르고 나면, 그 절단 부위에 더북하게 새순들이 난다. 나무 입장에서는 그 자리가 상실(喪失)이며, 그 상실된 신체 부위를 속히 복원(復原)코자 하는 본능이 있을 법. 나무는 그처럼 잘려 상처 입은 가지 끝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눈[], 복아[伏芽]’ 내지 부정아[不定芽]’가 있어, 그것을 내어 놓아, 새순을 다북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대개 나무들은 정아우세(頂芽優勢; 꼭대기 눈이 세력이 강하다는 뜻임.)’의 성질이 있어, 전정작업에도 그 이론을 응용해야 한다. 자칫, 키만 한껏 자라도록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가 있다.

           사실 전정기술은 꽤나 복잡하고 어렵다. 나무마다 자라는 습성도 다르며, 꽃 맺는 버릇도 다르고, 재배하는 이의 취향도 다르며... . 그러나 전정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은 불변(不變)이다. 바로 ‘S/R(shoot/root;수관/근간)의 개념이다. 나무들은 대개 땅거죽을 기준으로 지상(地上)의 잎과 줄기의 모습과 지하(地下)의 뿌리의 모습이 대칭상태다. 마치 모래시계 혹은 거꾸로 세운 장구와 같다. 그러니 대체로 나무들은 ‘S/R‘1’인 상태다. 그러나 과수(果樹)의 경우, 인위적으로 ‘1’보다 낮은 수치로 만들게 된다. , 뿌리보다 가지와 잎의 양을 적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드는 작업이 바로 전정작업이라는 거. 보다 충실한 열매를 만들기 위해, 뿌리로부터 빨아들이는 자양분을 적은 수효의 자녀들한테 배불리 먹이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

           과수 전정작업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기초지식이 있으니, 그것은 각구단의 감독들이 축구선수들한테 항용 요구하는 운동장을 넓게 쓰라.”와 통한다는 점. , 과수들의 끝가지들이 서로 우산살처럼 펼쳐져 온 밭을 다 차지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뿌리들은 마찬가지로, 우산살처럼 뻗어 온 밭의 흙속 자양분을 빨아들일 것이며, 지상(地上)의 잎들은 태양광선을 최대한 골고루 받아들여 광합성을 할 것이다.

           나는 이에 관해, 어제 매실나무밭에서 OO’한테 누차 강조를 색달리했다.

          보시게나, 어르신들이 엉덩이 펑퍼짐한 남의 집 규수를 맏며느리감으로는 최고로 치지 않았던가? ? 손주들을 쑥쑥 잘 낳을 거라고 말일세. 마찬가지지. 과수도 펑퍼짐한 녀석일수록 꽃과 열매를 많이 달지 않더냐고!”

           진짜로, 전정은 어려운 작업이다. 너무 과도하게 전정하면, 꽃이 적게 일어 그 해 과일농사를 망치는 수도 있다. 반대로, 너무 욕심내어 가지를 너무 많이 남겨 놓으면, 꽃이 너무 일어 장차 알 솎기에 품이 많이 든다. 초보 과수 농부들이 왕왕 전정 실패를 하는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뭇가지를 자르되, ‘단발머리를 만들 듯하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과수를 단발머리를 만들 듯 하는 농부는 볼 것 없이 초보 농사꾼이다.

          내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전정과 관련해서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전문 과수농가들은 전정솜씨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이녁 과수의 전정만은 남들한테 맡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 왜 그렇게들 할까? 아무리 용감한(?) 농부일지라도, 자기네 과수에 과하게 톱질과 전정가위질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 꽃눈이 번연히 보이는데, 그것들이 거의 전부 열매가 될 터인데, 아까워서 아무래도 더 남겨두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심이니까. 하지만, 남의 집에 품팔이로 전정에 나서는 이는 주인 생각과 다른 법이다. 특히, 평당 단가(單價)로 따져 품을 정한다면, 굵은 가지부터 시원시원 톱으로 베어 내어버리고 잔가지들만 전정가위로 슬슬 정리하면 될 터이니... . 사실 전정 작업만은 그처럼 남의 손에 맡기면 장차 풍작(豊作)하게 된다.

            전정과 관련해서 내가 십여 년 동안 경험한 바를 더 전해드리고자 한다. 전정은 그 정도에 따라, ‘강전정(强剪定)’약전정(弱剪定)’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감나무 가운데서도 단감나무는 강전정을 하여야 한다. 본디 단감나무는 꽃이 많이 일기 때문이다. 대추나무도 강전정이 필요하다. 대추나무는 여느 과일나무들보다 점잖아서인지, 다른 과일나무들이 꽃 지고 열매 맺는 초여름에 가서야 꽃을 피운다. 즉 햇가지(사실 가지로도 볼 수 없는 꽃대)에 꽃을 피우는 까닭이다. 과일나무는 아니지만, 배롱나무 곧 나무백일홍[木百日紅]’도 강전정이 필요하다. 여름날 새로 뻗은 햇가지에 꽃을 맺기 때문이다. 내 과수원의 주된 작물인 반시(盤柴;쟁반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정을 따로 하지 않아도 좋았다. 가을날 작은 가지째로 따기에 그것이 곧 전정인 까닭이었다. 더욱이, 내가 해마다 유심히 관찰해 본 바, 감은 그렇게 감을 따는 동안 잘린 그 작은 가지 끝에 새순이 나오고, 5~6번째 눈에서 꽃이 피는 버릇이 있었다.

            독자님들께서는, 전정에 관한 여타 사항은 직접 실패와 성공을 거듭해봄으로써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기를 바란다. 대신, 내가 이제 딱 하나 남겨둔 귀중한 말을 전함으로써 두서없는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농부가 나무에 톱질과 가위질을 하는 것은, 그 나무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행위는 절제(切除)이며 절제(節制)이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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