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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을 놀려두라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우선, 여담부터 들려드려야겠다. 나는 요즘 ‘3job’ 곧 ‘세 가지 직업’을 가졌다. 농부이면서 수필작가이면서 어느 직장의 경비(警備)이다. 특히, 이들 직업들 가운데 맨 후자(後者)인 경비는 의미가 매우 크다. 사반세기 동안 다녔던 지난 직장을 그만 둔 이래, 지난 해 이맘때부터 여벌로 얻다시피 한 경비. 격일제로 24시간 근무함으로써 우리네가 고스톱판에서 흔히 말하는 ‘1타3피(一打三皮)’ 내지 ‘1타4피’를 거두고 있다. 돈 벌고, 농사일 하루 쉬고, 농주(農酒) 하루 참고, 야간에 수필작품 창작 이어가고... .
그러한데 문제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해 12월에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어느 직장의 경비이든 입사 전 ‘경비 실무 교육’을 전문기관으로부터 24시간 미리 받아야만 했다. 해서, 경과규정에 따라 부랴부랴 대구 시내에 소재한 어느 대학 경찰학과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60을 목전에 둔 내가 새삼스레 그 딱딱한 의자에 꼿꼿이 앉아 교육을 받는 일이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24시간 교육을 통해 새롭게 얻은 지식도 만만찮다. 특히, 그 가운데서 내내 잊히지 않는 사항이 있으니... .
교관이 일렀다.
“여러분, 순찰을 돌 적에는 오른손을 놀려두어야 합니다. 왼손으로 울타리나 담장을 차례차례 더듬으면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합니다.”
꽤나 흥미로운 사항 아닌가, 오른손을 쉬게 하라니! 그 이유인즉, 무단침입자 등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오른손을 항시 예비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거. 물론, 왼손잡이라면, 왼손을 예비상태로 두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순찰을 돌아야 마땅하다.
이제 내 이야기는 자연스레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분담에 관한 사항으로 옮아간다. 다들 잘 아시는 바, 우리가 어릴 적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리네 양친은 생억지로 오른손을 쓰도록 훈계하곤 하였다. 그때부터 서서히 오른손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왼손을 많이 쓰면 우뇌(右惱)가 발달하고, 그 반대면 그 반대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왼손잡이를 두고 흔히들 ‘사우스포(south paw)’라고 한다. 1880년대 미국의 스포츠잡지 기자, ‘찰리 시모어’가 최초로 썼다는 그 말. 그는 메이저리그 투수들 가운데서 미국 남부지방 출신자들이 왼손잡이가 많음을 두고 그렇게 적었다고 한다. 또, 일설(一說)에 의하면, ‘사우스포’의 기원은 다르다. 대체로, 야구장들은 본부석 관중들과 투수를 햇볕에서 보호하기 위해 홈 플레이트(home plate) 곧 타석(打席)을 서쪽을 향하도록 설계하게 된다는데, 그러다 보니 좌완투수(左腕投手)가 투수석에서 태양을 등지고 투구할라치면, 왼손이 북쪽이 아닌 남쪽에 위치하게 되므로, 그들을 통틀어 ‘사우스포‘라고 했다는 거. 어찌 되었든, 좌완투수의 투구력은 우완투수 못잖다.
왼손을 쓰든 오른손을 쓰든 우리는 편견을 결코 가져서는 아니 될 일임에도 막상 그러하지 못하다. 편 가르기 해서도 아니 될 일임에도 막상 그러하지 못하다. 우선, 예수님부터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적힌 그 많은 성경구절에 오른편은 좋고, 옳고, 완전하고, 정의로운 자리로 곧잘 묘사되어 있다. 반대로, 왼편은 오른편이 지닌 이미지의 반대로 묘사해 두었다. ‘양(羊)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에 둔다.’는 구절도 있다. ‘성자(聖子) 오른편에 앉으시며’라는 구절도 있다. 심지어는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하늘나라에 오르면,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도록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는 대목도 있다. 왜 그토록 오른편을 중시했을까? 잠시 후에 따로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우리의 해묵은 병폐 가운데 하나인 ‘우익이니 좌익이니, 우파니 좌파니’ 하며 서로를 심하게 몰아세우는 것도 대단히 유감이고... .
사실 이 글을 적기 위해 각종 자료를 챙기다가 흠칫 놀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창검(槍劍)으로 전쟁하던 고대인들 가운데 왼손잡이들은 쇠퇴하였고, 심지어 그러한 유전형질을 이어받은 이들은 도태(淘汰)까지 되었다고 한다. 왜? 심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거 아닌가. 너무도 뻔한 사실이지만, 심장은 왼쪽 가슴에 위치하므로, 적으로부터 심장이 찔리면, 이내 숨을 거두게 된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달리, 자신의 심장을 적에게 노출되기가 쉽다는 사실. 여기서 우리가, 오른손은 공격용으로, 왼손은 방어용으로 역할 분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때 경비 실무교육을 맡았던 분의 순찰요령이 공연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느새 내 생각은 ‘오른-’과 ‘왼-’이란 어휘의 참뜻이 뭘까에 까지 닿고 만다. ‘오른’과 ‘왼’은 각각 ‘옳다’와 ‘외다[그르다]’에서 온 듯하다. 영어에서는 각각 ‘right’와 ‘left’로 쓰지 않는가. 오른쪽은, ‘(도덕적으로) 옳은, 올바른’, ‘(틀리지 않고) 맞는, 정확한’,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이나 사물에) 맞는[알맞은]’, ‘의견이나 판단이) 옳은[맞는]’, ‘(상태가) 좋은[정상인]’ 등을 두루 뜻한다. 왼쪽은, 위 열거한 사항들과 반대개념이다. ‘외다’라는 말이 형용사로 쓰일 적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서 쓰기에 불편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이 꼬여 있다’는 뜻도 나타낸다. ‘right’와 ‘left’의 의미를 각각 살펴보면, 좀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right’의 뜻 가운데는 위에서 주욱 열거한 ‘옳은’의 개념에다 더해 ‘권리(권한)’, ‘판권’, ‘지적재산권’ 등의 개념도 있더라는 거. 그런가 하면, ‘left’는 ‘leave’의 과거분사이기도 하며, ‘남았다[나머지; 찌꺼기]’, ‘떠났다’의 뜻도 지녔음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이 즈음에서, 오른편과 왼편과 관련해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하며 하늘에 해박힌 날이면 그 어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투는 우리 사회의 꼬락서니를 한탄 아니 할 수가 없다. 바로 우파니 죄파니 또는 극우니 극좌니 하는 정치모리배들. 마음 같아서는 그 족속들을 모조리 동해바다에 실어다가 고래밥으로, 상어밥으로 던져버리고 싶거늘... . 사실 그들이 여태껏 ‘國民’이 아닌 ‘窮民’들을 부추겨 크게 두 편으로 갈라왔다는 거. 사실 진보니 보수니 편가를 이유도 없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바퀴를 채운 볼트너트는 오른나사가 아닌, 왼나사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을 터.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바퀴와 그렇듯 반대방향으로 왼나사가 되어 있어서, 바퀴가 구를수록 더 탄탄히 죄어진다는 걸 다들 잘 알면서... . 뿐만 아니다. 전설상의 새, 비익조(比翼鳥)는 각각 한쪽 날개만 가진 새 두 마리가 겹쳐 날아야 한다는 왜 모르느냐고? 어디 그뿐인가. 위에서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나처럼 오른손잡이인 경우에는 왼손은 방어용으로, 오른손은 공격용으로 서로 역할분담을 시켜야 한다는 거. 반대로, 왼손잡이면 그 반대로 방어용으로 공격용으로 역할분담을 시켜야 한다는 거.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사항이 있다. 사우스포 투수가 대단히 빼어난 성적을 보인 예가 많다는 점.
요컨대, 오른손을 주로 쓰든 왼손을 주로 쓰든 편 가르거나 편견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말로만 상생(相生)은 참말로 곤란하다. 효율적인 공수(攻守)를 위해서는 두 손이 다 필요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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