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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늘
    수필/신작 2015. 6. 15. 23:35

     

     

                                         미늘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어느 연수원에서 경비 근무를 하는 나. 자리를 함부로 뜰 수가 없어 낮 동안에는 무료를 달래려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어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잦다. 그 가운데는 낚시 전문채널도 있다. 프로들이 출연하여 이런저런 낚시질로 물고기를 낚는 광경을 생생히 보여주곤 한다. 한 때 민물낚시와 갯바위낚시에 거의 광적(狂的)이였던 관계로, 대물(大物)과 줄다리기를 하는 낚시꾼들의 그 짜릿한 손맛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낚시에 아가리 등이 걸려 나오는 물고기들의 그 고통을 상상해보노라면, 아마도 낚시만큼은 다시 즐길 것 같지가 않다. 특히, 내가 낚시로 생업을 이어가는 어부가 아닌 바에야, 남한테 그러한 고통을 더는 주고 싶지도 않다. 지난날 낚시를 하다가 어쩌다 손바닥이나 손가락에 낚시가 깊이 박혀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더라도 더는 취미삼아 낚시를 함부로 못할 것만 같다.

          대신, 우리네 인류가 낚시라는 독특한 어구(漁具)를 고안해내었다는 점만은 높이 살 수밖에 없다. 그 맛있는 생선을, 그물과 더불어 낚시와 작살을 고안해내지 않았더라면, 어찌 우리네가 자주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점에서 낚시도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반열에 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애초 어망(漁網)이야 거미줄을 본 따서 만들었겠지만, 낚시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쉬이 알 길 없다. 낚시이되, 그냥 바늘을 구부려 만든 민낚시가 아닌 미늘낚시는 아주 대단한 발명품이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미늘은 낚시나 작살이나 화살촉 따위의 끝에 있으며, 물고기 등 공격 대상물들의 몸에 꽂히면 쉽게 빠지지 않도록 가시처럼 만들어둔 작은 갈고리를 일컫는다. 참말로, 미늘은 한 번 꿰이면 쉬이 빠져나갈 수 없는, 거의 치명적인 부품이다. 우리네가 흔히 쓰는 말, “코 꿰였다.”는 중송아지가 코뚜레에 꽂힌 다음부터는 한 평생 구속되는 걸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물고기가 미늘낚시에 아가리가 꿰이는 것을 상정(想定)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여간, 낚시바늘의 미늘에 걸리면, 그 길로 물고기는 시쳇말로 졸도 내지 사망이다. 어디 미늘이 물고기한테만 치명적이냐고? 인류의 역사는 뺏고 빼앗기고, 죽이고 살고가 점철된 역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텐데, 가장 고전적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창과 화살 끝에도 그처럼 미늘로 만들어 두었다는 사실. 그냥 적을 찌르거나 쏘는 데 그치지 않고,아예 살점 깊숙이 꽂히면 쉬이 뺄 수도 없게 그토록 잔인하게 설계를 하였으니! 더군다나 그 화살촉에다 치명적인 독약까지 묻히기도 하였다니!

          엉뚱하게시리, 인류가 최초로 미늘을 어떤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에 관해 몇 가지 추측해 본다. 첫째, 물고기들의 비늘을 보고서 응용해내지는 않았을까? 가령, 쏘가리의 지느러미를 머리 쪽에서 꼬리지느러미 쪽으로 쓰다듬듯 잡으면 쏘이지 않지만, 그 반대로 잡을라치면 손바닥이 온통 쏘이고 만다. 바다 물고기인 전갱이의 옆줄도 그러했다. 만약 인류가 최초로 미늘을 물고기의 비늘에서 착안하여 미늘낚시를 고안했다면, 물고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스스로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둘째, 섬모충류(纖毛蟲類)나 강아지풀의 열매나 보리·벼 따위의 까끄라기를 보고서 미늘을 고안해내지는 않았을까? 사실 섬모충류는 섬모운동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섬모는 우리네 기관지에도 존재하여 가래나 이물질을 허파 쪽으로가 아닌 입 안 쪽으로만 밀어낸다. 하기야 정맥의 날름막도 미늘이나 섬모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정맥의 날름막은 피의 역류(逆流)를 막아준다지 않던가. 셋째, 어느 사내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다가 화살촉에다 미늘을 만들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파르라니 깎은 턱수염. 그는 그러한 턱을 쓰다듬다가 까칠함을 느끼게 되었고... . 그리하여 마치 역린(逆鱗)과도 같은 미늘을, 화살촉을 고안해 내었을 수도 있겠거니. 끝으로, 어느 짓궂은 사내가 자신의 거시기를 보다가, 아니 그렇게 생겨먹은 거시기로 자기 아내와 방사(房事)를 즐기다가 문득 미늘을 생각해냈을 수도 있다. 그는 그 숱한 연적(戀敵)들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써 보다 많은 여성을 독차지할 요량으로 말이다. 사실 크고 작은 난리와 전쟁은 여자 때문에(?) 시작되었다니!

          이 미늘은 바늘질에도 그대로 응용된다. 바로 코바늘’. 1589년에 이르면, 영국의 윌리엄 리라는 이가 수백의 코바늘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편물기를 고안해내게 된다. 거의 획기적인 일이었다. 1755년 독일의 바이젠탈(Chals Weisenthal)이 봉제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를 처음 제작했다. 그러나 최초의 재봉틀 발명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영국인 토머스 세인트(Thmas Saint)였다. 그는 1790년 손뜨개질용 코바늘로 구두를 꿰매는 기계를 발명했으나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금세 잊혀졌다. 그후 1800년 프랑스의 바세리미 크램(B. Kremas)이 하나의 실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재봉틀을 만들었고 그로부터 30년 후인 1830년 프랑스인 시모니에(Barthelemy Thimonnier, 17931857)가 처음으로 재봉틀다운 재봉틀을 만들어냈는데, 한 가닥의 실로 바느질이 되는 기계였다. 그의 발디딤식 재봉틀은 수평으로 된 봉에 바늘이 연결되어 있어 천을 쉽게 밀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1분에 200바늘, 즉 손으로 꿰매는 것보다 대략 14배의 빠르기로 바느질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가정용 기계였다. 참말로, 미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예다.

          이 즈음에서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 그냥 정리해야겠다. 앞서, 낚시를 하다가 손바닥 등에 낚시의 미늘이 꽂혀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다시 더듬었다. 해서, 생업이 아닌 바에야 내가 취미삼아 낚시를 하는 일은 가급적 없을 거라고도 하였다. 실은, 위 두 문장으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다한 셈이다. 내가 60여 년 살아오면서 함부로 쏘았던 미늘달린 화살은 얼마나 많았던지 진실로 괴로워하는 밤이다. 그 가운데는 행동으로 상대를 쏜 미늘화살도 많았겠지만, []로 쏜 미늘화살도 참으로 많았을 거라고... . 또한, 누군가를 미늘낚시로 마치 물고기를 낚을 때처럼 걸려들기를 바랐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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