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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의 천이
    수필/신작 2015. 7. 14. 06:04

     

     

                             

     

                                       숲의 천이(遷移)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에 영구불변은 없다. 해서,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도 생겨났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일전 이웃마을에 사는 객지친구 OO’가 고사리를 꺾으러 가려는데, 산행도 할 겸 그 밭에 심겨진 복숭아며 자두며 감나무며 온갖 과일나무 전정도 도와줄 겸 함께 가자고 졸랐다. 특히, 내가 남들한테 전정 전문가로 알려진 터라 따라나서지 않을 형편이었다.

         꼬불꼬불한 산길로 10여 분 동안 경운기를 타고, 걷고를 한 후에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산자락 밭에 닿았다. 그곳은 숫제 과수원이 아닌 고사리밭이었다. 본디는 복숭아밭이었으나 폐목이 되어 몇 해 전 베어내자 고사리가 대신 차지하였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고사리를 육성하면 수입이 더 짭짤할 거라고 격려했다. 실제로, 해마다 자기 모친이 고사리를 꺾어말려 꽤 많은 수익을 본다고 하였다.

         산불은 숲을 가꾸는 산주(山主)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한테도 크나큰 손실이다. 숲은 후생가치(厚生價値)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국토의 7할대를 차지하는 숲은 우리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서로 바꾸어 줌으로써 허파 역할을 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은 그걸 어찌 알았는지, 산불이 난 산에는 이듬해 어김없이 고사리가 많이 난다고 믿으며 그 산으로 가곤 한다. 마찬가지로, ‘OO’네도 산불 대신 과수 벌채로 뜻하지 않은 고사리밭을 덤으로 얻었다.

         해서, 오늘 내 이야기는 자연스레 숲의 천이(succession)’ 내지 식생(植生)의 천이로 옮겨가게 된다. 천이는 말 그대로 어느 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걸 이른다. 생물학에서 또는 조림학에서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고 극단적인 예로 설명하곤 한다. 가령, 화산폭발이 일어난 곳에서는 그야말로 생명체가 ()’이다. 그랬던 땅에 우로(雨露)가 내리고 태양의 복사열이 쬐이게 되면, 아주 미세한 틈이 생겨나고 그곳에 공기 중의 먼지 등이 날아가서 쌓이게 된다. 그러면 가장 하급의(?) 지의류(地衣類)나 이끼류가 자라게 된다. ‘태 아무개네 밭 고사리도 이들 무리에 해당한다. 이러한 식물 따위를 개척자라고 부른다. 다음은 초원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초본류의 라이프 사이클 내지 생성소멸로 인한 유기질을 좋은 먹이로 삼는 소나무류의 극양수(極陽樹)가 바통을 이어받아 그 자리에 선다. 이때 최고 많이, 최고 넓게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물을 일컬어 우점종(優占種)’이라고 부른다. 20여 년쯤 지나면 소나무가 울창하게 되어, 그 발치에 예전에 자라던 풀들과 어린 소나무 등은 얼씬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응달에서 잘 자라는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떡갈나무들이 슬금슬금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5,20년이 지나면 서로 경쟁하여 힘센 놈만 살아남게 된다. 이를 조림학에서는 근계경합(根系競合)’이라고 부른다. 다음 단계는 활엽수들이 들어차게 되고, 다람쥐나 청설모나 들쥐들도 모여들고, 또 그것들을 잡아먹으려는 맹수들이 찾아오게 되고... .

         경쟁과 공생으로 안정적인 숲을 이룰 때를 일컬어 극상(極上;climax)’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숲이 이 극상에 이를 때에 최고의 왕좌는 서어나무가 차지한다는 것도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교양적으로 익혀둘만하다. 그러나 그 극상도 영원할 수가 없다는 거 아닌가. 자연 서어나무도 더 이상 왕좌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고. 꼭히 인위적이지 않아도 자연상태에서도 숲은 얼마든지 또 다시 변모해간다는 사실. 숲의 천이는 보통 200년 이상 800년 걸리는 긴 여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숲의 천이를 도해화 하면 대충 이렇다. 맨땅[裸地]-한해살이풀(냉이)-여러해살이풀(망초, 쑥 등)-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키 작은 나무(개옻나무, 버드나무류 등)-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키 큰 나무(소나무,잣나무 등) -적은 빛으로 잘 자라는 나무 (서어나무,참나무류 등).

          위와 같은 사이클을 그리며 숲은 끊임없이 천이한다니! 그러니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서도 그저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거나 자연이 참으로 아름답다거나에 그치지 말고, 산행을 하다가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는 동안, 숲의 천이에 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심이? 나아가서, 우리네 삶이 얼마나 무상(無常)하며 우리네 젊은 날의 사랑이 얼마나 허망했던가에 관해서도 숲의 천이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보심이 어떨는지? 참말로, 영원불변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날의 불꽃같은 사랑과 열정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차츰 식어만 가더라는 거. 하더라도, 더 이상 안달을 부릴 이유도 없을 테지. 그냥 '저절로 그러하게' 두는 게 곧 '自'이라고 했으니...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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