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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 몇 개 유감
    수필/신작 2015. 7. 20. 00:13

     

               

                                   우리말 몇 개 유감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언어도 분명 여타 생명체처럼 생명력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그러기에 한 때는 유행했던 낱말 등이 세월이 흘러 생명을 다하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 이들 낱말들을 아울러 고어(古語)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고어가 지역에 따라서는 그대로 현재까지 쓰이는 예도 있다. 한해살이 식물 가운데 명아주가 있는데, 그 식물을 두고 우리 쪽 경상도에서는 아직도 명아주의 고어인 도트라지(이 가운데 는 아래 아에서 변했다.)’를 그대로 쓴다. 그런가 하면, ‘달걀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은 닭새끼(이 가운데 은 아래 아에서 변했다. 움라우트(umlaut)‘라는 말이다.)’. ,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생겨난 말들도 많다. 새롭게 생겨난 낱말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동아리. 영어 ’circle‘돌다‘, ’등의 뜻도 지녔음에 착안하여 누군가가 최초로 동아리라고 고쳐 불렀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현세의 인사 가운데는 재야인사로 널리 알려진 백기완(白基琓) 선생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낱말을 만들어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분의 글은 언제고 힘이 넘쳐나고, 그분이 글 가운데 쓰는 낱말들은 언제고 새롭다는 거. 어린 아이들을 유난히 사랑했던 소파(小派) 방정환(方定煥, 1899~ 1931)‘어른에 대응되는 낱말로 어린이를 최초로 창안해서 썼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항. 이분들처럼 우리말을 갈고 닦아 쓰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무리하게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 퍼뜨림으로써 우리말을 아주 경박스럽게 하는 예도 있다.

          이제 나는 최근 들어 생각 없이 함부로 지어 쓰는 낱말 수개에 관해 유감을 표하고자 한다.

          1. 비장애인(非障碍人)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낱말이다. 장애인들한테는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은 자못 부정적 이미지이다. 사전적 의미도, ‘ 몸이나 마음에 장애나 결함이 있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비장애인에 쓰이는 -’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니냐고? ‘-’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녔다는 거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을 터. ‘싸다의 반대말인 비싸다'도 싸다(아니 싸다)’에서 비롯된 낱말일 터. 그러니 소비자 내지 구매자 입장에서는 부정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판매자 내지 장사꾼 입장에서는 긍정적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이 싸다비싸다에 관해서는 따로 떼내서 이야기 들려드려야겠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산업 분야 교과목은 이른바 선택과목이었다. 내가 다녔던 시골 중학교에서는 농업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모교는 공업도 아닌 상업을 선택과목으로 지정해 공부하게 되었다. 수학에 거의 꽝인 내가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복식부기등을 익혀야만 했으니 얼마나 낭패였겠는가. 상업에서 이르는 거래의 개념도 일반적 상식과 판이했다. 그 무엇보다도 교과목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매매의 개념은 환갑이 다 되어가도 도저히 잊지 못한다. 선생님은, 칠판에다 賣買라고 적고서 분명코 일러주었다. 그 낱말의 글자 배열순서가 암시하듯, “사고 파는 게 매매가 아니라 팔기 위해 사는 게 매매다.”라고. 이 무슨 뜻인지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 부연함이 옳겠다. ’팔 매, ’살 매라는 뜻. 그러니 의 머리인 이문을 얹은 거라고 하였다. 賣買자체만으로도 다분히 상업적 의미가 있다는 거 아닌가. 이렇듯 낱말 하나 만들 때도 깊이 생각해야 함에도... .

           다시 비장애인이란 낱말을 물고 늘어져야겠다. 다시 말하거니와, 정말 말이 안 된다. 나도 여태 적합한 장애인의 반대말을 생각해 내지는 못하였으나, 아무리 장애인들 배려한 말이라고는 하나, 사지(四肢) 멀쩡하고 정신이 온전한 이가 부정적 이미지인 -’가 결코 될 수는 없다. 그토록 신조어를 잘 만들어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를 하더라도, 적합하고 합당한 장애인의 반대말을 만들어 써야 옳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독자들께서는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2. 한 낱말 안에서 국한혼용, 국영혼용

           어색한 국한혼용의 낱말 대표격은 이인직(李人稙)의 장편소설 <<의 누>>. 피눈물을 일컫는 <<혈루(血淚)>>로 작품명을 적었어야 옳았을 터인데... . 최근 들어서는 무슨 풍조인지, 관공서든 기업체든지 경쟁적으로 부서명 따위를 국적도 없는 국영혼용으로 적는 예가 흔해 참으로 눈꼴사납다. ‘주민센터’,‘고객센터’, ‘고객만족센터’, ‘센터장. ‘-센터가 중심지, 집결지, 집중 처리자 등의 뜻을 가진 것은 알겠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 낱말도 아주 잡종(雜種)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문득, 요즘 내가 퍽 재미있게 보는 개그프로그램 코너 고집불통100세 노인이 하는 말이 떠오른다. 작중 넷 가운데 셋은 틈만 나면 다투는데, 그 노인 분장한 개그맨은 수시로 이런 말을 한다.

          내 이런 꼬라지를(꼴을) 보려고 100살까지 살았던가?”

           참말로, 세종대왕께서 여태 살아계신다면, 그 작중 노인처럼 탄식을 하실 것만 같다.

          내 이런 꼬라지를 보려고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잠도 제대로 아니 자고 한글을 만들었던가? ”

          참말로, 다들 정신 똑 바로 차리고 부서명 하나를 짓더라도 애국심을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또 어떤 불순한 세력이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적반하장격으로 불순분자로 여겨 잡아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어사랑만큼은 저 북녘 사람들 본을 받아야 할 줄로 안다. 그들은 우리가 아이스크림’, ‘아이스바라고 부르는 데 비해, 얼음보송이라는 극도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른다지 않던가.

          3. 난삽(難澁)한 신조어

           인터넷이 일반화, 생활화 되면서 자고나면 신조어가 생겨난다. 그리고 길고 긴 문장 가운데 각 어휘의 첫 자를 따 모아 하나의 낱말로 만들어 댄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 가운데 하나인 우국생만 해도 그렇게 해서 만든 술 이름으로 추정된다. ‘우리 순 국산 쌀로 빚은 생막걸리는 아닐까 하고서. 나의 독자님들께서도 두루 살펴보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낱말들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너무 지나친 점 영 없지 않다. 따로 익히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낱말들도 부지기수다. 과연 그쪽으로만 머리를 써야 할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볼 시간이다. 대신, 광고 효과 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기지(奇智)를 발휘한 고유명사 등은 놀랍기만 하다. 그 낱말들은 단번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문장수사법상 중의적(重意的) 표현인 까닭이다. 예를 들면, ‘사랑아파트‘e 편한 세상(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 이름이기도 하다.)' 등이 그것이다. 전자(前者)는 발음상 사랑해 아파트도 된다. 후자는 ’electronic(전자적인, 지능적인) 아파트란 뜻도 지녔지만, ’ 저 편한 세상‘이 아닌 이 편한 세상' 의 이미지도 담고 있다. 해서, 영어 알파벳 가운데, 다섯 번째인 ’e‘는 우리의 와 발음상 닮은꼴이라 꽤나 매력적이다. 이때 쓰이는 는 대명사로서,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이지 않은가. 말 그대로 바로 앞의 사물을 '콕' 찍어 가리키는 듯하니!

          이제 내 이야기 결론지어야겠다. 사실 살펴보면, 우리네 언어습관 가운데 고쳐야 할 게 많을 것이다. 나의 농장에 자주 드나드는 넷째누님은 예를 들면이란 불필요한 말로 시작하는 언어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해서, 나는 누님더러 제발 예를 들지 말고 그냥 본론에 들어가십시오.”하고서 충고를 수없이 한 바 있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그 습관을 고쳤다. 오히려 이번엔 예를 들지 않고라고 우스갯소리로 시작하여 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내 둘레에는 문장으로 따지면, 늘 문두(文頭)에다 아니,’를 갖다놓는 분도 있다. 나는 그한테 ‘No(아니) 어른이란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동시에, “안을 뒤집으면 겉이 됩니다.“ 하면서 그의 언어습관을 고쳐 보려하기도 한다. 요컨대, 말이든 글이든 습관이요, 관성(慣性)이다. 그러기에 가급적이면 바르고 아름다운 언어습관을 차츰 들여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이든 글이든 대뇌(大腦)의 선행작업(先行作業) 이후에 만들어진다지 않던가. 그렇다면 나쁜 언어습관은 대뇌의 바람직하지 못한 선행작업 때문에 빚어지는 일. 그러니 내 사랑하는 애독자들만이라도 자신의 대뇌 활동을 남들로부터 더 이상 의심받아서야 되겠는가. 그 무엇보다도 오줄없는, 주체성 없는 언어활동만은 말아야하겠지.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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