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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초를 뽑으며
    수필/신작 2015. 7. 22. 00:42

     

     

                               

                                         잡초를 뽑으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농부인 나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맨 먼저 냉장고 문을 열어 P.E.T.병째로 찬물을 꺼내 뚜껑을 연 다음 벌컥벌컥 마신다. 그러면 잠이 확 달아난다. 다음은 일반전화기의 버튼을 ‘131’ 눌러 그날 경산시 남천면의 일기예보를 듣는다. 다다음은 잠옷을 일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댕겨 빨아대면서 용변을 보러 농막 밖으로 나선다. 실은, 간이 이동식 화장실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만, 굳이 그곳까지 가지도 않는다. 뒷처리를 위해 한 손에 호미를 들면 족하다. 너른 밭 아무 데고 앉으면 그때그때 나의 화장실인 셈인데, 용변을 보는 동안에 맛보는 산골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기만 하다. 그렇게 용변을 보는 동안에도 눈앞 잡초를, 보이는 족족 뽑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리 들은 일기예보에 따라 하루의 농사일정을 새로 고쳐 잡게 된다.

          농부한테 식전일 곧 새벽일은 하루일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혹서기(酷暑期)에는 한낮을 피해 새벽과 저녁무렵에 집중적으로 일하는 게 좋다. 새벽시간과 저녁시간은, 이 쪽 말로 정말 마디다’. 시간이 알차서 빨리 흘러가지 않는 듯하다는 뜻이다.

          오늘 새벽에는 들깨밭으로 나선다. 나는 그 동안 혼자서 10일가량 걸려 네 뙈기 총 2,000여 평에다 순회하여 들깨모를 이식한 바 있어, 이제부터는 그 들깨모를 돌봐야겠기에. 잡초뽑기와 군데군데 들깨모 빠진 곳과 죽은 곳에다 기워심기[補植]를 병행코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어제 저녁 무렵 물조루로, 예비품으로 남겨둔 들깨모에다 넉넉하게 물을 주어 한 소쿠리 뽑아둔 터. 이 글 저 아래에 가서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모든 작물의 모를 솎기 전에는 이처럼 물을 넉넉히 주는 게 상식이다. 그 이유는,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단단하게 뿌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토양의 겉거죽을 물렁하게 함으로써 그 토양으로 하여금 자신이 붙잡고 있던 작물의 묘를 순순히 농부의 손에 넘겨주도록 한다고나 할까.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나의 애독자들일지라도 이 점을 통해서도, 비 온 다음날에나 비 오는 날 모를 이식하면 힘이 덜 들겠구나를 미루어 짐작하실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새벽 작업을 위해 날 조붓한 호미도 전동그라인더로 칼날처럼 날카롭게 갈아둔 터. 나는 낫뿐만이 아니라 호미, 괭이, 삽 등도 낫 못지않게 새파랗게 갈아 쓰는 편이다. 그러면 작업능률이 배가(倍加), 삼배가(三倍加)가 된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고 지내기에.

          내가 오늘 이른 새벽 숯골못[炭谷池]’ 아랫밭에 당도했더니, 들깨밭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젠 제법 자란 들깨모 사이에 또 새롭게 잡초가 들어서 있고, 들깨모 사이가 더러더러 성긴 곳도 있다내 애독자들께서는 쉬이 상상할 수 없겠지만,나는 살아오는 동안 일거이득(一擧二得) 내지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노린 일들이 참으로 많다. 들깨밭 돌보기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은 들깨모 성긴 자리에 돋아난 잡초를 맨손으로 혹은 호미로 뽑는다. 그러고서는 바로 그 자리에다 두 포기씩 짝을 지어 들깨를 기워심는다. 나는 지금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빈 밭 전체에다 들깨모를 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한다. 그때는 혼자서 하루만에 200여 평도 심었다. 남들 보기에는 건성건성 심는 것으로 보이리만치. 그러나 지금은 다소 능률은 떨어지기는 하나, 잡초 뽑고 바로 그 자리에다 들깨모를 심음으로써 들깨밭을 완성해(?) 나간다.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남들은 쉽게 실천치 않는 일석이조다.

           나의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어제, 엊그제 연일 비가 온 덕분으로 잡초뽑기가 거저먹기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바로 위 단락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잡초뽑기에 아주 좋은 날이 언제인지도 이젠 알게 되셨다. 밭의 겉흙이 촉촉 물기를 머금고 있어 오늘 잡초뽑기는 정말 재미있다. 지금이야 나의 머리가 반백(半白)을 넘어선 터라 뽑는 걸 아예 포기하고 종종 염색하지만, 보다 젊었던 시절에는 핀셋 따위로 새치를 뽑곤 했다. 그때마다 머릿밑이 따끔따끔 했으나 재미도 있었고, 소리도 쪽쪽나는 듯하였다. 지금 나의 풀뽑기도 그러하기만 하다. 녀석들은 아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뽑힐 때 자그마한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왜 나만 두고 그래요?” 하는 것처럼. 이렇듯 잡초를 뽑아 밭둑으로 던져버리고서 곧바로 그 자리에다 똑 같은 방법으로 뽑아온 들깨모를 심고 있으니, 내 행동이 합당한가, 온당한가 잠시 혼자서 되묻게 된다. 내가 뽑은 건 마찬가지인데, 들깨는 작물이라고 도로 심고, 풀은 잡초라고 던지지 않냐고? 이에 관한 명쾌한 해답은, <<잡초학개론>> 첫 페이지에 적혔던 잡초의 정의가 대변한다. 요컨대, ‘인간이 의도하거나 목적하는 것은 작물이요, 그렇잖은 것은 잡초다.’.

          내가 이 이른 새벽 들깨밭에서 이렇듯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하는 동안 또 다른 생각이 얹힌다, 누가 나더러 작가가 아니랄까 봐서. ‘뽑는다’, ‘뽑힌다가 다 그러한 이치일 거라고 말이다. 들깨모든 풀이든 나한테 뽑힌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판이하지 않은가. 한 그룹은 뽑힌 이유로 멀리 밭둑으로 버려진다. 또 한 그룹은 뽑힌 덕분으로 애먼 놈 뽑혀 버려진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나아가서, 앞으로는 뽑은 이의 극진한 손길도 받게 될 것이고. 우리네가 살아온 긴 삶의 여정에도 그러한 일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가령, “, 이번에 신춘문예 수필 장르에서 장원으로 뽑혔어.” 또는 , 이번에 직장에서 퇴출자로 뽑혀 어쩔 수없이 퇴사하게 되었어.” 하면서. 어디 그뿐이었던가. ‘앓던 이를 뽑은 듯이란 말도 심심찮게 쓰지 않느냐고? 뽑거나 뽑히는 일은 이처럼 양면성(兩面性)을 지녔다. 뽑는 일은, 고만고만한 존재들 가운데서 그래도 쓸 만하다고 여기는, 이른바 군계일학(群鷄一鶴)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 특정한 이를 도태(淘汰)시키거나 생짜로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건 어디까지나 주걱 잡은 이의 맘이다. 참말로, 세상살이 이치가 오늘 이 이른 아침에 내가 들깨밭에서 잡초와 들깨모의 자리를 서로 맞바꾸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특히, 입학시험이나 승진심사 등은 우수한 인재를 고르는 행위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잣대로 부적격자를 골라 버리는, 인간 특유의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라는 거. 우리네가 평소 심각하게 생각지도 않으며 행하는 체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밀가루를 얻고자 하는 이는 가는[] 체의 그 그물코를 통해 빠져나가는 밀가루를 취하며, 그 그물코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체 틀 안에 머무른 밀기울을 따로 모아 버리지 않더냐고? 마찬가지로, 내가 가까운 장래인 가을에 이 들깨를 수확하게 되면, 나의 아내는 득달같이 달려와 예년처럼 쳇바퀴를 들고 들깨를 현란하게 체질할 텐데, 체의 그물코를 빠져나가는 또록또록한 들깨만 취할 것이고, 그 쳇바퀴 안에 머무르는 협잡물은 손으로 모아 버릴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이 이른 아침일지라도, 아직 온전히 맑은 정신이 아닐지라도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될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있다. 더 이상 잡초라 여기며 뽑은 풀들을 잡초로만 여겨서는 아니 되겠다는 거. 이 녀석들을 멀리멀리 내던질 게 아니라 밭둑에 곱게 모아두어야겠다는 거. 그러면 그것들은 나한테서 버림받았지만, 장차 스러져 좋은 유기질 비료가 될 터이니 양곡업자가 밀가루를 얻겠다고 체로 거르다가 체틀 안에 걸러져 버린 밀기울이, 나처럼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들한테는 막걸리 제조에 없어서는 아니 될 누룩이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요컨대, 내 편의대로 남들을 함부로 편가르지는 말아야겠다는... .

     

        작가의 말)

          어떻게 적으면 수필이 되며, 또 어떻게 적으면  잡문이 되는지 습작 30여 년만에 이제 겨우 조금알겠어요. 나아가서,여타 장르는 문외한이라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해서, 말해서도 아니 되겠지만, 적어도 수필은 건강한 자신의 삶을 왜곡되지 않게, 크게 꾸미지 않고 적는 거라고... .

     

        * 이번 글 적는 데 뉴 에이지 뮤지션 '랄프 바흐'의 '러빙 첼로(첼로 사랑)'를 계속 흘려두었어요.

     

          독일 태생의 '랄프 바흐'.

          그는 전원을 연주한다는데요,

           1. 새 소리 등이 혼입된 연주곡: 사실 일찍이 '스위트 피플' 악단은 '엘리베이터 뮤직'이라는 별  칭을 얻을만치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섞어 연주했지요.

    Erste Begegnung - Ralf Eugen Bartenbach (첫만남)

    2. 러빙 첼로(첼로 사랑)

    Ralf Eugen Bartenbach / Loving Cello(演奏)

    3. 정말로 좋은 하루 열어가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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