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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등[尾燈]에 관해수필/신작 2015. 7. 25. 21:00
꼬리등[尾燈]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야간에 승용차를 몰고가다보면, 이따금씩 앞서가는 차의 양쪽 꼬리등 가운데 한 개가 나가서 마치 외눈박이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한 경우, 나는 경적을 울리는 한편 비상깜박이를 넣고 그 차를 추월한 후 차를 멈추게 하여 운전자한테 전등 나갔음을 일러준 예도 있다. 오늘밤에도 어느 운전자한테 그렇게 하였다. 왜 그처럼 지나치리만치 친절하냐고? 사실 내 승용차의 꼬리등 정상 점멸(點滅) 여부도 모른 예가 있기에, 그렇게 한다. 실제로, 언젠가 나의 승용차의 꼬리등 하나가 켜지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조차도 모른 채 한 동안 야간주행을 한 바 있다.
두 눈이 앞에 달린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앞만 보고 질주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자연 뒤쪽 사정에 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꼭히 차량 운행에만 그러한 습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학급에서 줄곧 일등을 하는 학동(學童)이 쌔(혀)가 빠지게 뒤따라오는 학동들의 심정을 과연 제대로 이해할까? 텔레비전 생중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라톤 풀코스 42.195킬로미터 선두주자. 그도 거의 예외 없이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도 뒤따라오는 선수를 어느 정도 따돌렸는지 잠깐 돌아볼 뿐 앞으로만 질주하지 않던가. 다시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두 눈이 앞에 달려 있어, 앞으로만 한사코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큰 게 분명하다. 해서, 우리는 차량 운전 때에도 꼬리등보다는 전조등(前照燈)에 부지불식간에 관심을 더 두게 되는 것이리라.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사항이며, 운전면허 이론시험교재에도 실려 있던 사항이기도 한데, 차량에 달린 등(燈)은 몇 가지가 된다. 전조등· 미등·차폭등(車幅燈) 등이 그것들이다. 이 등들은 운전자의 안전과 관계가 밀접하다. 전조등은, 이미 위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주로 운전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참말로 우리의 전도(前途)를 전도(前導)해준다. 그것은 그야말로 ‘길라잡이’다. 사실 이 ‘길라잡이’는 예전에 하인이 초롱이나 횃불을 들고 “녜,녜.“하며 자기 상전의 몇 발자국 앞에서 밤길 걷기를 도와준 데서 온 말일 터. 그래서 본디는 ‘길아재비(길을 안내하는 아재비)’였으나 음운변화로 ‘길라잡이’ 또는 ‘길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전조등이야말로 길라잡이며 주로 운전자 자신을 위한 등이다. 그런데 미등과 차폭등은 운전자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대항차선(對抗車線)으로 달려오는 차량이나 추월코자 하는 차량한테 주의하도록 도와주는 바 크다는 거. 실제로, 교통법규에는 미등(尾燈)에 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규정해두고 있다.
‘ 미등 : 차량의 존재를 후방에 나타내기 위해 차량 후부에 장착한 적광색의 표식등이다. 보안기준에서는 ①야간, 후방300m의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광원이 5W 이상, 조명부가 15㎠이상의 크기. 미등 중심을 통하는 수평면에서 상하 각 15도의 평면과, 연직면에서 내측 45도, 외측 80도의 평면으로 두른 범위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②조명부의 가장 바깥 가장자리는 차량의 최외측에서 400㎜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을 다시 음미해보아도, 미등은 뒤따라오는 차량의 운전자로 하여금 주의토록 하는 등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미등이 일차적으로는 안전거리를 미확보한 채 멧돼지처럼 사정없이 달려오는 즉 ‘저돌적(豬突的)’인 차량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해주는 전등이긴 하지만... .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대체로 많은 운전자들이 차량운전에 앞서 육안점검도 제대로 하지 않는 편이다. 오늘밤 야간주행시에 만난 그 승용차의 운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운전석에 앉으면, 전조등만 환하면 큰 불편함 못 느끼고 ‘쌩쌩’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게 된다. 우리 속담에 ‘개도 무는 개는 돌아본다.’도 있다. 인용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미등도 ‘무는 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오늘밤 미등이 나한테 새삼 일러주는 교훈이 있으니, 그것은 전조등의 힘과 빽(back)만 믿고 앞으로만 달릴 게 아니라, 가끔씩은 뒤쳐져 따라오는 이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는 거. 그러니 출발에 앞서 차량점검을 하되, 꼬리등이든 미등이든 후미등이든 ‘테일 라이트(taillight)’든 ‘테일 램프(tail lamp)'든 그것의 점멸 상태 점검도 빠뜨리지 말아야겠다. 전조등은 주로 나를 위한 등불이요, 꼬리등은 주로 남을 위한 등불이니까. 달리 말해, 전조등은 나의 전도(前途)를 전도(前導)하는 불빛이고, 적어도 후미등은 후미진 곳에서 따라오는 이한테만은 길을 인도하는 전조등의 몫까지를 맡는다. 그러니 미등은 ’배려심‘의 또 다른 이름 곧 별칭이 될 수도 있다. 나아가서, 나는 이 꼬리등을 통해 자신이 숨가피 달려온 삶의 발자취도 이따금씩은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려 다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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