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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기'에 관한 회상수필/신작 2015. 7. 24. 00:39
‘불치기’에 관한 회상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벌써 여러 해째 산골 외딴 농막에서 홀로이 지내는 나. 지금이 혹서기(酷暑期)이긴 하나, 산골이다 보니 밤낮 일교차(日較差)가 커서 아예선풍기도 없이, 에어컨도 없이 지낸다. 오히려 밤엔 이불을 덮고 자야할 형편이니, 피서지가 따로 없다. 다만, 이곳이 산골 숲속이다 보니, 모기를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밤마다 해코지를 하는 통에 잠을 설치거나 팔다리에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예가 많다. 창문마다 방충망을 덧대두기는 하였으되, 어떻게 날아드는지 그런 일이 잦다.
이러한 벌레들을 물리치고자, 밤이면 뜰에 서 있는 감나무에 매달린 외등(外燈)을 켜놓게 되는데, 그것들은 어찌나 불빛을 좋아하는지,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많이 모여들어 전등 둘레를 돌며 숫제 군무(群舞)를 추곤 한다. 오늘은 농주(農酒)에 취해 초저녁잠이 들었던 게 탈이다. 깨어나 찬물을 마시고나니, 도대체 긴 밤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해서, 바깥으로 들락날락하게 되는데, 문득 외등 둘레를 돌며 춤추는 벌레들 저 녀석들도 밤잠 없기는 이 수필작가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게 뭐람? 내 어린 날 ‘어둠에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 - 간첩신고는 113’이란 표어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참말로, 우리는 구호와도 같은 그 표어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다. 밤마다 불빛을 좇는 저 벌레들이야말로 그 표어에 숨어있는 주체인 간첩에 맞갖은 존재다. 벌레들이 불빛을 저토록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크게 아는 바 없다. 모르긴 하여도, 저 녀석들도 불빛이 있으면 대낮처럼 활동하기에 편리해서일 것이다. 실은, 대개의 식물도 굴광성(屈光性)이란 게 있어, 태양 광선을 향해 자기의 가지나 잎을 뻗는다. 농부인 나는 이러한 식물의 성질을 아주 잘 응용하는 편인데, 파를 뉘어 심거나 내 주력(主力) 작물인 들깨를 남들처럼 굳이 반듯 세워 심지 않고 뉘어 심는다. 그래도 며칠 아니 지나 반듯반듯 서게 된다. 하여간, 제법 많은 벌레들은 불빛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이러한 벌레들의 성질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예가 많다. 예전 우리네가 익혔던 ‘농업’ 과목에는 ‘유아등(誘蛾燈)’이 필연코 등장했다. 말 그대로 ‘나방[蛾]을 유인하는 등’이다. 기왕지사 ‘나방’ 까지 내 이야기 닿았으니, ‘나방’과 ‘나비’의 차이점에 관해서도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더듬이, 날개, 나는 형태 등 여러 차이점이 있다고는 하나, 이들 둘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나방은 밤에 날고, 나비는 낮에 난다는 거. 나방이 나비와 달리, 어두운 밤에 주로 활동하기에 날개의 모양이나 빛깔이 상대적으로 곱지 않음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단번에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캄캄한 밤에 화려한 복장을 하고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길 나설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치다. 내 뜰의 외등도 일종의 유아등인 셈인데, 해충(害蟲)을 잡기 위한 전통적 유아등과 다른 점은, 부수적으로 덫을 달지 않았다는 거. 그 덫이란, 맹물을 담은 접시 또는 석유 따위를 담은 접시 또는 그물이었다. 유아등에 쓰인 약제는 석유에서 살충제로 발전했고, 최근 들어서는 ‘전격(電擊) 살충기’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 ‘전격 살충기’에 쓰이는 전등도 꽤나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벌레들이 즐겨하는 빛의 파장이 따로 있을 텐데, 그것까지도 고려했을 것이다. 잘은 몰라도 자외선은 아닐까 하고서. 사실 내가 격일제로 근무하는 어느 연수원의 경비실에도 그 전격 살충기가 설치되어 있어, 이따금씩 벌레들이 ‘찌직찌직’ 타는 소리가 다소 불쾌하게 들리긴 하여도, 그것 덕분으로 벌레에 물리지 않고 그런대로 쾌적한 환경에서 밤을 지낼 수 있다.
이 유아등의 원리가 저 아마존 어느 부족의 가난한 어머니한테 닿으면, 돈벌이가 되더라는 거. 텔레비전의 어느 프로그램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가난한 부인은 자기의 조무래기들과 함께 밤이면 제법 많은 수효의 유아등을 숲에다 놓고 있었다. 특유의 덫을 그 유아등 아래에다 놓아 벌레들이 익사(溺死)토록 하였다. 그러고서는 이튿날 그 접시(?)들을 거두어 와서 자기 아이들과 함께 익사하거나 물에 허둥대는 벌레들을 일일이 분류하여 식자재로 시장에다 내다팔곤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곳 주민의 기호에 따라 곤충들의 값이 제각각이더라는 점. 해서, 맛있는 곤충은 자기 식구가 먹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내다 판다고 했다. 그 유아등은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밤바람에 부채처럼 젓는 저 감이파리들. 그리하여 일렁이는 나의 외등 불빛을 따라 내 아련한 기억 한 조각을 부여잡는다. 그곳, 울릉도 도동항, 저동항, 사구머너, 통구미... . 나는 동료들과 함께 밤마다 갯바위낚시로 전갱이를 잡으러 가곤 하였다. 멀리 수평선에는 대낮처럼 불을 밝힌 어선들이 떠 있었다. 오징어잡이를 하는 어선들이었다. 그들 어부들은 언제고 해질녘에 바다로 나서곤 하였다. 오징어는 밤에 불빛을 좇아 회유하는 어족(魚族)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밝힌 전등들을 집어등(集魚燈)이라고 하였다. 어느새 사 반 세기가 훌쩍 흘러갔건만, 나는 이 밤 아직도 그 기억 생생하기만 하다. 아니, 내 외등 불빛에 어른거리기만 한다. 내가 당시 2년여 그곳 생활을 하는 동안 애창곡이었던 ‘박양숙’ 가수의 ‘어부의 노래’와 다시 겹쳐질 줄이야!
‘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빛에 물들어 간다/ 어머니는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 놓고/ 고기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하략)//’
그때 갯바위낚시를 같이 다녔던 이웃집 ‘유진이 아빠’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곧잘 들려주었다.
“윤 대리, 우리가 어릴 적에는 전복이 ‘개락천지비까리(‘참말로 나뭇더미만치 많다’는 그 쪽 말임.)’였어요. ‘달밝이(달밝은 날)’ 날에는 갯가 바위 틈 사이에 손을 담그기만 하면, 전복이야 소라야 막 잡혔거든요.”
예전에는 울릉도가 오징어를 비롯한 어족이 풍부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범획(氾獲)으로 말미암아 어족 자원이 전반적으로 고갈되었다고 하니!
이 깊어가는 여름밤, 이따금씩 나의 팔이며 장딴지며 발등이며 온데 모기가 쏘고 있는데, 나는 여태 외등 아래 바깥을 서성이고 있다. 그러다가 진짜로 나의 추억 한 자락을 부여잡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었을까? 어머니는 한여름에 뜨거운 칼국수를 잘도 빚었다. 그 칼국수에는 숭숭 썰어 넣은 하지감자가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마당에 짚멍석을 깔고 아버지, 어머니, 큰형님, 둘째형님.... 나, 동생 모두 합해 열둘이 둘러앉곤 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미리 비축해두었던 ‘소까지(소나무뿌리에서 얻은 ‘관솔’을 그렇게 불렀다.)‘를 내어 와서 거기다 불을 댕긴 후 풀을 모아 ’모깃불‘을 피웠다. 그렇게 해도 모기에 더러는 뜯길밖에. 칼국수를 후후 먹은 후 멍석에 반듯 누워 바라봤던 하늘엔 언제고 별이 한 가득이었다. 우리는 여름밤을 그렇게밖에 끝낼 아이들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할 수도 없으나, 개울에 ’불치기‘를 가곤 하였다. 불치기란, 거의 헤엄치지 않고 물속 한 군데에 머물고 있는 물고기를 횃불을 밝혀 유인한 후 반두로 잡는 걸 이르는 우리 쪽 고기잡이 방식을 이른다. 당시에는 등유나 손전등이 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꽤 비싸서 일반화 되지 않았던 터라, 긴 나무자루 끝에 불접시를 단 후 그 불접시 위에다 관솔을 얹어 집어등으로 밝히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불치기‘는 아주 원시적 내지 근대적 ’집어등 밝히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관솔의 향기와 연기와 ’째작임‘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굳이 거창스레 표현할 것도 없이, 그것은 추억이다. 그것이야말로 가난했으되 행복했던 날의 기억이다. 더군다나, 그 불치기는 셋 이상의 우리 남매들의 협력 내지 역할분담이여야 가능했다는 사실을 내내 잊을 수 없다. 반두 잡은 이는 언제고 좌장이었고, 횃불 잡은 이는 차상이었고, 종다래끼를 잡은 이는 누님 즉 가녀린 여성이었다는 거. 다시 말하거니와, 그 불치기는 언제고 삼 남매 이상의 협력으로만 가능했다는 거 아닌가. 이것은 유년기, 소년기를 거치면서 챙긴 나만의 귀중한 자산임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 같다.
참말로, 여름밤이 깊어만 간다. 나는 외등 - 유아등- 아마존 여인의 유아등- 전격 살충기- 집어등- 불치기 등 ‘생각의 사슬‘을 여태 꿰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 필요에 따라 등을 밝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단지 나방 등의 벌레만 물리치고자 밤마다 전등을 밝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수필작가인 나는, 그 누적 시간으로 따져, 대한민국 수필가들 가운데서 가장 전등을 오래도록 밝혀두고자 한다는 거 아닌가. 즉, 내가 밤마다 설령 잠이 들더라도 전등을 밝혀둔 채 잠을 청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사색이, 소재가, 글감이 마치 곤충들처럼, 오징어들처럼, 내 옛 고향 민물고기들처럼 모여들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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