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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래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본격적인 홍고추 따기가 시작되었다. 딴에는 고추를 담아 지게로 져다 나를 PP포대를 넉넉하게, 튼실한 것으로 준비했다고 여겼으나, 막상 밭에서 낭패를 당했다. 지난 해 썼던 포대를 쥐가 온통 쏠아 놓았는가 하면 짝퉁인지 자꾸 터져서 뙤약볕 아래에서 애를 먹었다.
실제로, ‘사람과 그릇은 보이면 쓰인다.’는 말이 있다. 농사를 하는 나한테는 참말로 여러 종류의 그릇[容器]이 있고, 그것들은 담게 될 물건에 따라 모양도 다양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름날 내가 복숭아를 따 담아 청과물시장에 내다팔 적에 5킬로그램들이 규격 종이박스를 개당 750원에 사다 썼다. 가을에 벼 타작을 하게 되면, 지퍼가 달린 콤바인자루에다 벼를 담게 된다. 요즘 내가 한창 따게 되는 홍고추는, 내 어릴 적만 해도 싸리다래끼에 따 담았으나, 비닐 비료포대에 따 담게 된다. 비닐 비료포대는 여러 모로 싸리다래끼보다도 편리하다. 해서, 싸리다래끼가 농촌에서 거의 사라진 듯하다. 비닐 비료포대를 밭고랑에 질질 끌고 다니며 고추를 따 담아도 만판이다. 그렇게 비닐 비료포대에 따 담은 고추를 다시 제법 큰 PP포대에 옮겨 지게에 지고 농막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밖에도 여러 종류의 그릇이 더 있기는 하나, 두루두루 쓰이는 그릇은 ‘비닐봉지’일 터.
그 흔해빠지고 편리한 용기가 비닐 비료포대와 비닐봉지이지만, 어쩌다 그것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현장에 나섰다가 오늘처럼 난감해지는 예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응용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는데, 입고 있던 러닝셔츠· 양말· 바지·저고리 등 모두가 용기로 탈바꿈 되더라는 거. 실제로, 여름날 남의 수박밭, 참외밭에 주인 몰래 들어가 서리를 할 때에 러닝셔츠를 자루삼은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물가에서 다슬기가 하도 눈에 많이 띄어 그 녀석들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담을 그릇이 마땅찮아 신고 있던 양말의 목을 주둥이삼아 집어넣은 적도 있다. 놀랍게도 양말은 자꾸자꾸 늘어나 그렇게 다슬기를 잡아 담고 돌아와 양재기에 옮겨 부어 봤더니, 거의 한 되[升]에 달했다. 양말은 꽤나 훌륭한 자루임을 알게 되었다. 저고리의 앞자락도 아주 훌륭한 그릇이었다. 어쩌다 남의 시제(時祭) 내지 시사(時祀) 때에 그분들 산소에 가면, 제사가 끝난 후 시루떡이며 인절미며 과일이며 온갖 음복(飮福)을 나누어 주었는데,마땅한 보자기 등이 없으면 저고리의 앞자락을 두 손으로 벌려 잡으라고 하였다. 참말로 저고리의 앞자락도 훌륭한 그릇 대용품이었다.
그 많은 그릇 대용품 가운데서도 어르신들이 입으셨던 두루마기 또는 도포(道袍)의 소맷부리에 있는 ‘배래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배래기란, 한복 소매의 아랫쪽으로 물고기의 배처럼 둥글고 볼록하게 나온 부분을 일컫는다. 줄여서 ‘배래’라고도 부르는 부분으로서, 한복 저고리에 있는 그 배래기의 곡선이야말로 ‘한국적 선(線)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물고기의 배처럼 둥글고 볼록하게 나온 그 배래기가 정말로 ‘한국적 선의 아름다움’만을 나타내는 부분일까? 그 배래기는 아주 훌륭한 그릇이었으되, 내리사랑을 은밀히감추는, 일종의 그릇이었다는 거. 영감님들은 거기에다 어린 자녀들과 손주들을 위해 이런저런 먹을거리와 주전부리를 남몰래 잘도 넣어 다니곤 하였다는 사실. 당신들은 남의 집 잔치나 시제(時祭)에 다녀오면서 상에 놓인 음복 등을 다 잡수시지 않고 남이 볼세라, 그렇게 배래에 불룩 넣어오는 게 상례(常例)였다. 집에 당도하자마자, “예 있다. ” 하며 그 배래기에다 손을 집어넣어 시루떡이며 엿이며 과자며 온갖 걸 꺼내 건네주지 않았던가. 당신들은 그 배래기에다 담배도 넣고 손수건도 넣고 엽전도 넣고 했다. 다시 말하거니와, 한복 저고리의 배래기는 ‘한국적 선의 아름다움’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적 내리사랑의 아름다움’까지 갖춘, 아주 훌륭한 용기의 대용품이었다.
나도 편의만을 좇아 살다가 보니, 일회용 비닐봉투 등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뿐더러, 두루마기를 포함한 한복 한 벌도 있지만, 영 불편해서 쉬이 입지 않는다. 아내는 명절에라도 한 차례씩 품위 있게 입으라고 비싼 값을 치르고 지어주었지만, 일이 그렇게 되었다. 정작 아내마저도 명절일지라도 치마저고리를 입지 않는 편이다. 지난 날 내 아버지가 그러했듯, 후일 외손주 등을 얻게 되면 두루마기의 배래기 속에 몰래 감추어 온 과자 등을 슬쩍 꺼내 건네주는 꿈을 잠시 꾸어 본다.
덧붙여, 추억 속의 ‘배래기’로 하여 우리네 전통복장에 나타나는 부위의 명칭들도 정겹게만 다시 다가옴을 알겠다. 끝동·동정·도련·대님· 우치기·스란단 등등. 갖가지 자료를 통해서 그것들 부위가 단순히 멋만 부리고자 장식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멋과 실용을 겸한다는 거. 예를 들어, 저고리 깃에 다는 동정은, 옷을 자주 빨지 않더라도 때 묻은 동정만 하얀 동정으로 바꾸어 달면 언제든지 새 옷처럼 보이게 하고, 바지의 발목 부위에 감는 대님은, 바람이 스며드는 걸 막아주어 보온의 효과를 드높이게도 한다.
내 이야기 한 걸음 성큼 더 나아가 본다. ‘도련’이 ‘두루마기나 저고리 자락의 맨 밑 가장자리’를 일컫는데, 그 ‘도련’에다 ‘-님’을 붙이면, 장가들지 않은 시동생을 일컫기도 한다. 시동생이 ‘(두루마기나 저고리 자락의) 맨 밑 가장자리’ 같아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을까? 그 시동생이 장가든 이후부터는 남편의 손위와 마찬가지로 ‘도련님’ 이 아닌 ‘아주버님’으로 부른다는 것도 흥미롭다. ‘바지의 발목 부위를 감싸 매는 띠[帶]’를 두고 ‘대[☜帶(?)]’라고 부르지 않고 ‘대님’이라고 존칭하는 것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전통한복에 잘 나타나는 배래기의 여유로운 곡선미와 넉넉함과 숨겨진 내리사랑을 생각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배래기, 참말로 그것은 코흘리개였던 우리를 감싸주던, 넉넉하기만 하였던 어버이들의 그릇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그런 종류의 옷을 ‘포(袍)’라고 총칭했던가 보다. ‘袍’를 파자(破字)하면, ‘옷[衣]은 옷이되 감싸안는[包] 옷’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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