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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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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롱(40) -실린더'
    수필/신작 2015. 8. 8. 16:12

     

     

                                                 대(40)

                                                      - 실린더(cylinder)-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를, ‘개뿔도 모르면서... .’하고 조소하기도 한다. 어설픈 농부인 나야말로 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그르친 바 있다. 경운기에 이어 관리기에도 중고 분무기를 장착하여 한 해 동안 고추밭에 농약을 살포하는 데 유용하게 부려 썼으나, 관리소홀로 탈이 나서 올해 첫 고추농약살포에 차질이 생겼다. 시운전을 해봐야 옳거늘, 10[]들이 물통에다 살충살균제를 다 태우고, 시동을 걸고, 방제복 곧 우의(雨衣)를 입고, 마스크를 끼고, 권총형 약대()를 잡고 목표지점인 고추밭 고랑에 들어섰건만, 분무기 노즐에서 도대체 약물이 분사되어야지? 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농부들도 집집이 정비공장 못지 않은 시설을 따로 갖추어, 관리기야 경운기야 트랙터야 콤바인이야 온갖 농기계를 손수 고치는 판인데... .

            낭패를 당한 나는 윗마을에 사는 OO’한테 S.O.S.를 타전했다. 그는 나와 농사 협력관계에 있고,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농기구 수리 전문점에서도 근무한 적 있고, 이집 저집 탈난 농기계를 감쪽같이 고치는 이다. 한마디로, 농기계 수리 박사이다. 그는 자기 일 젖혀두고 몇 가지 수리 공구를 들고 달려왔다. 그는 이내 고장 개소를 진단하였다.

            윤형, 분무기 이 따구(따위)로밖에 못 써? ‘후드 파이프(hood- pipe; 흡입 파이프)’의 거름막이 이처럼 뚫어졌으니, 볼 것 없이 찌꺼기나 모래가 빨려 들어가서 실린더밸브가 막혔음이 분명해. 만약에 실린더가 윤형 부인의 거시기라고 생각했다면 이리 관리했겠어?”

            그러면서 그는 전문가답게, 나더러 조수삼아 인치 스패너 찾아줘.” 등을 명했다. 나는 그때그때마다 그가 요구하는 공구를 대령했다. 드디어 그는 문제점을 찾아냈다. 엽전같이 생겨먹었기도 한 흡입압축밸브. 그것은 예민한 스프링의 도움을 받아 정교하게 작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모래만이 아니라 심지어 자잘한 복숭아까지 끼어 있었다. 그는 수리를 하면서 나한테 알아듣도록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사포(砂布), 녹이 나고 밀착이 제대로 안 이루어져 그야말로 헛김새는엽전 모양의 밸브를 닦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 분무기 실린더를 재조립하고 있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분해는 조립의 역순!’ 그것까지는 아무리 아마투어인 나라도 알 듯하였다.

            그는 관리기를 시동하여 분무기 정상작동 여부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사력(噴射力)이 영 마음에 안 든다며 또 뭔가를 조정하고 있었다. 나는 실린더와 피스톤 사이에 존재하는 그것이 어디 쓰이며, 어떻게 조절하는지조차 참말로 여태껏 모르고 지냈다. 그가 일러준 그것의 정상명칭은 잊어버렸는데, 아마 실린더라이너(cylinder-liner)’일 것이다. 본디는 내연기관의 실린더 내에 집어넣은 주철제의 원통이지만, 나의 분무기에서 그것의 내면구조를 본 적은 없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분무기에 쓰이는 재질은 주철제가 아닌 특수 고무대롱이요, 그 고무대롱은 그 내면이 주름져 마치 주름관(주름)꼴로 되어 있다. 그는 그 실린더라이너를 좀 더 죄면서 의미로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성인이며 딸아이 둘까지 낳은 난들 그 구조를 금세 상상 못할 리 없었다. 둘은 서로 쳐다보며 호방하게 웃어젖혔다. 나의 애독자들께서도 양해해주시리라 믿고, 아주 쉽게 아주 노골적으로 설명을 보태고자 한다. 우선, 본인들의 입천장 앞부분을 혀끝으로 더듬어보시길. 그러면 입천장 그곳이 주름져 있음을 금세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실린더라이너가 바로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거 아닌가. 기혼의 남성 애독자라면, 부인과 성관계를 하는 동안 느낌으로 잘 알 테지만, 질벽(窒壁) 구조와도 같다는 거 아닌가. 실린더라이너는, 피스톤의 잦은 왕복으로 말미암아 마모되는 실린더 내벽을 보정하는 데 쓰인다고 하였다. 피스톤의 잦은 왕복으로 말미암아 실린더 내벽이 차츰 닳을라치면, 육각 렌치로 그 실린더라이너를 조금씩 죄어나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실린더라이너의 주름 사이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피스톤과 실린더가 밀착된다는 거. 다만, 마치 동물의 질()에 해당하는 실린더 내벽 길이가 차츰 줄어들어 하얀 주철의 피스톤이 겉으로 드러나는 길이도 조금씩 늘어날 테고.

            사실 이 글은, 이미 내가 적어 인터넷 매체에 발표함으로써 많은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수필작품 ‘4행정기관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다룬 바 있다. 나는 그 글에서 4행정기관 곧 가솔린기관을 인류 최초로 고안해낸 독일의 엔지니어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를 소개한 바 있다. 나는 그 글에서 그가 성불구자였거나 애처가였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라고 상상해보기까지 하였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은 마치 동물의 성행위와 유사하며, 피스톤은 수컷의 성기와 같고, 실린더는 암컷의 그것과 흡사하지 않느냐고까지 하였다. 정말로, 피스톤과 실린더가 각기 수행하는 기능은 수컷, 암컷의 성기가 수행하는 기능과 유사하다. 그러니 다임러는 성불구자였다면, 대리만족으로 가솔린기관을 고안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 그가 애처가였다면, 아내를 더욱 즐겁게 해주려고 압축링오일링을 끼운 보다 나은 형태의 피스톤을, 자신이 즐겁게 되려고 실린더라이너를 덤으로 덧댄 실린더를 생각해냈을 거라고 적었다.

           다시 내 이야기는 본류(本流)로 돌아온다.

           에라, 모르겠다. 여태 작가인 나한테까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독자가 계셔도 하는 수 없다. 확 까발려야겠다.’

            실린더는 여성의 질과 같은 거. 실린더라이너는 잦은 피스톤의 왕복이나 출산 등으로 질벽의 주름이 닳은 걸 보정하는, 여성의 이쁜이수술 같은 거. 실린더는 어쨌든 대롱.

           이제 관리기의 분무기를 온전히 고쳐 농약살포와 물푸기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농부인 나. 감히 또다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는다.

            세상만사 모든 게 대롱에서 출발해서 대롱으로 끝난다.’

     

            작가의 말)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힐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본다. 그리고 어느 작가가 동일한 제재로 어느 정도 길이만치 연작(連作)을 지어낼 수 있는지도 스스로 시험해본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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