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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모의 경제'에 관해
    수필/신작 2015. 8. 5. 04:46

     

     

                            규모의 경제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안타깝기만 하였다. 시골 고향에서 백씨(伯氏)와 이웃하며 농사하고 사는 중씨(仲氏)가 올해 손수 농사한 거라며 털복숭아를 나한테 하나 건네주며 맛을 보라고 하였다.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돈은 괜찮게 샀냐고 여쭤봤더니, 일백여 만원 매출액을 거뒀다고 답했다. 중씨는 장황히 자랑하였으나, 실상은 내 경험에 비춰 농약값과 인건비에도 못 건진 듯하였다. 나는 여름휴가를 겸해 그곳 고향 마을에 가 있었다. 중씨는 나와 띠 동갑(?)이니, 셈을 해보니 71세다. 나도 남의 복숭아밭 200여 평을 도지(賭地)로 얻어 2년째 복숭아 농사를 하여 막 출하를 끝내고 수중에 농약 값, 수고비 등을 모두 합쳐 50여만 원을 쥔 터.

         형님더러 복숭아농사는 또 왜 지었느냐, 복숭아밭은 또 어디에 있어 그리 하였냐, 돈 아니 되는 그 농사를 왜 또 벌였느냐, 뇌졸중 후유증으로 시달리며 무슨 욕심을 그리 내느냐 등등 측은해서 말을 건넸다. 실은, 힘에 부치면서도 토지 욕심내어 남들로부터 도지를 얻기도 하고,벌초를 몇 기()씩 해마다 해주는 조건으로 남의 묘답(墓畓)이나 묘전(墓田)을 얻어 보태서 고추야 복숭아야 매실이야 사과야 이런저런 농사를 다 하는 중씨. 사실 나도 중씨와 마찬가지로 닭 띠이니, 별반 다르지 않다. 닭이 거름무더기 등을 발로 마구 파헤치듯 실속 없이 일만 중씨 못지않게 벌여왔다. 그러니 중씨에 대한 연민은 곧 나에 대한 연민일밖에.

         중씨는 자기가 남의 묘전을 새로 얻었다는 복숭아밭으로 나를 데려갔다.

         동생, 이 밭 꽤 너르지? 복숭아 이렇게 키우면 돼? 자네는 복숭아 전정이며 복숭아 접[]이며 과일 농사 전문가이니 어디 한번 봐 주게나?”

          한마디로, 맥이 딱 풀렸다. 복숭아나무가지들을 마치 단발머리를 만들듯 잘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복숭아는 개심잔꼴[開心盞型]’로 키워야 한다느니, 전정을 하되 가지 겨드랑이를 바짝바짝 잘라야 한다느니 설명을 하자, 중씨는 내년 일이 한걱정이라며 낭패감을 느끼는 듯하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새벽 2. 위 내용은 모두 지난밤에 내가 꾸었던 꿈 내용 그대로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찬물을 P.E.T.병째로 꺼내, 시쳇말로 나발을 불었다. 그러자 잠이 확 달아났다. 담배를 한 대 꼬나물고, 돋보기안경의 유리알을 닦개로 닦아 끼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고는 지난밤엔 왜 하필이면 그러한 꿈을 꾸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어제 초저녁에 나는 백씨에 이어 중씨한테도 문안 시외전화를 건 바 있긴 하다. 백씨는 형수와 단둘이서 힘에 부치지 않게 일정량의 농사만 알뜰히 짓는 덕분에, 올해도 여러 작물 골고루 작황(作況)이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비해 중씨는 위 꿈 이야기에서 이미 소개했듯, 이래저래 넓힌 여러 뙈기의 고추밭에 역병(疫病)이 들어 올해도 거의 고추가 노랗게 말아버렸다고 탄식했다. 그러게 왜 그처럼 일 욕심을 내시느냐 했지만... . 사실 내가 지난 밤 꾼 꿈과는 달리, 중씨는 복숭아 농사만은 하지 않는다. 꿈속 복숭아 건은 곧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일 터. 내 농토, 내 농막을 향한 지름길에 위치한 200여 평의 복숭아밭이라, 폐목이지만, 복숭아를 따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하겠다싶어 꾸역꾸역 복숭아농사를, 그것도 임차료를 물어가며 짓기는 하지만... .

          , 내가 내 신실한 애독자님께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꿈을 털고 일어나 퍼뜩 떠올린 말은 다름 아닌 규모의 경제였다. 내가 여태 알고 지내왔던 그 경제학 용어의 뜻이 제대로인가 싶어 네이버 박사(?)한테 여쭤 받다. 그랬더니, 얼추 내가 알고 지냈던 게 맞는 듯싶었다.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規模經濟), 이는 이렇게 풀이된다.

          ‘규모의 경제는 각종 생산요소를 투입하는 양을 증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 증가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는 대량생산을 통해 단위당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여 이익을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최근은 특히 설비를 증강하여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이때 대량생산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이익을 증대가 완성되는 것을 규모의 이익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규모의 경제 (용어해설)

          농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해서, 나의 중씨의 주장이 영 틀리지는 않다.

          어차피 경운기를 몰고 가야 하고, 10[]를 치나 50말을 치나, 농약 한번 뒤집어쓰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

          하지만, 해마다 내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지만, 고추농사만은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야하며, 한 개 한 개 붉은 고추를 골라 따야하므로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해서, 중씨는 내외분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서 고추수확기엔 포항이나 안동 등지에서 할머니들을 모셔다가 먹고자고까지 하시게 하며 일을 한다. 사실 ‘in-put’‘out-put’을 따지면, 전혀 수지맞지 않는 일을 벌써 10여 년째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유명한 청송사과농사는 연년 엉망이 되어 버린다. 중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는 알고 실천하되, 나의 백씨가 벼농사와 사과 농사에만 주력하는 그 선택과 집중에는 영 관심이 없다. 손아래 남매들은 그것이 늘 안타까워 충고하지만, 월남 파병용사이고 국가유공자인 중씨는 고집을 전혀 꺾지 않는다. 그 셈법을 우리는 늘 가슴아파한다. 참말로, 나의 백씨는 중씨와 달리, ‘선택과 집중에 능한 편이다. 나의 백씨는 규모의 경제의 반대개념인 범위의 경제(範圍經濟, economies of scope)’도 실천한다. 나아가서, 농사에도 중씨와 달리, ‘노동집약적이 아닌 기술집약적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두 형님들 이간질하는 것 같기만 한데, 실은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나는 수년째 이런저런 농사를 마치 백화점식으로 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아예 하지 않는 농사가 있다. ‘돈 아니 되는 작물은 아예... .‘란 굳은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짓지 않는 작물은 대개가 이러한 것들이다. 옥수수, 고구마, 감자, 상추, 오이, 참외, 수박, 쑥갓, 가지 등. 우리 가족이 먹자고 그것들을 재배하느니 시장에서 사는 게 훨씬 싸게 친다. 왜 그러냐고? 옥수수 씨앗 한 봉지가 8,000원 하며, 상추 씨앗 한 봉지가 2,000원 한다. 그리고 감자 씨앗은 5킬로그램들이 한 상자가 5,000원 하는데, 그것을 심어 수확해보면 10킬로그램이 아니 될 때가 많다. 대신, 올해부터는 밑천 가장 아니 들고 가장 짓기 쉬운 들깨 농사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감은 기왕에 20살은 거뜬히 넘겼을 씨없는 반시[盤柴 ;쟁반감]‘가 밭둑에 늘어서 있는 관계로, 감 농사를 제2의 주력농사로 삼고 있다. 사실 감 농사는 농약 살포도 두어 차례로 끝낼 수 있으며, 모든 작물 수확이 끝난 다음 선선한 늦가을에 수확하므로 용이하기만 하다. 마음 같아서는 감 농사를 주력사업으로 삼고 싶지만, 감은 적어도 심은 지 10,20년이 지나야 제대로 수확량이 느는 터라... .

           이 새벽, 농부 수필가가 고작 자기네 형제들의 농사 이야기나 들려드리고자 컴퓨터 앞에 꼿꼿 앉아있었을 리 만무하다. 엄연히 나는 수필작가가. 그것도 대한민국 현존하는 수필가들 가운데서 최다작(最多作)의 수필가로 역사가 기록하기를 바라는 수필가인 터에... . 문학에도 시, 시조, 소설, 희곡, 수필, 시나리오 등 여러 갈래가 있지 아니 한가. 나는 수필가 겸 시인 겸 희곡작가등으로 본디부터 일컬어지길 원치도 않았으며 또 그러한 역량도 없다는 거. 중간에 쓰인 ()’은 도대체 무얼 뜻하는가? 뒤집어 생각하면, ‘도도 개도 아니다가 되지 않을까? 차림표에 많이 적힌 음식점 치고 음식 맛 제대로인 곳을 그리 본 적 없다. 명함에 약력 빽빽 적힌 이 치고 특정분야에 빼어난 이를 그리 본 적 없다. 그러니 나는 오로지 수필작가로, 들깨농사 전문가로, 감 농사 전문가로, 접붙이기 전문가로서만 여생을 살아가고 싶을 따름 오죽했으면, 내가 '문학 평론가'라는 용어 대신 '수필 평론가'라고 아주 구체적 용어까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쓸까? 그것이 규모의 경제와는 동떨어진 개념일지라도... .

     

         작가의 말)

          작가는 꿈 속에서도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겠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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