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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치료제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피부가 예민해서인지, 농부인 나는 해마다 여름철에는 팔이며 다리며 등짝이며 온 몸이 마련 아니다. 모기를 비롯한 온갖 벌레들한테 물리기도 하고, 풀에 닿아 풀독[草毒]이 오르기도 하며, 환삼덩굴 가시 등에 긁히기도 하고, 털복숭아의 잔털 알레르기가 오르기도 하며... . 해서, 온 몸이 성한 데가 거의 없고, 근지러워 마구 긁어댐으로써 손톱에 의한 2차 상처까지도 입게 된다.
팔과 다리에 상처투성인 나한테 이따금씩 지인(知人)들은, 제발 하나뿐인 몸을 아끼라고 안타까이 충고 아닌 충고를 하곤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러한 대꾸를 하게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어요? 농부라면 이 정도는 가볍게 여겨야지요.”
정작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피부 연고제 등 상비약도 제대로 갖춰 두지 않은 것은 내가 생각하여도 약간은 문제다. 친구의 말마따나 ‘자신의 신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보다 못한 아내는 이런저런 피부 연고제를 사다 주었는데, 중국산 ‘호랑이 연고(?)’, 동화약품의 ‘후시딘 연고’, 동국제약의 ‘마데카솔’, 또 어느 회사의 ‘버물리’ 등이 그것들이다. 사실 작가인 내가 어느 특정회사의 제품명 등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는 것은, 다소 문제가 된다. 작가는 간접홍보, 간접광고 등도 피해야 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 글을 완성키 위해서는 불가피함을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환갑을 눈앞에 둔 나 또래의 사람들은 공히 기억하는 피부병과 상처, 종기 치료제가 있다. ‘고려 됴고약’ 또는 그냥 ‘조고약(趙膏藥)’으로 일컬어졌던 고약과 ‘이명래고약(李明來膏藥)’. 나는 이들 두 고약이 신통방통했다는 걸 기억한다. 특히 오래도록 곪은 종기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 특효를 발휘하곤 하였다. 오늘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이들 두 고약에 관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챙기게 되었다.
됴고약은, 조선말기 ‘조근창(趙根昶)’이란 외과의사(요즘식 표현임.)가 개발한 고약임을 알게 되었다. 그 고약의 성분은 거의 밝혀져 있었다. 다소 내 글이 길어지더라도, 그 성분을 다 열거하고자 한다. 행인·황·황백·황납·황기·황금·현삼·유향·적작약·연단·생지황·백렴·백지·백급·몰향·목별자 등 무려 16종의 약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한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얼마나 이것들 성분의 구성비를 정교하게 하여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담황갈색 내지 황갈색의 고약이었으되, 그 고약의 중앙부에 콩알 만한 ‘발근고(拔根膏)’를 얹어 환부(患部)에 바르면, 영락없이 고름의 뿌리 곧 ‘세균과 싸우다 전사(戰死)한 백혈구들의 시체 덩어리’째 뽑혀 나와 환부에 구멍이 다 뚫릴 정도였다. 시원하게 종기 등을 낫게 했던 조고약.
이명래고약은, ‘이명래(李明來, 1890~1952)’라는 분이 프랑스 선교사로부터 전수받아 <<본초학(本草學)>>을 기초로 해서 1906년부터 만든 고약이라는데, 오행초와 가래나무 추출물을 사용했다고 밝힐 뿐, 그 비법(秘法)만은 오늘날까지 일반인들한테 공개되지 않았고, 대물림 되어 오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재는 생산 중단된 상태란다. 그 약효와 처방은 위 ‘조고약’과 어금버금.
현대에 이르러 일반화되고, 거의 종기나 상처 치료제의 일반명사화 내지 대명사가 된 게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후시딘’과 ‘마데카솔’. 이것들을 ‘고약’이라 하지 않고 ‘연고(軟膏)’라고 하는 점도 의미롭다. 말 그대로 고약보다 한 단계 진보한 ‘연질(軟質)’이란 뜻 아니겠는가. 상처부위에 살짝 바르면 된다는 의미가 녹아 있으니... .이 약제들에 관해서도 살펴보았다.
‘후시딘’은 일본식 표기인 듯하다. ‘Fusidin’을 일컫고, 이는 다시 ‘Fusidin acid natrium(푸시딘산나트륨)’에서 왔음을 알게 되었다. 푸시딘산나트륨이 몸속에 침입한 병균을 죽이는 효능이 있어, 이를 주성분으로 해서 종기나 상처에 바르는 약제로 개발한 것임을.
‘마데카솔’은, ‘madecassic acid(마데카식산)’에서 온 말. ‘동국제약’은 그 주성분을 약제명으로 약간만 변형해서 쓴 셈이다. 이 마데카솔은 ‘센텔라 아시아티카(centella asiatica)’라는 학명(學名)을 지닌 식물의 추출물에서 얻었다는데... . ‘centella’는 ‘병풀[甁草;병 모양으로 생겨서(?) ’병꽃나무‘에 대응한 말로 쓰인 듯.)]’을 일컫고, ‘asiatica’는 ‘아시아의’를 의미한다. 그러니 ‘센텔라 아시아티카‘는 ’아시아에서 주로 나는 병풀’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을 비롯한 인도, 중국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임을 알게 되었고, 그 생김새도 식물도감을 통해 익혔다. 이 ‘병풀’은 ‘호랑이풀’이라고도 일컬어지며,‘피막이풀’이란 식물과 함께 그 추출물이 마데카솔의 주성분인 셈인데, 인간들이 그 상처치유의 효능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비밀은, 인도의 호랑이가 풀어주었다니, 흥미롭지 아니한가. 인도에 사는 호랑이들 가운데 상처를 입은 호랑이들이 그 병풀숲에 자주 뒹구는 걸 그쪽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호랑이들이 얼마 아니 가서 상처가 치유되는 걸 보고서... . 꼭히 마데카솔은 아니지만, 내가 추측컨대, 중국 여행에서 다녀오는 분들이 가끔씩 나한테 선물로 건네주는 그 ‘호랑이고약(병에는 호랑이 그림까지 붙어 있다.)’도 실제로는 호랑이한테서 얻은 게 아니라 병풀에서 얻은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근지러운 신체 부위에 그 ‘호랑이고약’을 바르기만 하면 따끔거린다 싶을 만치 시원하였고, 상처가 잘 낫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 ‘호랑이고약’을 즐겨 쓰는 편이다.
내 이야기는 이제 우리 인류에게 ‘마데카솔’이란 생약 상처치료제를 전수해준(?) 인도 호랑이로부터 우리네 산야를 누비는 ‘멧돼지’한테로 조심스레 옮겨간다. 포수로부터 총탄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멧돼지는 아주 특별한 상처치유를 한다지 않던가. 그 녀석은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부위에 자신만의 독특한 고약을 바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 고약이 바로 송진이라는 거. 몸을 송진 흐르는 소나무에 비벼 상처 부위에다 송진이라는 고약을 발라, 피를 멎게 하고 새살이 돋아나게 한다니! 사실 우리네 인간들도 전쟁터에서 궁하면, 송진으로 흉탄 맞은 부위의 피막이용으로 송진을 응용해볼만 하겠다. 제약회사들도 멧돼지의 송진을 응용하면, 분명 좋은 생약을 얻을 것만 같다.
위 여러 상처치료제 이전에 내가 이미 체험했던 치료제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내 남 없이 우리는 ‘머리에 소똥도 아니 벗겨진 놈들’이었다. 머릿밑에 버짐이 많이들 났다는 말이다. 뿐더러, 얼굴 여러 곳에 마른버짐 등이 잘도 나곤 하였다. 나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양 입꼬리에 버짐이 일어 마련 없었다. 그러자 구두쇠 같았던 내 양친은 웬일로 꽝엿까지 다 사주었다. 실은 그 꽝엿을 그냥 먹으라고 사준 게 아니었다. 그 엿을 녹여 가마솥 밑바닥에 ‘꾹꾹’ 찍어 검댕이를 묻히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 검댕이 묻은 엿가락을 버짐 난 곳에 거듭거듭 찍으라고 하였다. 그러면 찐득찐득한, 검댕이 묻은 엿가락에 버짐이 묻어 떨어져 나온다고 하였다. 그 달짝지근한 엿을 안타깝게도 그렇게 썼다. 하지만, 양친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버짐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때도 요즘 못지않게 응용력이 뛰어났던 소년 윤 아무개. 그 소년은 화로의 불이 사위면, 재를 입가 버짐 자위에다 엄지검지로 집어 얹어 보았다. 그러자 ‘자르르 자르르’ 버짐균(?)이 타는 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재는 잿물, 잿물은 알칼리, 알칼리는 살균과 표백... . 효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로부터 50여 년 세월이 흐른 몇 해 전 나는 이상한 증세를 겪어야만 하였다. 그렇잖아도 농부인 까닭에 자외선 노출이 심해 노화(老化)가 가속화 된 터. 그 버짐 자위가 마치 검버섯처럼 변해 있더라는 거 아닌가. 남 보기 흉해 피부과에 갔더니, 레이저치료로 그 침착색소의 살갗을 태우면 되겠다고 했다. 단, 한 차례가 아니라 수차례 시술을 하고, 후시딘 연고를 바르는 등 사후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의사선생님은 일러 주었다. 비교적 성실히 그 지시를(?) 따랐다. 해서, 지금은 흑인 테너 색소폰의 대주자였으며 내가 존경해마지 않던 고(故) ‘실 오스틴’의 연주곡명이도 하지만, 내 얼굴의 ‘검은 상처의 브루스 ’는 어느 정도 감추어졌는데... .
내 아픈 상처의 기억은 거기에서 끝났지 않았다. 피라미 낚시, 다슬기 잡기 등에 혼이 빠져 지냈던 나. 냇가에서, 야간에 발바닥을, 깨진 유리병에 ‘썩둑’ 베여 온 적이 있었다. 심야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이웃집 할머니과수댁(寡守宅)은 급히 달려와, “이 일을 어쩔꼬? 이 일을 어쩔꼬? 애기 엄마, 내가 꿀병을 가져왔으니 이 꿀병에 남은 꿀 막지(찌꺼기) 얼른 남편 발바닥에 발라주세요. 그러면 봉합수술보다 더 신기하게 갈라진 발바닥이 딱 붙을 거구만요.” 했다. 참말로 신기한 일. 봉합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꿀만 해진 상처부위에 발라도 감쪽같이 아물더라는 거. 꿀은 그러한 위력을 발휘했다. 내가 종종 경험하는 바, 상처치유에는 이밖에도 ‘알로에’ 추출물도 아주 뛰어난 힘을 발휘한다.
이제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친구 말마따나, ‘하나뿐인 자기 몸을 너무 학대해서는’ 아니 되겠지만, 내 몸의 상처는 매년 여름철에 겪는 일종의 연례행사다. 또 견딜 만하거니와 치료제도 넉넉한 편이다. 곧 가을이 되면, ‘헌데’마다에 딱지가 생겨, 나는 여름날의 추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손톱으로 긁어낼 것이다. 마치 ‘(동전으로) 긁는 복권’처럼 그렇게 긁어낼 것이다. 어차피 어른들 말마따나 '헌데 딱지가 내 살이 될 수 없으니'! 하지만, 아직도 우리네가 10대에 겪었던 일들이 이 지구상에 남아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 아프리카 난민들의 아가들이 배고파하고, 벌레 등에 뜯겨 파리가 떼 지어 달려드는 등의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너무도 생생히 보게 된다. 종종 난민들을 돕고자 애쓰는 유명인사들도 보게 된다. 정말 가엾다는 생각. 반면, 우리는 위와 같은 몇몇 조악(粗惡)한 치료법을 한낱 옛 이야기 정도로 여기며, 너무도 풍요로운 의료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저 우수한 효능의 약의 도움으로 온전히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도의 호랑이와 우리네 산야의 멧돼지와 벌통 주위를 ‘앵앵’ 날으는 꿀벌들과 어느 농장에서 지금도 무럭무럭 자랄 알로에한테까지 나는 감사해해야 함을 알겠다. 참말로, 우리 세대는 축복받은 세대임에 틀림없다. 지난날 우리들처럼 머리에 소똥 같은 헌데가 나지 않는 요즘의 아이들은, 적어도 ‘머리에 소똥도 안 벗겨진 녀석이... .’란 말을 더는 듣지 않을 테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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