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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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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2)
    수필/신작 2015. 10. 8. 00:50

     

                           

                                          동행(2)

                                   -그녀의 희망 통장’-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일요일을 맞자, 나는 승용차 트렁크에다 피라미낚시 채비, 다슬기 사냥에 필요한 어구(漁具), 막걸리 등을 싣고 재를 넘어 그녀한테로 갔다.

           나는 조수석에 그녀를 태워 둘의 공통적 고향인 청송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녀는 참말로 참새였다. 어찌나 말을 차단지같이 잘 하던지. 참말로, 그녀의 말솜씨는 단지 떡처럼 쫀득쫀득하기만 하였다. 내가 이날 이때까지 들은 그 무수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보다도 곱다는 걸 느꼈다. 그녀가 들려주는 애교 많은 이야기에는 자신만이 겪고, 체화(體化)된 철학이 묻어났다. 나와는 달리, 수많은 책을 읽었으되, 그것이 오롯이 피가 되고 살이 된 이야기들도 많았다. 어쩌면, 그러한 그녀의 삶이기에, 작가인 내가 이처럼 그녀의 사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를 글로 적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있지, 내가 그 인간(남편) 정신 고쳐보려고 머리를 얼마나 짜냈는지 알어? 한번은 어린 것들 둘을 일부러 굶겨 보기도 했어. 그러면 돈 벌어올까 싶어서. 그랬더니, 그것들이 너무 배가 고프던지 꾀를 내더군.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물에다 헹궈 마구 먹어대지 않겠어? 그때 에미인 내 가슴이 얼마나 무너져 내리던지 몰라.”

          그녀 말마따나 그 남자는 인간기생충이었던 거 같다.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 작가, 나는 돈이 필요했어. 그래서 여자로서는 꽤나 힘든 자동차 운전교습소 교관을 시작한 거야. 그러기를 30여 년. 심지어 휴일도 거의 없이 일만 했어. 해서, 지난해에는 드디어 일이 터졌던 거야. 한방병원에 실려 갔더니, 젊디젊은 의사 양반이 내 등짝을 손으로 진맥하더니 괴상한 말을 하더라고. ‘정조를 지키자니 몸이 우네! 이곳에 온통 피가 뭉쳤네!’하면서. 그 의사 양반은 함께 갔던 막내여동생한테까지 들으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겠어? 그때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그렇잖아도 동생들로부터 언니는 꿈만 꾸는 이상주의자! 허당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 마당에.”

          사실 그녀도 사람인지라, 팔자를 고쳐볼 생각을 영 아니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아들 둘도 눈에 밟혔고, 반쪽 실패한 처지에 또 실패할까 그 누구한테도 마음을 함부로 열어줄 수가 없더라고 하였다.

          그녀는 색다른 취미, 색다른 버릇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자신의 예금통장을 두 어린 아들한테 보여주는 일이었다는 거.

          봐라. 우리 희망을 갖자. 엄마의 통장에 이렇게 돈이 쌓여가. 이 통장에 얼마만큼의 돈이 쌓이면 너희들 각각 방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음에는 또 집 평수를 늘리고, 또그런 다음에는 ... .”

          아들 둘은 엄마의 뜻을 고분고분 따랐단다. 남들로부터 애비 없는 호로자식 소리를 듣지 않고 고맙게 자랐다고 한다. 그랬던 아들들을 차례로 장가들이고 각각 일금 오천만원씩 생활자금으로 줬단다. 해서, 지금은 손주들도 여럿 두었단다. 그녀의 큰아들이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란다.

          어머니, 어머니의 희망통장에서 돈이 떨어질 무렵, 드디어 내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되더군요. ”

          중학교 동급생 O’도 강한 듯 여린 여성이라, 다소 탄식조의 말도 하였다.

          근택아, 아니 작가 선생님,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보니, 정작 나의 시간은 없었어. 돌이켜보니, 내 삶은 빈 둥지 같은 거. 훌훌 새들은 날아가고 외롭게 남은 빈 둥지 같은 거. 하지만 너무 낙담하지는 않아. 하루하루 그냥 열심히 살뿐.”

          나는 어줍잖게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내가 믿는 주님께서 자네를 내 가까이 보내신 것 같아. 자네를 수필작가로 기어이 데뷔시킬 거야. 그리고 자네의 자서전은 한국에서 꽤 빼어난 이 수필작가가 써 줄 테니, 안심하시게. 온몸이 차가워 아직 가을임에도 겨울옷을 껴입는 모양인데, 오는 겨울엔 장작을 한 차 해 줄 거야. 아무튼, 우리 더 늙지는 말자고. 급하면 병원에라도 실어다 줄 수 있는 오랜 친구로 남을 게.”

          내 옛 친구 O’의 희망통장에는 거듭거듭 새로운 희망이 저축되길 바라며 이번 글 접는다.

     

           (다음 호 계속)

     

         예고편) ‘동행(3)’에는 백조는 겉보기에는 유유자적하지만, 물 아래 발은 그렇게 바쁠 수가 없다던 그녀의 이야기를 담을 것입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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