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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필가, '테오티와칸'에 오다수필/음악 이야기 2014. 4. 15. 08:32
윤 수필가,’테오티와칸(Teotihuacan)’에 오다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우리 속담에, ‘노느니 염불.’’이란 말이 있다. 오만방자하게시리, 그 많은 수필작가 여러분께, 그 많은 수필작가 지망생들께 말씀 드리겠다. 심심해야만 ‘윤 아무개’ 수필작가처럼 거의 매일 한 편의 수필을 쓸 수 있노라고. 달리 말하자면, 무료해서 어찌 할 방도가 없도록 환경을 만들면, 많은 글을 자주 쓸 수 있게 된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러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는 어느 연수원 사감(舍監)으로 재취업함으로써 타의반자의반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을 더욱 늘렸다.
오늘 초저녁에 이미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 원고쓰기를 뚝딱 마감했다. 그러고는 다시 심심해서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인터넷 검색창에다 ‘팬플룻 연주곡 모음’을 쳤다. 그랬더니, 낯선 뉴 에이지 뮤지션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엘리스 고메즈(Alice Gomes)’. 곧바로 클릭하여 그의 연주곡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글쎄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었다. 첫 곡의 이름이 ‘Teotihuacan’이었다. 내가 왜 여태 그를 몰랐을까? 평소 ‘외로운 양치기’로 데뷔한 루마니아 태생의 ‘장피르’만 팬플룻의 대가(大家)인 줄 알았더니… . 살펴본즉, 그는 여성 연주자이고, 나보다 3년 늦게 세상에 태어난 이고,전통의 팬플룻과 이국적인 타악기 등을 두루 섞어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비를 일깨우는 뮤지션이며, 그녀의 부친은 라틴 댄스 밴드에서 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음악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네티즌은, 친절하게도 다음 문장과 같은 글까지 적어 알려주었다. ‘유럽의 신대륙 진출에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아즈텍문명의 영향을 받은 인디언 팬플룻곡’이라고.
호기심 많고, 무료함까지 잘 타는 나. 그러한 ‘괘(卦)’, 아니 단서(端緖)하나만 잡으면 하룻밤을 꼴딱 새기에 충분하다. 우선,나는 그녀의 성(姓), ‘고메즈’를 통해서 멕시코계임을 쉽게 추정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핏속에는 아즈텍의 기질이 있을 법. 피는 못 속인다고 하였으니,그녀는 이젠 멸망해 사라진 아즈텍 그 본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굳이 그러한 전통악기로 아즈텍의 슬픔이 배어나는 곡을 연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어느새 그녀가 애절한 가락으로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아즈텍문명의 중심도시였던 ‘테오티와칸’에 닿았다. ‘해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sun)’가 눈 앞에 우뚝 서 있다. 서기 150년경 볕에 말린 벽돌과 흙으로, 70미터 높이로, 248 계단 쌓아올린 피라미드. 세계에서 큰 피라미드 중 하나라고 한다. 1908년, 그들 국왕의 지시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 테오티와칸 중심거리는 ‘죽음의 길(The avenue of the Dead)’로 명명되어 있다. 그들 아즈텍인들은 잉카인들 못지않게 문명을 꽃피웠다고 하는데… . 서기 원년부터 서기 500년까지만 해도 인구 10만으로 전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였음에도 그렇게 한 순간에 멸망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멕시코시티에 해당하는 ‘텍스코코 호수’ 위에다 인공 섬을 만들고, ‘테노치티틀란’이란 도시를 만들어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고 하는데… . 신전과 피라미드와 정교한 금,은,동 세공과 벽화와 상형문자와 달력과 종이와 ‘태양의 돌’ 등 온갖 유물을 두고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은 스스로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세계관과 신앙이 문제였다. 세계가 수평과 수직 두 개로 되어 있다고 믿었으며,수직 세계에는 지옥과 천상이 따로 있어 용감한 전사와 전사한 군인과 출산 중 죽은 여인네만이 천상에 간다고 믿었다고 한다. 게다가, 섬기는 신도 너무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전쟁과 태양의 신이라는 ‘우이칠로보츠뜰리’를 너무 섬긴 게 화근이었다. 그들은 잉카인들이 그랬듯, 해가 지면 다음날 다시 떠오르지 않을세라, 인신(人身)을 제물로 바치곤 하였다. 인신을 계속 바치자면 전쟁도 많이 치러 노예로 잡아야 했을 것은 뻔하다. 전쟁을 거듭거듭 치르는 가운데, 민심이 이반했을 것도 뻔하다. 이런저런 일로 백성들 가운데는 불만세력이 자꾸자꾸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 어느 야심가가 나라를 무너뜨리려 덤벼들었다. 그가 바로 에스퍄냐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 1484~1547)였다. 그는 아즈텍으로 잡입하여 아즈텍 출신의 영특한 여자를 정부(情婦)로 둔다. 그는 그 정부를 통해 온갖 기밀을 캐내게 된다. 그의 수법은 잉카제국을 침략하여 정복한 ‘피사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잉카인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퍼져 나갔다.
”구원자 ‘비라코차’가 오실 것이다. 그분은 하얀 낯을 하고 오실 것이다.”
그런데 아즈텍인들한테도 그것과 비슷한 말이 퍼져 나갔다.
“500여 년 전 유랑을 떠난 우리의 최고신 ‘꿰짤코아들’께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사실 백성들도 어리석었지만, 제국의 수장이었던 ‘몬테스마 2세’가 더욱 얼빠진 이였던 모양이다. 그는 코르테스 일당의 행색을 보고서, 그가 구원자인 줄 알고 무저항으로 받아들였다지 않은가. 코르테스는 고작 600여명의 군사와 10여 척의 배로 500만 명의 아즈텍 군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니 ... . 하기야 국내 불만세력이 10만 명에 달했고, 그들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제국을 쓰러뜨리는 데 적극 거들었거나, 최소한 수수방관은 했을 터. 또 하나 중요한 패망의 원인은 천연두와 홍역의 창궐이었단다. 내가 살펴본 바, 무슨 연유인지 에스파냐가 침략했던 나라는 공히 그러한 전염병이 창궐했다. 잉카제국이 그러했고, 마야가 그러했고… .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일부러 묻혀 들어간 것은 아닐는지. 이를테면, 생물학전 같은 거. 어쨌든, 그렇게 문명을 꽃피웠던 아즈텍제국은 소수에 지나지 않은 에스파냐 침략자들한테 제국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게 1521년의 일이다. 밀림지대에 70여개 소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마야제국도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 길로 아즈텍텍과 마야의 후예들한테는 오랜 기간 불행이 이어져 왔다. 바로 멕시코인들이 그들이다. 1823년 그들이 에스파냐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약 300년 동안 험난한 길을 걸었지 않겠나? 실제로 현재 멕시코는 에스파냐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열인 ‘메스타조’가 무려 60%를 차지하고, 원주민은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1845년 미국이라는 탐욕적인 나라가 본디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를 자기네 영토로 챙겨넣으려고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여러 차례 내전도 치렀다. 실로 통한(痛恨)의 세월 아니었겠는가. 한 때 찬란했던 문명을 지녔던 멕시코. 그곳의 전통음악이 그리 쾌활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늘 밤 내가 영문도 모르고 클릭한 ‘엘리스 고메즈’. 그녀한테도 아즈텍의 피가 흐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슬프게 들릴 리가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아즈텍의 수도와 같은 이름인 ‘Teotihuacan’만 들었다. 그는 그 유적지를 찾아들었다가 영감을 얻어 그 곡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하는 악기는 그냥 팬플룻이 아닌 성 싶다. 그것은 인디오의 팬플룻이라고 할 수 있는 께냐(quena)가 아닐까 하고서. 뿐만 아니라 아즈텍 전통악기인 ‘레인스틱(rain-stick)’도 연주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인디오 전통악기인 차랑고(charange)도 이따금씩 메고 나올 것만 같고.
어쨌든, 그녀는 초저녁부터 이 새벽까지 아즈텍제국으로 역사여행을 함께 와 주었다. 고맙기 한량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곡 ‘Teotihuacan’은 그녀가 본향에 대한 향수와 서러움을 한숨 대신으로 취주(吹奏)한 것 같다. 그것은 어이없이 앗긴 이들의 상처 같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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