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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
    수필/음악 이야기 2014. 4. 15. 08:35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                     

    -J.L.이란 애칭을 지닌 음악인-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그는 J.L.란 애칭과 함께 행복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음악인이다. , 흥겹게 춤추는 벨벳 턱시도의 신사로도 불린다. 그는 작곡가 겸 연주자 겸 자신의 이름을 딴 팝오케스트라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가 누구일까?  바로 독일이 낳은 음악의 거장,제임스 라스트(James Last; 본명 Hansi; 1929~). 미리 말하지만, 위 문장에 이미 그의 음악세계가 다 함축되어 있다. J.L., Joyous(즐겁고)Lively(경쾌하게)의 약칭이다. 행복 전도사, 세대간 격차를 없애고 국적도 뛰어넘어 지구촌에 즐겁고 경쾌한 음악을 선사하는 데서 비롯된 별칭이다. 그리고 흥겹게 춤추는 벨벳 턱시도의 신사, 그는 우리가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애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나는 그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그의 이름을 딴 제임스 라스트 오케스트라의 연주곡 Who are we(산타마리아의 기도)Over the valley over the mountain(산과 계곡을 넘어)연속듣기로 틀어두고서. 그는 1929년 독일의 작은 도시 브레멘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동물음악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피아노 가정교사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수강생들한테 피아노 연주강의를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음악가정교사는 음악적 소질이 없으니 진작에 포기하라고 이른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4세가 되던 해 브라멘 음악원에 들어가 더블베이스를 공부하게 된다. 17세가 되던 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인 브레멘 댄스 오케스트라의 베이스 연주자로 입단함으로써 직업 음악인으로 첫 발을 떼어 놓게 된다. 19세가 되던 1948년 그는 형인 로버트와 동생인 베르너와 함께 가족 이름을 딴 라스트 베르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발표회를 갖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그가 35세 되던 1964Polydor 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이듬해인 1965년 비로소 첫 앨범 Non stop dancing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한편, 그가 41세 되던 1970년부터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홍콩 등지로 순회 공연하면서 세계적인 팝오케스트라의 면모를 과시하게 된다. 그는 그곳들을 돌면서 민속음악을 접했고, 거기에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더해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음악으로 만들어갔다. 편곡은 물론이고 작곡도 부지기수로 했다. , 내가 왜 굳이 그때마다의 그의 나이를 표시하는가 하면, 그는 여느 음악인들보다 출세가 늦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추구해 온 음악세계는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한마디로, 종전 독일 팝뮤직이 지녔던 엄격성과 단순함을 완전히 깨부순 것이었다. 파티음악, 댄스음악, 라틴음악, 세미 클래식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서 재창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령, ABBA의 어느 노래가 그에게 닿으면 이내 클래식이 되어버린다고 하는 음악평론가까지 있다. 스테레오 효과를 최대화하고 상쾌한 연주로 일관하는 게 그의 음악 특징이라고 한다. 사실 독자님들께서도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곡 가운데 몇 곡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니 들은 적이 없다. 왜냐고? 요즘도 라디오에서나 텔레비전에서 제임스 라스트 악단의 연주곡은 심심찮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몰랐더라도 그 곡이 어느 악단의 무슨 이름의 연주곡인지 정도만 몰랐을 따름이다. 그는 워낙 많은 음악을 세상에 선보였고, 그의 음악은 곡마다 아름다워서, 어느 특정작품을 대표작으로 뽑는다는 게 무리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위에서 언뜻 소개한 산과 계곡을 넘어를 비롯하여 아다지오(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의 편곡), 콘웰의 아침, 낙원의 새, Missing 등을 꼽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음악애호가라는 나도 제임스 라스트의 그 많은 곡 가운데 아직 몇 곡밖에 모른다. 찾아 들을수록 더 맛깔스런 곡이 자꾸자꾸 새롭게 나타난다. 어젯밤 거듭듣기로 잠결에 흘려놓았던 Yosaku가 그 한 예다. 일본인 이름이라고도 알려진 곡이다. , 일전에는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동영상까지 보면서 듣다가 Sunset at Flamingo park에 금세 빠져든 적도 있다. 해질녘의 쓸쓸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하였던 그 곡. 그의 오케스트라의 리코더 연주자라는 이가 리코더로 곡의 주제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 값싸기 그지없는 리코더 하나로 나를 그토록 사로잡다니! 나는 그 남정네한테도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자막으로 나온 그의 이름 Ashstarr를 따다가 여러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기까지 하였다. 아쉽게도, 그는 제임스라스트 오케스트라의 한 단원일 뿐인지 그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무튼, 제임스 라스트는 수억 장의 레코드가 전세계적으로 팔렸으며, 온갖 음악상을 수상한, 음악계의 거장임에는 틀림없다.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잡은, 보기 드문 음악인이다.

     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면 너무 싱겁지 않겠나? 제임스 라스트는 자신만 세상에 우뚝 서려 했던 이가 결코 아니었음을 나는 알고 지낸다. 사실 나는 그러한 점 때문에 그의 음악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세 음악인도 대성케 하였다는 사실. 한 음악인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리차드 크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 본명 Phillipe Pages; 프랑스; 1953~)이고, 또 한 음악인은  팬플룻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게오르그 장피르( Gheorghe Zamfir; 루마니아;1941~). 또 한 음악은 호레아 크리샨(Horea Crishan;루마니아;팬플룻 연주자;1945~). 이들에 관해서도 간략간략 소개함이 좋겠다.

    리차드 크레이더만. 그는 피아노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어깨 너머로 피아노를 공부하였고, 엿 살 때 할아버지로부터 얻은 낡은 피아노로 연주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16세 때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후일 파리음악원에서 정규음악교육을 받는다. 그는 23세가 되던 1976폴 드 세느비유라는 이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였다. 그는 자기의 어린 딸 아드닌느를 위해 곡을 적은 다음, 훌륭한 연주자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뽑힌 이가 크레이더만이다. 크레이더만은 그 곡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위의 그 거장 제임스 라스트와 협연함으로써 대성공을 이룬다. 그의 데뷔곡이다. 무려 22백 만장의 음반이 팔렸다고 한다. 그는 그 한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그밖에도 내가 좋아하는 가을의 속삭임별밤의 피아니스트도 연주했다.

    게오르그 장피르. 그는 포도농사를 하는 농부 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현악기인 밴조를 다루기 시작해 아코디언으로 연주악기를 바꾸게 된다. 입학한 음악학교 과정에서 아코디언 과목이 없어지자, 팬플룻으로 전공을 바꾸어 독학하게 된다. 그러던 그에게 낭보(朗報)가 날아들었다. 제임스 라스트는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여 국적을 뛰어넘어 그를 위해 곡을 한 편 적어주게 된다. 그게 바로 외로운 양치기. 1975년 그의 운명을 확 바꿀 일이 생겨난다.  제임스 라스트와 그 곡 외로운 양치기를 협연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둔다. 사실 장피르 뿐만 아니라 제임스 라스트마저도 출세시킨 곡은 그 어느 곡도 아닌, 바로 그 외로운 양치기였다. 장피르는 팬풀룻의 연주방법 개선과 악기 개량 등의 위대한 업적도 이룩해 내었다. 한마디로, 그 한 곡으로 팬플룻까지 대중화했다. 나는 그의 연주곡 가운데 여름비도 무척 좋아한다.

    호레아 크리샨. 그는 제임스 라스트가 장피르 이후 발굴해낸 제2의 장피르다. 그도 제임스 라스트와 리차드 크레이더만과 장피르와 협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연주자로 우뚝 솟게 되었다.

    이제 다시 엄연한 수필작가로 돌아온 나. 음악의 거장 제임스 라스트의 성공 사례에 관해 무엇인가 짚이는 게 있다. 만약 그가 함량미달(?)이었던 그 음악가정교사의 말만 곧이곧대로 들었더라면, 우리는 세기와 국적을 뛰어넘는 그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제임스 라스트는 자신의 성공 뿐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 숨어있는 인재를 그렇듯 낱낱이 찾아내어 성공케 함으로써 그들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애호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다. 모르긴 하여도, 아직도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으라는 . 그러한 점에서도 그는 분명 행복 전도사. 나는 언제고 그러한 위대한 수필작가를,문학비평가를 만나게 될는지 . 

     

    (다음 호 계속)

     

    창작후기)

    사실 나는 그 오랜 기간 동안, 혼자 듣기에 너무 아까운, 아름다운 음악을 누구랑 함께 듣고파서 편지를 쓸 적마다 추신에다 음악 한 곡을 붙이곤 하였다. 이제 그러한 방법 말고도 이렇게 시리즈물로 적을 수 있으니, 그것도 많은 독자님들께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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