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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딸
    수필/신작 2014. 4. 15. 08:33

    움딸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위 제목으로 설정한 움딸 에 관해서는 이 글 맨 마지막에 가서야 적으려 한다. 그렇게 해야만 독자님들께서 호기심 등으로 하여 한눈 팔지 않고 끝까지 읽으실 게 아닌가. 대신, 다른 이야기부터 슬슬 해야겠다.

    농부인 나는 해마다 과일나무 전정(剪定)도 손수 한다. 나무마다 특성이 있어, 전정방법도 달리 해야 한다. 그 방법을 강전정(强剪定)과 약전정(弱剪定)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런데 이웃에 별장을 짓고 들어와 사는 두 분은 전정의 기본도 모른 채 마구 잘라댄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 권ㅇㅇ, 건축학과 출신 박ㅇㅇ가 그들이다. 나는 안타까워 일전에도 그들한테 각각 일러주었다.

    권 교장선생님,제가 해마다 말씀드렸지만요, 복숭아 나무 전정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듯 단발머리를 자르듯 강전정을 하면, 도장지(徒長枝;더북나기;叢生)가 나와서 뒷감당을 못 할 겁니다.

    그러면서 전정가위를 건네받아 시범을 다시 보여주었다. 물론, 복숭아는 잔꼴[盞型]로 만들어 토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해야함을 덧붙였다.

    또 조금 더 오다가 승용차를 세워둔 채 박ㅇㅇ에게도 충고를 했다.

    박 사장님,단감나무 전정의 핵심은 강전정입니다. 일반감과 달리, 꽃이 많이 오니까 열매도 자연 잘아지거든요.

    독자님들께서도 전정의 기본원리를, 굳이 도해(圖解)를 하지 않더라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리라. 이처럼 나무마다 열매 맺는 습성도 다르고 눈[]을 내어 놓는 습성도 다르기에, 어느 개그맨의 말마따나 그때때그때 달라요.. 그러나 전정을 하기에 앞서 갖추어야 할 기본상식만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에 관한 사항이다. 맹아(萌芽), 잠아(潛芽;潛伏芽;伏芽;dormant bud; latent bud), 부정아(不定芽) 등등. 물론, 정상적인 눈[]은 맨눈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어,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눈들은 정상의 가지나 순에서는 볼 수 없는, 숨은 눈이며 잠재된 눈이다. 어떤 나무가 비상시에 활용하는 눈들이다. 하나하나 설명하기로 하자. 우선 맹아. 땅거죽에서 더북하게 새순을 내어놓도록 하는 눈이다. 그러한 성질을 지닌 나무를 일컬어 맹아력이 빼어난 나무라고 한다. 참나무류,사과나무,아까시나무, 느릅나무, 쥐똥나무,갈슘나무 등이 맹아력이 대체로 뛰어난 나무다. 그런데 비해,대부분의 소나무는 맹아력이 없다. 그래서 밑둥을 자르거나 가지를 자르거나 하면 그곳에서 새순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소나무 가지치기에 꽤나 중요한 사항이다. 분재 소나무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관련성이 깊다. 그러나 일본에서 도입된 소위, 리기다 소나무는 예외적으로 맹아력이 뛰어나다. 대부분의 소나무가 두 개씩 바늘잎을 지녔는데, 리기다 소나무는 세 개씩 바늘잎을 지닌 것도 특이하다. 다음은 잠아. 위에서 그 별칭을 괄호속에다 열거해두었으므로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시에는 내어놓지 않는, 숨은 눈이다. 식물은, 특히 나무는 참으로 신기한 존재다. 토양 아래 신체 일부가 묻히면 뿌리를 내리려고 하고, 신체 일부가 토양 위에 드러나면 어느 부위에서 눈을 틔워 새 순을 내어놓으려는 성질을 지녔다. 평소에는 가지에다 겨울눈[冬芽]을 달아두어, 봄과 함께 꽃으로,잎으로,가지로 분화한다. 그런데 가지가 꺾이거나 가지에 병이 들거나 하는 비상사태를 맞이할 때가 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숨겨두었던 눈 즉, 잠아를 내어놓음으로써 중단 없는 생명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끝으로, 부정아. 이는 잠아와 유사한 개념을 지녔다. 일전 내가 쓴 꺾꽂이라는 수필에서 꺾꽂이의 기본원리는 부정근(不定根) 얻기라고 했다. 그 말에 대응되는 개념의 눈이 부정아.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맞았을 때 내어놓는 눈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내 이야기는 잠아에 관해 세부적으로 접어든다. 물론 모든 나무가 그러한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나의 주력과수인 감나무가 아주 좋은 예다. 감 농사는 여하히 키를 낮추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그대로 두면 저 창망(蒼茫)한 하늘 꼭대기까지 자라는 나무다. 그렇게 되면 농약살포나 감 따기 등에 수고로움이 따른다. 그래서 너무 자랐다 싶은 놈들은 아름드리 가지일지라도 눈 지긋이 감고 사정없이 베도 된다. 그러면 그 굵은 가지에서,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눈이 새로 나온다. 그것이 바로 잠아다. 그러니 어떤 독자님께서도 자기네 감나무가 키 높이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곳을 톱으로 베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당년에야 수확을 할 수 없겠지만, 이듬해에 더욱 왕성한 가지를, 그것도 더북나기로 내어 놓는다. , 그렇게 강전정을 하게 되면 새 가지를 더북하게 너무 많이 내어놓게 되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한 가지를 두고, 농부들은 도장지라고 한다. 내가 경험한 바 영산홍과 배롱나무(나무백일홍)도 잠아능력이 빼어난 나무였다. 그러기에 독자님들께서는 이들 나무들한테는 소담스런 꽃을 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강전정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부정아에 관한 기초지식도 잠아에 대한 기본상식만큼이나 중요하다. 가령, 나무의 원줄기 끝을 자르면, 그 잘린 부위에서 수많은 새 가지가 나오더라는 사실. 내 경험상 복숭아가 그랬고, 자두가 그랬고, 보리수가 그랬고 .  잠아와 부정아의 관리(?)는 전정의 기본상식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위와 같은 사실로도 나는 그 동안 농부로서 작가로서 몇 가지를 더 응용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몇 가지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더 많은 잎을 따 먹기 위해서는 들깨의 원순을 잘라야 한다는 거며, 더 많은 콩을 얻기 위해서는 콩순을 잘라야 한다는 거며 . 그것들은 농부로서 지혜였다. 한편, 작가로서 유추해낸 것은 가히 충격적인 사실이다. 옛날옛적에 전장(戰場)에서 장수가 죽으면, 그 군대는 적에게 투항하고 말았다는 사실. 참으로 어리석은 처사였다. 장수의 죽임 당함은 고작 나무의 원줄기 하나를 잃은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일. 얼른 사태를 수습하여, 무리 가운데 하나를 장수로 옹립하면 그가 원줄기로 자라나 무리를 이끌 터인데 . 잠아니 부정아니 하는 개념과 그에 상응하는 전정원리만 제대로 알았던들 . 우리네가 사회 지도자를 뽑는 과정도 전정 등으로 나무를 관리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놈이 그 놈인데 뭐!하면서 이른바, 묻지마 투표를 하고서, 짧게는 4년 길게는 5년 동안 국민이 아닌 궁민(窮民)이 됨에도 그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가. 차라리 다소 부족하나마 될성부른 나무를 우리가 옹립하고, 우리가 키워나가는 게 옳거늘 . 그러한 어리석음의 반복은, 전정을 엉터리로 하는 농부에 비유할 수가 있겠다.

    이제 내 이야기를 슬슬 정리할 때가 된 듯하다. 사실 위와 같은 내용의 수필도 몇 차례 적은 바 있어, 재탕 삼탕의 기분 없지는 않다. 이 점 독자님들께 양해를 구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글 제목으로 설정한 움딸에 관한 설명만 달랑 남겨두었다. 시집 간 딸이 죽은 뒤에 그 사위가 다시 장가 든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장인장모가 친딸처럼 여겨 부르는 말이다. 여기서 -이란 맹아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 수 있다. 움이 돋듯, 즉 맹아를 내어놓듯 사위의 그루터기에 새 색시가 돋는 걸 이르는 말이다. 그 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장인장모의 사위사랑과 딸사랑과 외손주 사랑이 듬뿍 담긴 말이다. 친딸을 대하듯 움딸을 대함으로써 그 가정이 평화롭게 되기를 바랐던 우리 조상들. 참으로 좋은 풍속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내 살붙이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나의 셋째 누님은 53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는 우리 열 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였다. 셋째 딸은 선도 아니 보고 데려간다지 않던가. 그처럼 고운 분이었다. 셋째 매형은 그로부터 11년째 혼자 산다.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여 세 장가를 들도록 우리들이 권해도 한사코 사양한다. 우리가 아예 중신을 해주려고 해도 거절한다. 내 양친이 살아계셨더라면, 당신들은 어찌해서라도 움딸 하나를 얻었을 텐데 . 어찌 되었든, 식물이 잠아와 부정아를 지녔다는 게 우리네 인간한테 얼마나 유익한지 모른다. 그들을 본받아 우리도 잠재능력을 때맞춰 발휘해야 한다는 거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렇게 설계해 주신 하느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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