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참 좋은 분
    수필/신작 2014. 4. 15. 08:37

    참 좋은 분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어젯밤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수원에 사는 생질(甥姪)한테 안부전화를 참말로 오래간만에 걸었더니, 그 늦은 시간임에도 회의 중이라며 자기가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였다. 한참 후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가 늘 대견하다고 여기며 지내왔기에 인사치레를 또 하게 되었다.

    내가 무척 아끼는 목사님(성령이 충만한 걸 두고 내가 붙인 애칭이다.)! 자네는 학사 출신이면서도 박사들과 어울려 연구팀에서 일하고, 해외출장도 잦아 이젠 자주 연락도 할 수 없으니 .

    저쪽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외삼촌! 요즘도 글 많이 쓰고 계시겠죠? 죄송해요. 요즘은 바빠서 인터넷에서 외삼촌 글을 찾아 읽어볼 겨를도 없어요.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제법 길어졌다. 그 통화 내용 가운데는 전주의 김학(金鶴) 선생님이란 분이 70 노인임에도 나의 글을 매일매일 당신의 개인 블로그와 당신네 문학회 블로그에다 꼬박꼬박 올리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생질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분 김학 선생님이 인텔리이신 것 같다고 존경심까지 표했다. , 그 연세에도 컴퓨터를 자유자재 운용하고 계시며 그처럼 열정적이시라는 것이다. 특히나 그는 세계적인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터라, 컴퓨터며 휴대전화며 전자장비 운용에 능한 분을 더욱 존경할 터.

    사실 내가 그 동안 수필작가로서 스스로 외롭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해 왔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그에 대한 메아리를 보내 온 이도 거의 없었다고 심술 아닌 심술을 부린 적도 많았다. 그 숱한 문학잡지 등에서도 원고청탁을 가뭄에 콩 나듯 하였다고도 생각해 왔다. 그런데 생질의 말을 듣고, 그분 김학 선생님께 무척 죄송하다는 생각을 이내 하게 되었다.아울러, 그분께 내가 인간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하여 여러분한테서 두루두루 사랑 받는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게 지내왔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잠시 미루어두도록 하자. 대신, 나의 살붙이와 피붙이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내 어머니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여러 작품에서 적었다. 그 요약본에 해당하는 작품은, 이미 인터넷상에 발표한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독자님들께서는 그 작품을 검색하여 읽으시면 수필작가 윤아무개의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대충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글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빠뜨렸다. 말년에 어머니는 양면괘지에다 육필(肉筆)로 편지를 써서, 그 편지를 열 개로 복사하고 코팅까지 해서 지니고 있었다. 그 편지의 사본은 우리 열 남매한테 각각 나누어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 편지사본을 챙기지 못하였다. 어깨너머로 배운 국문(國文)이라, 받침도 더러는 틀리고 소리나는 대로 적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노파(老婆)가 문방구에서 복사할 생각은 어떻게 하였으며 또 그것들을 코팅할 생각은 어떻게 하였을까? 그 내용은 당신의 남편인 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여간 대단한 분이었다. 시대만 잘 탔으면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분이다. 하기야 외할머니는 부잣집에서 무남독녀로 자랐으며, 외할머니의 양친은 가정교사를 데려다가 당신네 딸한테 사서삼경 등도 가르쳤다니 .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내 어머니도 예술가 기질이 있었을 것은 뻔하다. 사실 내가 글 나부랭이를 적어대는 것도 어머니의 유전형질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모계 쪽 유전형질은 나로서 끝난 게 아니다. 위에서 소개한 생질은 넷째 누님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군대에 가서 적성검사를 받을 때에 “‘피아노를 쳐본 적 있느냐?’’는 말에 큰소리로 !했단다. 사실은 음악과는 전혀 인연을 맺지 않았던 전자공학도다. 그랬던 이가 3년 동안 군악대에서 클라리넷만 불고 나왔다. 그런 거 보면 우리네 군대는 젊은이들에게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일도 한다. 그의 클라리넷 연주솜씨는 아마투어 수준을 능가한다. 뿐더러 오카리나 등 여타 악기도 금세 연주하는 걸 똑똑히 보았다. 만돌이농원에 와서 클라리넷을 연주한 적도 있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의 결혼식은 내가 본 결혼식 가운데 가장 이채로웠다. 그는 신부가 입장할 적에 엘가(Edward Elgar, 1857~1934)사랑의 인사를 연주하여 신부를 맞았다. 이쁜 생질부는 참 좋겠다. 남편이 요즘도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클라리넷도 연주해줄 거라고 상상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사실 나는 친조카,종질(從姪),생질, 종손(從孫) 등이 엄청 많다. 그들 나름나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그 가운데도 위에서 소개한 생질을 무척 사랑한다. 종교도 같지만, 그가 외가(外家) 쪽 피를 받아 나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라는 점으로 하여서 더욱 사랑한다.

    사실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있다. 그는 내 둘째누님 맏이이며 내 고향 청송의 군청에서 축산계장으로 지내는 이다.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그. 그는 평소 나더러,예술가는 하나같이 똘아이이던데, 외삼촌도 그러해요.하면서 비아냥대던 이다. 그랬던 그가 몇 해 전 어느 문학잡지에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아 시인이 되었다며 데뷔작이 실린 책과 함께 축하해달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사실 축하해야 할 일이었지만, 내 속내는 제법 복잡했다. 나 하나만으로도 이렇듯 벅찬데, 내 피붙이 하나가 또 그 불구덩이에(?) 빠져들었는가 싶어서. 아무튼, 그도 그의 외할머니인 내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눈부신 문업(文業)을 닦아가길 바랄 따름이다.

    이제 잠시 미루어 두었던 그분, 김학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들려드려야겠다. 그분을 안 지는 꽤 오래 된다. 내가 대학 재학시절이었던 1970년대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문인협회 기관지인 <<월간문학>> 신인상에 수없이 도전했다. 물론, 최종심에 오른 일도 빈번했다. 모르긴 하여도, 한국 수필계에서 신춘문예나 신인상 등에 투고한 회수가 가장 많고 최종심에 오른 적도 가장 많은 이를 꼽으라면 윤아무개 일 것이다. 이는 빈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경쟁자(?) 김학이라는 분이 전화번호라는 수필로 신인상을 받은 걸 알게 되었다. 당시는 요즘과 달리, 이사를 하면 전화번호가 자연 바뀌게 되었는데, 애지중지했던 전화번호가 바뀌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적은 글이었다. 무생명체인 전화번호에다 생명을 불어넣어 적은 것이 특징이었다. 나는 그 비싼 장거리전화요금 아랑곳 않고 그분께 축하전화도 드린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분을 알게 된 것은, 내가 후일 <<월간문학>> 잡지를 받아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분은 월평에다 내 이야기를 거지반 적어 두었던 것이다. 대체로,지난 호에 실린 글에 관해서 평을 적는 게 관습처럼 되어있으나, 그분은 정작 그 잡지에 실리지도 않은 나의 글, 문장수련에 관해 수필계에도 몰래 카메라가 있다 요지의 글을 적으신 것이다. 문장수련이란, 지금도 어느 매체에 연재하는 일종의 문장이론이다. 기성수필가들의 발표작에서 잘못된 문장을 찾고, 거기 합당한 문장이론을 제시하며, 그 글을 바로잡아보는 형태로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하는 일을 두고, 문장치료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장치료사라는 직함(?)을 스스로 붙여쓰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알게 된 분이다. 그러고서 나는 잠적 아닌 잠적을 한 수필가였다. 거의 10여 년 동안 글쓰기를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어느 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글 한 편이 어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게 계기가 되어, 어떤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거의 신들린 사람처럼, 거의 하루에 한 편의 수필을 쏟아내게 이르렀다. 나는 그렇게 적어대는 글을 매일 새벽 몇 분한테 e메일로 부치게 되었는데, 김학 선생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당신의 개인 블로그와 당신네 문학회 블로그에 올리신 것이다. 오늘은 그 수효 등에 관해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마로니에 샘가 블로그에 본디 나의 필명 윤ㅇㅇ으로 올려진 게 2011.9.27.부터 2014.3.14. 현재까지 정확히 450편이다. 또 같은 블로그에 윤요셉이란 필명으로 올려진 게 2014.1.20.부터 2014.3.17. 현재까지 총 44편이다. 둘을 합치면 494편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이중으로 올려진 글도 있지만, 30여 개월만에 500여 편을 쓴 셈이다. 내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30여 개월 동안 매일 아침 나의 글을 받으셨으며 곧바로 회원들과 일반독자들한테 선모이기 위해 그렇듯 블로그 등에 올리셨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은가. 그 작업이 편당 1분씩 소요되었다 할지라도, 누적하면 엄청난 수고를 하신 것이다. 그렇게 올려진 글은 또 많은 분들이 퍼나름으로써 나를 한국의 윤아무개 수필작가로 알려지게 하신 게 분명하다.

    요컨대, 나와 나의 생질들 둘은 내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술가이자 생활인이 되어 있다. 진심으로 고인에게 감사 드려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주의 김학 선생님 덕분으로, 나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다. 사실 한번도 찾아 뵈온 적 없는 이한테 이렇듯 큰 사랑을 베풀어주셔도 되는지 여쭤보고 싶다. 그것은 크나큰 특혜임에 틀림없다. 그분의 수고와 사랑에 머리 조아려 인사 드리는 한편, 기대에 어긋남 없이 끊임없이 창작에 힘쓰겠노라고 다짐하며 글 접는다.

     

    작가의 말)

     이처럼 글로써라도 기워 갚아야 할 것 같아서요.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밭에서  (0) 2014.04.15
    고르디우스의 매듭  (0) 2014.04.15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봐  (0) 2014.04.15
    움딸  (0) 2014.04.15
    '꺾꽂이'에 관해  (0) 2014.04.1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