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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혹은 '띄움'수필/신작 2015. 11. 2. 21:42
‘뜸’ 혹은 ‘띄움’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요즘 흔히 쓰는 말 가운데에는 “(그는 최근 들어) 한창 뜨는 사람이야!”가 있다. 오늘은 문득 그 ‘뜬다’는 말을 곱씹고 되씹고 해본다. 물론 그 말은 캄캄한 새벽 동녘 하늘에 샛별이 뜨듯, 그야말로 어떤 이가 스타덤에 오르는 걸 일컫는 말일 테지! 하지만, ‘뜬다’는 말이 어디 별에만 쓰이는 말이더냐? 전기밥솥의 취사버튼이 ‘딸깍’하고 보온버튼으로 전환되는 순간부터 김이 술술 나게 되는 것도 ‘뜸’이라고 한다. 약쑥을 비벼 환부(患部)에다 놓고 불을 댕기는 것도 ‘뜸’이라고 한다. 누룩곰팡이를 접종하여 누룩을 발효시키는 것도 ‘띄우기’라고 한다. 하늘에다 연을 날리는 것도 ‘(연) 띄우기’라고 한다. 강에다 조각배를 띄우는 것도 ‘띄우기’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금속 열처리 기술 가운데에는 ‘뜨임질’이란 게 있다. 이글대는 가공 쇠붙이를 물이나 기름에다 순식간에 집어넣어 식히는 걸 두고 ‘담금질’이라고 하는데 비해, 뜨임질은 담금질, 불림질 된 가공 쇠붙이를 공기 중에서 서서히 식혀 강도를 조절하는 걸 이른다. ‘뜨다’라는 자동사(自動詞)을 어근(語根)으로 삼는 어휘들이 이밖에도 꽤나 많다. 그러니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이 ‘뜸’이 결코 아니다.
일찍이 우리네 인간은 하늘에 자유로이 날으는 새가 부러워, 날개를 갖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온갖 실험도 다 해 보았다. 그러다가 1903년 흔히 ‘라이트 형제’로 일컬어지는 ‘오빌 라이트’와 ‘윌버 라이트’가 최초 동력을 이용한 비행기를 고안해내게 된다. 1905년에 이르러서는 그들 형제에 의해 최초 실용적 비행기가 탄생하게 된다. 거꾸로 셈해보면, 우리 인류가 날개를 갖추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된 지는 불과 110년여에 불과하다. 비행기, 그 ‘뜨기’ 내지 ‘띄우기’의 원리는 양력(揚力)이다. 비행기의 날개든 연의 날개든 아주 과학적인 양각(揚角)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일찍이 내가 직장생활을 할 적에 울릉도에 유배 아닌 유배를 2년여 간 적이 있다. 그때 직장 상사한테 참소리 아닌 참소리를 하여 미움 받아 그리 되었다. 나는 그때 겨울날 바람 드센 ‘저동항’ 방파제를 거닐고 있었는데, 갈매기들이 저동항 항구 안에서 하나같이 바람을 안고 낮게 떠 날갯짓을 하는 걸 보았다. 드센 바람은 순경(順境)이 아닌 역경(逆境)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터. 그 광경을 신비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갈매기는 바람을 안고’라는 수필을, 나름대로 명작수필이라고 여기며 문학잡지 등에 발표한 기억이 새롭다. 비행기나 연이 뜨는 원리도 새들의 비상(飛翔)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람을 안고서만 날아오른다는 것. 바람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서라도 양력을 기어이 얻는다는 사실. 어린 날 꼬리연을 만들 때도 우리는 그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실천했다. ‘벌잇줄’이니, ‘꽁수줄’이니 하면서 적절한 양력을 얻기 위해 실을 연에다 이리저리 묶어 그것들을 조정하였지 않은가. 참말로, 날개를 가진 존재들은 하나같이 바람을 안고서만 떠오른다.
물속 물고기들은 몸속에 특별한 공기 주머니를 지니고 있다. 그걸 ‘부레’라고 한다. 그 부레 속 공기량을 조절함으로써 자신들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물깊이에 떠다닌다. 물고기들은 그 부레를 통해 이른바, 부력(浮力)을 얻는다. 어부들은 물고기들의 부레에 착안하여 스티로폼 등으로 부표(浮漂)를 띄운다. 다들 너무도 잘 아는 아르키메데스 원리(Archimedes' principle)도 부력에 관한 사항이다. 아르키메데스, 그는‘액체나 기체 속에 있는 물체는 그 물체가 차지한 액체나 기체의 부피만큼의 부력을 받는다는 법칙’을 알아낸 것이다. 우리가 망망대해에 배를 띄워 가고픈 곳 어디라도 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부력의 덕분이다. 하여간, 배를 띄우는 것도 ‘띄우기’다.
왜 내가 위와 같이 ‘뜸’과 ‘띄우기’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였을까? 일전 어느 낯모르는 시인으로부터 e메일을 한 통 받은 바 있다. 벌써 오랜 전 일이지만,그분은 인터넷에 온통 도배된(?) 나의 수필작품 가운데 몇 편을 읽었다기에,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분과도 이따금씩 e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분이 이번에는 나더러 ‘역시 스타 수필가는 타고 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윤근택 수필가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이렇게 청산유수로 글들을 뽑아 올리시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든 e메일을 띄워 왔다. 한마디로, 그분은 나를 (광주리 비행기에 태워) 한껏 띄운 셈이다. 사실은, 그분이, 내가 거의 매일 한 편씩 수필작품을 써서 애독자 그룹한테 e메일로 선보이고 있기에, 그 다산(多産)의 힘을 그처럼 치켜 올린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결코 ‘스타 수필가’에 못 미친다. 우스갯소리 가운데, ‘스타’는 ‘스스로 타락한 사람’이라던데, 내가 차마 그럴 수는 없지! 종이책으로 논하자면, 89년 문단 데뷔 이래 현재까지 적은 글이 1,000여 편 됨에도 고작 두 권의 수필집밖에 내지 않았다. 가입한 문학단체는 단지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뿐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문학 세미나 등에도 여태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그 흔한 문학기행 등도 가본 적이 없다. 이러한 제반 행태로 미루어 보더라도, 나의 얼굴과 나의 작품을 아는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어찌 내가‘스타 수필가’이겠냐고? 게다가 따로이 그 많은 문학비평가들한테 술과 밥을 사서 대접한 일도 없을뿐더러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광고나 홍보도 한 바 없으니... .
그러나 내가 꿋꿋하게, 홀로이 걸어가고자 하는 길은 분명 따로 있다. 요컨대,그것은 인터넷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길이다. 개인 블로그, 개인 카페, 전자도서관 등에다 나의 신작(新作)을 꼬박꼬박 올려 감추어 두곤 한다. 그러다가 뜻있는 어느 애독자가 그 글들을 몰래 훔쳐(?) 읽으면 대단히 만족이다. 굳이 누군가가 띄워준다고 해서 우쭐댈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실 그 시인한테는 대단히 고맙다고 답신을 보내긴 했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으니, 한껏 헛바람이 들어 들뜰 이유가 없다. 흔히들 명작이라든가 베스트셀러라든가 하는 작품들도 더러는 풍선 같은 게 많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나는, 남들이 내가 빚는 작품들을 두고 ‘빛 좋은 개살구’ 또는 ‘속빈 강정’이라고 비웃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나도 인간이니, 뜨고 싶은 맘 왜 가끔씩 들지 않겠냐만, 참말로 작가인 나의 삶을, 나의 예술을 ‘(별들의)반짝쇼’로 끝낼 수는 없으니... .
관련 음악 듣기)
위 글을 적는 내내 뉴 에이지 여성 뮤지션 ‘아미라 스위스’의 ‘Falling’을 ‘거듭듣기’ 했어요. ‘뜸(비상)’과 ‘띄우기’와 반대의 개념인 ‘Falling’을 말이에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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